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은 만족을 낳고, 만족은 실패를 낳는다. 초긴장만이 살아남는 방법이다.”인텔의 회장이었던 앤드류그로브(Andrew S Grove)의 경영철학입니다. 어린 시절 홀로코스트(유대인대학살)를 겪은 헝가리 태생 유대인인 앤드류그로브는 1956년 스무 살의 나이에 단신으로 미국망명을 감행하게 됩니다. 당시 수중에는 단돈 20달러가 전부였습니다. 미국에 망명하여 목숨은 건졌지만, 죽음 같은 고생이 시작됩니다. 피눈물 나는 고생 끝에 1963년 UC버클리에서 화공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반도체회사인 페어차일드(Fairchild)를 거쳐 1968년 인텔 창업 때 참여했으며, 1979년부터 20년 동안 최고 경영자로 활동했습니다.

앤드류그로브는 과감한 결단과 독특한 경영수완으로 인텔을 세계최고 회사로 만듭니다. 1980년대 중반 일본경쟁사들의 거센 도전으로 인텔은 순이익이 200만 달러로 곤두박질치는 위기를 맞게 됩니다. 콧대 높은 임직원들은 상황을 받아들이려하지 않았습니다. 반도체D램은 사실상 인텔이 개발해 압도적 시장 우위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인텔하면 D램, D램하면 인텔을 떠올릴 정도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앤드류는 수익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메모리 사업에서 손을 떼는 대신[인텔 마이크로 컴퓨터회사]라는 비전하에 컴퓨터의 두뇌라 불리는 “마이크로프로세서”에 올인 합니다. 앤드류는 모든 기득권을 버리고 죽음의 계곡을 건너는 심정으로 핵심사업의 자원을 빼내 확실치 않는 미래에 투자했습니다. 기존8개의 D램 공장 중 한곳을 제외한 나머지는 전부 마이크로프로세서 생산으로 전환했습니다. 직원7200명을 떠나보내고 공장을 두 곳이나 폐쇄하는 아픔이 뒤따랐습니다. 하지만 인텔은1992년 마이크로프로세서분야 최강자로 뛰어오르며 제2의 전성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남이 미처 못 보는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가진 앤드류는 또다시 모험을 감행합니다. 브랜드의 중요성을 간파한 앤드류는 1991년 1억 달러를 투입해[인텔 인사이드(Intel Inside)] 개발에 착수했습니다. “완제품도 아닌 부품브랜드에 엄청난 돈을 쏟아 붓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이다. 차라리 연구개발에 투자하라”강한 반발이 터져 나왔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습니다. 브랜드 덕분에 인텔은 컴퓨터 제조회사들 사이에 강력한 파트너 쉽을 구축하는데 성공했고, 시장의 80%를 장악했습니다. "INTEL Inside"로고를 부착한 컴퓨터는 다른 컴퓨터보다 10%나 높은 가격에 팔렸습니다.

그는 실수에 대하여도 용기 있게 대처할 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1994년 어느 수학교수가 팬티엄칩의 계산 기능에 문제를 제기했습니다. 90억 번에 한번 발생하는 오류, 즉 사용자가 2만 7천년에 한번정도 겪는 오류를 인정하고 무조건 보상이라는 결단을 내려 고객의 신뢰를 회복하는데 4억7천5백만 달러를 과감하게 지불합니다. 앤드류는 조직전체에 지나칠 정도로 초긴장상태로 항상 경계하라고 강조하여 인텔을 가장 오래가는 강한 조직으로 무장시켰습니다.

과감한 도전은 먼저 자신이 강하게 무장되어 있지 않으면 불가능합니다. 인생은 전투입니다. 전투준비는 전쟁 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전투가 없는 평상시에 하는 것입니다. 진정한 전투는 자신과의 전투입니다. 자기 자신을 스스로 강하게 무장시킬 수 있는 사람만 승리합니다. 성공하는 사람의 특징은 자기 자신에게 매우 엄격하다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