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잘 아는 팔복의 강의가 포함된 산상수훈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마무리 부분에 오셔서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 갈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시며 집을 짖는 두 사람의 비유를 들어 말씀을 정리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영적 성숙의 진정한 의미는 ‘순종할 때’ 완성된다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너희가 많은 말들을 들었지만 그 듣고 배운 것들을 너희 삶에 행함으로 나타내지 않으면 안된 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내 아버지의 뜻 대로 행한 자’라야 천국에 들어 갈 수 있다고 말씀하시며, 그런 사람을 향해 ‘지혜로운 사람’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사람’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집을 짖는 두 사람의 비유는 누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자리 까지는 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고도 행치 않는 자는 ‘어리석은 자’, ‘모레 위에 집을 짖는 자’로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면 쉽게 넘어지고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누구에게도 유익을 줄 수 없는 상황인 것입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에게 패를 끼쳐야 할 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많은 은사를 받고, 능력을 행한 사람들 까지도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는 자들이 있다고 하십니다. 이 말씀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신앙의 다가 아님을 가르쳐 주십니다. 진정한 신앙의 성숙은 어떤 한 부분에서 뿐 아니라 삶의 전반적인 부분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바르게 행하는 것’입니다.

믿음(Faith)이라는 말의 의미 속에는 헬라어로 ‘파스타스’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이것은 ‘충성 한다’는 뜻입니다. ‘충성’은 아는 것이나 말로만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몸을 헌신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고 말씀을 받은 모두가 시작부터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영적 성숙을 향한 노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의 어린아이 수준을 넘어 청년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거기서 머물러서는 안됩니다. 더 나아가 주님의 마음을 닮는 아비의 자리까지 성장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땅 위에 ‘지혜로운 자’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자’가 되어 자신 뿐 아니라 주변의 환경까지도 유익을 끼치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라 불리는 유대인들은 구약과 신약 시대 뿐 아니라 현대에 와서도 로마나 독일 등에 의해 민족이 끊어질 지경의 위기를 수 없이 만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지금 세계 위에 우뚝 서있습니다. 아니 심지어는 ‘세계 경제를 움직이는 것은 유대인이다’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이렇게 뿔 뿌리처럼 끝까지 살아남아 세상의 주도적인 역할 을 할 수 있었던 이유가 뭐라 생각 하십니까 ? 나는 그들 중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불순종으로 인해 민족이 위기에 처했지만, 그럼에도 그들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기 위해 생명을 아끼지 않은 영적 성숙의 삶을 산 ‘에스더’나 ‘벤쟈카이’나 ‘쉰들러’ 같은 사람들이 있었기에 가능 했다는 생각을 가져 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믿음의 반대 말이 뭐라 생각 되십니까 ? 혹 불신앙이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 하지 않으십니까? 아닙니다. 믿음의 반대는 ‘불순종’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진 성도라 하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한다면 이는 불신보다 더 큰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불순종’의 잘못으로 자신과 주변을 위기로 끌고 가는 어리석은 신앙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지혜로 분별하여 순종함으로 영적인 성숙을 이루어 가는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자신뿐 아니라 내게 속한 모든 것들에 덕을 끼치며 사는 복을 누리시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