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박한 상황에서 누군가에게 예상치 못한 도움을 받았을 때 기분은 어떨까? 대가를 바라지 않는 자발적인 사랑, 친절한 섬김을 받을 때 밀려오는 풍성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다. 바쁜 미국에서의 이민생활, 모두 그렇게 다 바람처럼 의미 없이 스쳐가지만, 천사처럼 슬그머니 다가와 시간과 정성을 기울여 도움을 주고 홀연히 떠난 도우미를 만나기란 쉽지 않은 세태다.

Y2K 신드롬으로 시끄럽던 해에 남미 선교지에서 미국으로 이주했다. 딜러를 통해 사면 믿음직스러울 것 같아 고래힘줄 같은 쌈짓돈을 주고 10년 된 중고차를 샀다.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샀다는 주위의 말에 속을 끓이던 참인데, 주요한 부품들이 줄줄이 고장나면서 애를 먹이기 시작했다. 총알같이 달리는 495 벨트웨이에서 힘없이 시동이 꺼져 추돌사고 직전까지 갔던 위기상황도 있었다.

사시나무 떨 듯 부르르 진저리를 치던 차가 하필이면 비탈길 중턱에서 섰다. 뒤 좇아오던 차들이 퍼져버린 똥차에 막혀 한동안 멈춰야 했다. 비켜가는 십 수대의 차들에서 짜증이 잔뜩 묻어있는 눈총을 받으며 보낸 10여분은 진땀나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그때 가던 길을 멈추고 도움을 주기 위해 나타난 천사. 윗 길에서 차 머리를 홱 돌려 코 앞에까지 대고 후드를 열어 점프를 돕겠다며 케이블을 꺼내든다. 배터리 문제가 아니었는지 30분 이상 전기를 튀겨보지만 똥차는 요지부동 꼼짝도 않는다. 셀폰을 빌려주면서 토잉 서비스를 받으라고 친절을 다하는 오십 중반의 백인 여성. 토잉카가 오도록까지 돕고 행운을 빌면서 떠난 그의 호의가 고맙다.

성경 누가복음에 나오는 얘기 한 토막. 법에 노련한 한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문한다. "영원한 생명을 상속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즉답을 피하신 주님이 "율법엔 뭐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어떻게 알고 있는가?" 도리어 질문하신다. 법에 탁월한 율법사가 막힐리가 없다 "너의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해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사랑하라". 그러자 주님은 훌륭한 대답이라고 칭찬하시며 그렇게 살아 영생을 받아 누리라고 말씀하셨다.

누가 내 이웃인가? 예수님은 여리고에서 강도 만난 행인이 우리가 돌봐야 할 이웃이고, 그에게 아낌없이 도움을 준 착한 사마리안처럼 섬기는 삶을 살라고 권면하신다. 강도 당해 죽음 직전에 이른 무명의 행인, 가진 소지품은 물론이고 입고 있던 옷까지 탈취당했다. 흠씬 두들겨 맞아 피가 흐르고 상처가 깊어 누군가의 응급치료와 도움이 없인 곧 죽을 수 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 처했다.

피투성이의 행인을 보고 황급히 자리를 떠나버린 제사장과 레위인과 달리, 무명의 사마리아인은 가던 길을 멈추고 불행한 이웃을 살펴 보기 위해 다가선다. 여행 중 사용하려던 포도주와 기름을 붓고 응급처치를 돕는다. 자기의 나귀에 태워 치료받을 여관으로 후송하고, 은전 두 개를 내어주며 정성껏 돌보아 줄 것을 부탁한다. 다시 돌아 올 때 추가 비용을 감당하겠다며 행동으로 믿음을 보인 그다.

아는 것과 믿는 것, 믿는 것과 행함으로 실천하는 것이 다 하나인데 막상 손과 발로 옮기기란 쉽지 않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왜 서둘러 도망치듯 자리를 떠났을까? 사골을 우리듯 곱씹어보지만 여전히 궁금증이 남는다. 바빠서? 직무에 합당치 않아서? 율법은 죽은 시체를 만지지 말라고 금해서?… 백 번 양보하고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동정심, 안타까움, 측은한 마음을 잃어버린 전문 종교인의 타성에 젖은 모습이 불쾌하게 크로즈업 된다. 입술로는 거룩과 경건을 운운하지만 행함으로 믿음을 보이지 못하는 외식이 회칠한 무덤처럼 보일 뿐이다. 자비를 베푼 자가 강도 만난 자의 진정한 이웃이다. "가서 너희도 그렇게 하라"는 주의 추상 같은 명령이 귀에 쟁쟁하다.

(도시빈민선교, 재활용품, 중고차량 기증: 703-256-0023 / 622-25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