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과 부활의 연합
1984년 세상을 떠난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말년에 암투병 중에도 캠퍼스에서 젊은이들에게 최후의 메시지를 전했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말라.” 오늘 교회의 문제는 행복은 구하지만 거룩함을 추구하지는 않고 있다. 성공은 구하지만 거룩함을 원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죄를 이겨낼 능력조차 없다. 탐욕과 염려와 세상즐거움에 노예로 살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가면만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새번역)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어야만 한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바른 지식없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침)례의 자아상
사도행전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즉시 세(침)례를 베풀었다. 교단마다 교회예식이 다르지만 성경엔 ‘밥티스마’로 표기되어 있다. (한글 성경만 ‘세례’로 표기되어 있고 다른 언어의 성경은 모두 ‘밥티스마’로 공동표기를 하고 있다). 밥티스마는 ‘물에 잠근다’는 뜻이다. 세(침)례는 그리스도인의 멤버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지, 구원의 자아상을 보여주는 교회의 중요한 예식이다.
그것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입니다. 벧전3:21(새번역)
노아 홍수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사건이며 물 위와 물 아래 두 세계로 나누고 있다. 물 위는 의와 생명과 구원이며 물 아래는 죄와 심판과 저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죽음의 연합과 부활의 연합>. 이중적 연합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들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즉시 ‘밥티스마’를 베풀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자>(물 아래의 세계)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물 위의 세계)임을 감각적으로 체험하여 구원의 자아상을 가르쳤다.
연합의 인격성
조지 바나는 리서치를 통해 지난 10년동안 미국에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조사했다. 10년전 12%에서 6%로 감소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로 철저하게 믿는 신자들로 주님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되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미국교회가 세속화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이 퇴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지. 정. 의>의 인격성을 갖춰야만 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연합의 자아상을 지. 정. 의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요, 그가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롬6:10-13(새번역)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알고, 여기고, 드리라>(6장의 핵심동사)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중생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다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셨는데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죄에 대해 죽은자, 하나님께 대해 부활한 자”라는 놀라운 은혜를 선물로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평생동안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로 자신의 자아상을 성취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만 한다.
필립 브룩스는 말했다. “부활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먼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선언하고,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할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적 자아실현의 삶이다.
월드넷 데일리가 논평 보도했다. “기독교인들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종교혐오범죄법이 시행되면서 공개적으로 전도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으며,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도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오늘 교회는 다시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레너드 스윗 박사가 <모던시대의 교회는 가라>는 저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스트 모던 시대의 교회들은 “북극성 방향 맞추기”에 힘써야 한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경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그리스도와 성경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1984년 세상을 떠난 프란시스 쉐퍼 박사는 말년에 암투병 중에도 캠퍼스에서 젊은이들에게 최후의 메시지를 전했다. “행복을 삶의 목표로 삼지말라.” 오늘 교회의 문제는 행복은 구하지만 거룩함을 추구하지는 않고 있다. 성공은 구하지만 거룩함을 원하지 않고 있다. 그들은 죄를 이겨낼 능력조차 없다. 탐욕과 염려와 세상즐거움에 노예로 살면서 그리스도인이라는 가면만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로 다시 태어났다는 것을 의미한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 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 것이 되었습니다.”(고후 5:17. 새번역)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피조물에 대한 정체성이 확립되어야만 한다.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바른 지식없이 그리스도를 따를 수 없기 때문이다.
세(침)례의 자아상
사도행전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즉시 세(침)례를 베풀었다. 교단마다 교회예식이 다르지만 성경엔 ‘밥티스마’로 표기되어 있다. (한글 성경만 ‘세례’로 표기되어 있고 다른 언어의 성경은 모두 ‘밥티스마’로 공동표기를 하고 있다). 밥티스마는 ‘물에 잠근다’는 뜻이다. 세(침)례는 그리스도인의 멤버십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받은 구원이 무엇인지, 구원의 자아상을 보여주는 교회의 중요한 예식이다.
그것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 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 선한 양심을 가지려고, 하나님께 드리는 호소입니다. 벧전3:21(새번역)
노아 홍수는 물로 세상을 심판하신 사건이며 물 위와 물 아래 두 세계로 나누고 있다. 물 위는 의와 생명과 구원이며 물 아래는 죄와 심판과 저주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받은 사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 <죽음의 연합과 부활의 연합>. 이중적 연합으로 다시 태어난 새로운 피조물들이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즉시 ‘밥티스마’를 베풀어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은자>(물 아래의 세계) <하나님께 대하여 산자>(물 위의 세계)임을 감각적으로 체험하여 구원의 자아상을 가르쳤다.
연합의 인격성
조지 바나는 리서치를 통해 지난 10년동안 미국에 진지한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증가했는가를 조사했다. 10년전 12%에서 6%로 감소했음을 발견하게 되었다. 진지한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만이 나의 구원자”로 철저하게 믿는 신자들로 주님만이 길과 진리와 생명되심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라고 정의했다. 미국교회가 세속화되고 경제적으로 안정되면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고백이 퇴색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지. 정. 의>의 인격성을 갖춰야만 한다. 바울은 로마서 6장에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연합의 자아상을 지. 정. 의로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은, 죄에 대하여 단 한 번만 죽으신 것이요, 그가 지금 살아 계시는 것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도, 여러분 스스로가 죄에 대하여는 죽은 사람이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여러분의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해서, 여러분이 몸의 정욕에 굴복하는 일이 없도록 하십시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의 지체를 죄에 내맡겨서 불의의 연장이 되게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난 사람답게, 여러분을 하나님께 바치고,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연장으로 하나님께 바치십시오. 롬6:10-13(새번역)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하여는 죽은자요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자>로 <알고, 여기고, 드리라>(6장의 핵심동사)고 가르치고 있다. 우리는 이미 중생을 통해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다시 태어났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하셨는데 그리스도인의 존재는 “죄에 대해 죽은자, 하나님께 대해 부활한 자”라는 놀라운 은혜를 선물로 받았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평생동안 죄에 대해서는 죽은 자로, 하나님께 대해서는 산자로 자신의 자아상을 성취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종들이 되어야만 한다.
필립 브룩스는 말했다. “부활은 하나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예수의 부활사건은 먼 역사적 사건이 아니다. 오늘 우리가 매일의 삶에서 선언하고, 체험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성령의 능력으로 살아가야할 그리스도인들의 존재적 자아실현의 삶이다.
월드넷 데일리가 논평 보도했다. “기독교인들이 설 땅이 좁아지고 있다.” 종교혐오범죄법이 시행되면서 공개적으로 전도하는 것이 금지되고 있으며, 동성애에 대해 언급하는 것조차도 법으로 금지되고 있다. 오늘 교회는 다시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레너드 스윗 박사가 <모던시대의 교회는 가라>는 저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포스트 모던 시대의 교회들은 “북극성 방향 맞추기”에 힘써야 한다. 성경을 깊이 연구하고 성경중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진정한 교회개혁은 그리스도와 성경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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