1980년대 한국 화장품업계는 최대 위기를 맞게 됩니다. 화장품시장 개방으로 유명 브랜드의 외국 화장품이 밀려들어오면서 고가 화장품 시장은 외국 업체에 뺏기고 국내 업체들은 화장품 할인코너를 중심으로 저가출혈 경쟁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화장품 연구와 신제품 개발에 땀 흘린지 32년 이상 세월이 흘렀지만 명품 반열에 든 외국 브랜드와의 경쟁은 힘겹기만 했습니다. 우리도 명품을 만들어야 한다는 사명감의 무게 이상으로 적자생존의 냉혹함이 더욱 긴장하게 만들었습니다. 외국 브랜드와의 경쟁을 위해서 브랜드 인지도를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우선 품질에서 확실한 우위를 정하는 프리미엄 제품을 만들어야만 했습니다. 저가출혈경쟁에서 탈출해, 고급 화장품 시장을 탈환하기 위해 당시 착안 한 것이 '한방 화장품' 개발 이었습니다. 이미 1970년대 인삼 화장품을 개발하여 수출한 경험이 있었지만 결코 만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재를 찾는 일부터 난관에 부딪혔습니다. 주요 재료중 하나인 장뇌삼 15년 근을 찾기 위해 전국 방방 안가본 곳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길도 없는 산골짜기를 몇 시간씩 헤매고 다니는 것은 다반사였습니다. 이렇게 발품을 팔아 모은 한방 재료가 무려 2만 여종에 달했습니다. 이 많은 재료를 일일이 테스트해 3천여 가지를 추출하고 다시 2백가지를 엄선하여 밤낮없이 피부 테스트에 매달렸습니다. 처음 사용하는 화장품 소재라 피실험자를 구할 수 없어 연구원들이 직접 자신의 피부에 테스트 했습니다. 수천번의 테스트를 거친 결과 최종적으로 5가지의 효능 성분을 얻어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작에 불과 했습니다.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한방 성분들은 빛이나 공기와 접촉하면 쉽게 변질되기 때문에 고급 성분들을 보호하는 것이 성공의 관건입니다. 특수 기술인 멀티플 에멀전 기술을 적용하여 실험실에서 소량을 만드는 데는 일단 성공했으나 대량 생산에서는 안정성이 떨어져 열 번 이상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1회 실험 비용이 수천만원을 호가 하는 관계로 비용 손실도 엄청났으나 발매시기를 놓칠 우려로 포기해야 될지도 모르는 절망감이 더 두려웠습니다. 안정성을 높이는 적절한 조성 비율을 찾기 위해 지도 없이 광야를 헤메는 심정으로 수도 없는 실험을 반복할 뿐이었습니다. 밤낮없는 실험 끝에 드디어 원하는 안정성 수준에 도달했습니다. 1997년 발매시기를 코앞에 둔 때였습니다.

예상은 적중하여 브랜드명을 [설화수]로 정한 이 제품은 날개 돋힌듯 팔려 나갔습니다. 품질의 우수성을 고객들이 인정해 준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만, 외국 업체와 당당하게 경쟁할 수 있다는 것이 더욱 보람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품이 돌풍을 일으키자 또 한번 비상이 걸렸습니다. 수요의 급증으로 주요 성분인 백합과 연꽃의 부족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수입해 버리면 간단하겠지만 질좋은 국산 원료를 사용하겠다는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또 다시 발로 뛰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전국방방곡곡을 돌아다닌 끝에 울릉도와 제주도에서 수요를 충당할 수 있는 생산지를 찾는데 성공했습니다.

화장품 하나를 개발하는데 있어서도 말로 다 표현이 안되는 감동적인 숨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공될 때까지 끊임없는 마음고생과 육신의 고생이 필수적으로 있게 됩니다. 전인미답의 분야 일수록 기약 없는 실패의 반복을 각오해야 합니다. 분명한 성공의 필수조건은 기약 없는 실패의 기간을 넘어 인내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반드시 복주며, 번성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오래 참아 축복의 주인공이 됩니다(히6:13-15). 진정으로 성공을 원한다면 마음과 몸으로 철저히 댓가를 지불하는 데에 인색하지 않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