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일년 전, 저희 가족은
참으로 가슴 아픈 소식을 들었습니다.
저희 가족이 리치몬드로 이사오기 전에
살았던 조그마한 타운 하우스에
불이 나서 전부 다 타버린 것입니다.
저희 가족이 더 이상 사는 곳도 아니고,
더 이상 저희의 이해관계가
남아 있는 곳도 아니지만,
마음이 몹시도 아팠습니다.
그곳에 우리의 삶의 매우 많은 부분들이
남아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몇 일 전, 화재가 나서 타버린
서울에 있는 남대문(숭례문)의
일그러진 모습을 보게 되었습니다.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것 하나 제대로 간직하지 못하고
보존하지 못하는 현실의 문제도 아니고,
그 원인을 가지고 갑론을박하는
갑갑한 민심도 문제가 아닙니다.
가슴이 몹시도 아픈 이유는
바로 나의 삶의 매우 중요한 부분을
원하지도 않았지만 억울하게
빼앗긴 것 같은 허전함 때문입니다.

사실, 저에게는
(물론 저만이 아니라 거의 우리 모두에게는)
서울의 남대문이 꼭 있어야지만 하는
그런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그저 그것이 우리나라의 국보 1호이고,
서울에서 살면서 버스를 타고 다닐 때면
늘 지나쳐 지나가면서 보았던 남대문입니다.
어릴 때, 국보 1호인 남대문과
보물 1호인 동대문을 비교하면서
어느 것이 더 귀중한 것인지,
그리고 국보와 보물의 차이는
무엇인지를 궁금해 하기도 하였었습니다.
그저 그 정도인 것입니다.
한 가지가 더 있다면,
남대문의 현판을 쓴 양녕대군이
우리 가문의 조상이라고 하는 사실일뿐입니다.
(저는 전주 이씨 양녕대군의 19대 손입니다)

그런 남대문이,
불 타기 전에 별로 생각도 하지 않았었고
애써 기억하지도 않았었던 남대문이
불에 타 버렸다고 하는 소식을 듣고
그 불에 타버린 참담한 모습을
보게 되었을 때,
마치 저의 삶의 한 부분이
부서져 날아가는 것과 같은
아픔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몇 년 전 서울에 나갔을 때,
제가 태어나고 자라났던
서울의 갈월동과 청파동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저의 가물가물한 기억으로는
그 동네에 무지무지하게
큰 쌍굴다리가 있었고
그 쌍굴다리를 지나면
또 무지무지하게
큰 굴뚝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찾아가서 아주 쉽게
그 쌍굴다리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그큰 굴뚝은 보이지를 않았습니다.
동네를 돌아보고 돌아오려고 하는데,
건물 사이에 부끄러운듯이
모습을 드러내는 굴뚝이 있었습니다.
옛날 어릴 때 보던 그 모습과
똑같은 모습으로
아직도 거기에 있었습니다.
비록 지금은 예전과 같이
결코 무지무지하게 크게 보이지는 않지만,
그 굴뚝은 아직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옛날 오래된 친구를 만난 듯,
잃어버린 시간을 찾은 듯,
한참 동안 그 굴뚝을 바라보았습니다.
아주 작아져 버린 굴뚝이지만,
그것이 아직도 그 자리에 남아 있다는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그 자리에서 아직도 지워지지 않은
4살짜리 저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목사로 우리 교회 상황 속에서
많은 것을 생각해 보게 됩니다.
변화와 새로움, 개혁과 신선함,
그리고 새로운 시대와 문화에의 적응은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분별하고 편의위주의
과거와의 파괴적 단절은
너무나 많은 분들의 마음을
아프게하는 것이 되기도 하는 것이고,
많은 분들의 마음이 아프게 된다면
교회는 교회다울 수가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하는 것이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win-win의 방법인 것인가?
이런 고민이 이제까지 없지는 않았지만,
남대문 때문에 더 깊이 들어옵니다.
피하여 도망갈 그런 고민이 아니라,
즐겁게 만나야 하는
우리 모두의 기도 제목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