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과 한국에서의 정한 일정을 모두 마치고 어제 다시 돌아왔습니다. 여행을 할 적마다 새로운 가르침을 깨닫는데 이번 여행도 새로운 교훈을 깨닫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특별히 남대문이 불에 타 무너져 버린 사건이 일어난 직후 얼마동안 사건이 일어난 현장 가까이에 있으면서 이번 사건을 좀 더 깊이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지난 주간 태국행 비행기에서 본 신문에는 그 이틀 전에 일어난 방화사건 기사로 꽉 차 있었습니다. 신문마다 다뤄진 기사의 분량도 분량이지만 남대문과 연관된 역사적 문화적 의미에서부터 화재 사건을 접하는 각계각층의 반응, 그리고 사설(社說)에 이르기 까지 온통 이번 사건과 연관된 내용들인 것을 보면서 이번 사건이 우리 사회에 미친 충격과 영향이 얼마나 큰지를 짐작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남대문은 우리나라 보물 중에 으뜸으로 꼽힐 만큼 그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조선의 첫 임금인 태조때(1398년)에 건립된 후 몇 차례 개축을 하기는 했지만 지난 600여 년 동안 처음 지어진 그 자리에서 그 모습을 지켜왔는데 하룻밤 사이에 우리나라의 한복판에서, 80여대의 소방차들 앞에서 불에 타 처참한 모습으로 붕괴되었으니 어떤 이의 말대로 남대문이 불에 탄 2008년 2월 10일은 우리나라 문화 국치일(國恥日)로 불리울만도 합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참담하게 하는 것은 이번에 불에 타버린 남대문은 우리 민족의 흥망성쇠를 기억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혼이고 얼굴이기 때문입니다. 서울에 있는 많은 건물들이 수많은 전쟁을 겪으면서 파괴되어 버렸는데도 불구하고 남대문은 그 오욕과 수치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도 처음 지어진 그 자리에서 처음 지어진 그 모습대로 의연하게 버텨온 우리 민족의 문화적 긍지요 자랑이기 때문입니다.

임진왜란 때 경복궁이 잿더미로 변하는 참화 속에서도 남대문은 그대로 버텨냈으며 그 후 우리 문화를 말살하려던 일본제국의 압제 하에서도 비록 주변의 성벽이 일부 헐려나가기는 했지만 일본도 어찌하지 못할 만큼 그렇게 민족의 역사 속에서 굴하지 않은 민족의 양심처럼 남대문은 그렇게 그 원형의 모습을 지켜왔다고 합니다. 이렇게 남대문은 마치 얼굴을 할키우고 손찌검을 당하듯, 옷이 벗겨지고 뭇매를 맞는 듯한 치욕과 상처를 입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 수치의 역사 속에서도 자신을 버텨온 우리 문화의 정절과도 같았는데 바로 그런 남대문이 어처구니없게 하룻밤사이에 재로 변했기에 사람들은 이번 사건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한 문화재 당국에 화를 내고, 화재를 초기 진압하지 못한 소방 당국을 탓해보다가 결국 남대문은 우리가 스스로 태운 것이라고 서로가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태조가 서울로 도읍을 옮긴 후 4대문의 이름을 지을 때 사람이 마땅히 지켜야할 도덕인 인의예지(仁義禮智)에 따라 정하면서 그중 남대문은 예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숭례문(崇禮門)이라 칭하고 서울 도성의 정문인 남대문은 귀한 백성이 드나드는 문이라 해서 그 현판을 다른 문들과는 달리 위에서 아래로 종으로 써서 세워 달만큼 예를 존중한 문인데 바로 그 예를 존중하기는커녕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마땅한 예를 지키지 못함을 부끄러워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대문이 전소되는 장면을 보면서 발을 구르며 안타까워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불에 탄 모습이라도 보기 위하여 불이 난 바로 다음날 이른 아침부터 남대문을 찾았고. 어떤 이는 화재 현장에 조화(弔花)를 보내는가하면, 상복을 입고 조문(弔問)을 하듯 남대문을 찾는 이들이 있고, 아예 그 현장에 상을 차려놓고 곡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지난 금요일 그러니까 남대문이 불에 탄지 열흘째 되는 날, 불에 탄 모습이라도 볼 수 있을까 싶어 남대문을 찾아갔었는데 남대문 주변은 건설현장에 치는 가림판으로 사방이 아주 높게 쌓여서 아무것도 볼 수가 없게 가려져 있었습니다. 거기에 남대문이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에 그곳이 바로 화재의 현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둥그렇게 높이 둘러쳐진 가림판은 그곳에서 열흘 전에 화재가 났었는지조차 느낄 수 없을 만큼 깨끗하게 가려져 있었습니다. 화재로 무너지고 헝클어진 모습이 너무나 부끄러워 서둘러 가렸을 것입니다.

주변을 높게 가린 가림판을 보면서 불로 타버린 속내가 부끄러워 가리기는 했지만 아무리 가림판을 높게 올린다해도 나라의 보물, 민족의 정결을 태워버린 우리의 부끄러움을 감출 수는 없다는 생각이 들면서 차라리 불에 타 무너진 버린 모습을 그대로 두었으면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니 얼마동안만이라도 불에 탄 모습을 그대로 두고 그 모습을 보면서 우리 모두 좀 더 아파하고, 조금 더 창피해 하고, 조금 더 부끄러워해야 하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이 예를 존중하기 위해 지어진 숭례문(崇禮門)에 대해 우리가 갖추어야 최소한의 예가 아닌가 하는 마음이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