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는 사순절의 가운데 자락을 지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교회의 절기가운데 부활절과 추수감사절, 성탄절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알고 있지만 사순절에 대한 이해나 정보가 부족한 것 같습니다. 그러다 보니 간혹 예배 시 사순절이라 말을 해도 ‘그건 뭐 하는 때냐?’고 궁금해 합니다. 조금 안다 싶은 분들의 대답도 ‘그건 유대인들이나 구교에서 지키는 절기가 아니냐?’라고 반문을 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두 대답 모두 크리스찬으로서 해야 할 좋은 대답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이 사순절은 부활절을 소중이 여기는 우리 신앙인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순절(Lent)은 원래 앵글로 섹슨족의 ‘봄’을 의미하는 ‘Lang’에서 출발합니다. 그것이 우리 나라에서는 희랍어인 ‘테살코스테’라는 ‘40일 간의 기념일’이라는 뜻으로 ‘사순절’로 번역을 한 것입니다.

이 절기는 부활절을 위한 신앙의 성장과 참회를 통한 영적인 준비의 시기이며 교회력 중에서 주님의 수난과 고통, 죽음에 초점이 맞추어지는 때 인 것입니다. 이것이 AD 325년 ‘니케아 회의’부터 공식되었고, 이는 부활절 전 6주간으로 그 첫 수요일에 시작합니다. 올 해는 2월 13일(수)이었는데 이 날은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속죄일’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 ‘성 금요일’을 끝으로 지키는 절기입니다.

시작을 ‘재의 수요일’이라 부르는 이유는 ‘재(Ash)’가 ‘슬픔과 죄에 대한 회개’를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전년도 ‘종려주일’에 사용한 ‘종려나무가지’를 태워 그 ‘재(Ash)’를 가지고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날 까지 ‘참회’를 하는 것입니다. 그 기간이 40일 인데, 40일 이라는 ‘수’에도 의미가 있습니다. 40년간의 광야 생활, 예수님의 공생애를 위한 40일 광야 금식, 시내산에서 모세의 40일 금식, 주님의 무덤 속에서의 40시간, 그리고 부활하신 후 승천하시기 까지의 사역기간 등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이 절기를 지키기 위해 여러 가지 관습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금식’을 선포하기도 하고, 이마에 십자가를 그리기도 하며, 구제와 자선 행사들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때 빼놓지 않고 진행된 행사는 부활주일 새로운 성도들에게 ‘세례식’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 교육입니다. 이 기간 동안 교육뿐 아니라 삶으로 준비 시켰습니다. 그리고 가정에서의 예배를 권장 했으며, 전도를 통한 십자가의 의미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도 권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사순절의 의미가 사라져 갑니다. 이런 일들이야 평소에도 하는 일인데 굳이 기간 정해 놓고 할 필요가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런 의식적인 행동이 무슨 유익이 있느냐?하는 것입니다. 물론 틀린 이야기는 아닙니다만 ‘형식’이 사라진다고 해서 그 형식 속에 베여있는 ‘의미’마저 사라져서는 안되겠습니다. 그 의미를 간직하고 지키기 위해 ‘사순절’이 우리에게 주는 의미들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순절을 막연히 사라져가는 절기중의 하나로 치부해 버리거나 현대 개신교들이 지킬 필요가 없는 구교적 답습이라는 생각보다. 부활절의 사건이 진정 우리의 죄를 회복시키시고 구원하신 위대한 사건으로 받아드리는 분이라면 ‘그 날’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기간을 쉽게 생각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렇다고 ‘금식을 하자’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도 이마에 ‘십자가를 긋고 살자’는 말도 아닙니다. 어려운 시기에 ‘사비 털어 나누자’는 어려운 요구도 아닙니다.

그런 형식보다 우리의 신앙 속에 바른 의미를 찾아 보자는 것입니다. 그 동안 별 의미 없이 참여해 왔던 예배에 대하여, 좀더 경건하고 거룩하게 드리기 위해 ‘회개와 헌신의 결단’을 해보는 기간으로 말입니다. 이 기간 ‘자신을 부인하고 그 동안 즐기며 탐해 왔던 것들로부터 벗어나 절제하는 모습’으로 살아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변에 연약한 지체들을 돌아보고, 그들이 더 분명한 거듭남의 비밀을 경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입니다. 이렇게 40일을 보낸다고 하면 분명 그 다음 맞이하는 ‘부활절’은 다른 그 어느 때보다 더 의미 있고, 부끄러움 없이 맞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순절’은 몰라도 되는 절기가 아닙니다. 알지만 그냥 지나쳐야 할 기간도 아닙니다. ‘부활절’의 진정한 가치는 이 사순절에 다듬어지고 만들어 지는 것임을 기억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