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네시주에 주지사를 두 번이나 지낸 인물 중에 ‘벤후퍼’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의 삶에 이력을 보면 그가 주지사를 두 번이나 지낸 것이 기적이라 할 만하다고 합니다. 그는 어릴 때 불우하게 자란 것뿐 아니라 미혼모의 슬하에 자라 많은 놀림과 손가락질을 받으며 자랐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놀림에 어디 하나 편하게 갈 수 있는 곳도 없었고, 함께 해 주는 사람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런 그가 한 번도 하기 힘든 주지사를 두 번이나 할 수 있었던 힘은 다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였다고 말합니다. 그가 12살 되던 해 다니지 않던 교회를 나가게 되었고 그곳에서 만난 목사님이 ‘너 얼굴을 보니 누구 많이 닮았구나’라고 하시자 후퍼는 또 ‘목사님도 나를 놀리는 구나’ 생각하고 도망을 갔답니다. 그러나 도망가는 그를 붙잡고 목사님이 제차말하길 ‘너 얼굴을 보니 누구 많이 닮았어, 딱 보니 알겠는걸?’하시며 ‘하나님을 너무 닮았다, 너 하나님의 아들 맞지?’라고 하시더라는 겁니다. 그리고는 ‘너 하나님의 아들이니, 하나님 사랑 많이 받아 훌륭한 사람 되겠다’라고 하셨답니다. 그 동안 누구에게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었습니다. 후퍼는 그 말이 가슴에 남아 늘 ‘너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하나님이 네 아버지야’라고 되 뇌이며 성공의 길을 향해 나갈 수 있었다고 합니다.

지금 한국은 이명박 당선자가 대통령으로 취임하기 전부터 신종언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고소영’이다 ‘강부자’다 ‘에스라인’이다. 언뜻 말만 가지고는 무슨 소린지 알아듣기 어려운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들의 의미를 살펴보면 하나같이 연약하고 서민들을 좌절하고 소망 없이 만드는 내용들입니다. ‘고소영’은 고려대를 나오고, 소망교회를 다니고, 영남권 출신이라야 출세를 한다는 말입니다. ‘강부자’라는 말은 강남에 부자 소리 들어야 출세한다는 겁니다. ‘에스라인’은 이명박 당선자가 몸 담았던 서울 시청 출신들이 성공한다는 것입니다.

몇 일전 모 신문에 보니 소망교회가 이명박 당선인을 낸 후 3000명의 성도가 등록을 했다는 글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소영’에 들고 싶어 그리 된 것이 아니길 바랍니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출세와 성공은 하나님의 자녀가 된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어디에, 어떤 자리에 있느냐?가 나를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이냐’가 가치를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크리스찬이라면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모신 그 순간부터 세상에서 잘되는 은혜를 누린 사람이 된 것입니다. 서로의 자리가 다르고 위치가 다를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고 살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더 가치 있게 여긴다면 하나님은 다시 여러분의 인생을 높여 주시고 인정받게 해주 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임에도 ‘강부자’를 부러워하고, ‘고소영’이 되고 싶어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가치 없이 여기고 ‘헛되이’ 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잘 되게 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고소영’이나 ‘강부자’가 아니라도 하나님의 은혜, 하나님께서 죄인 된 우리를 사랑하셔서 아들 삼아주신 그 놀라운 사랑을 기억하고 그것을 인생에 가장 가치 있는 것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더 많이 수고 한다’면 ‘고소영이나 강부자’보다 더 잘 되는 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냥 내가 ‘고소영이나 강부자’ 틈에 끼지 못한다고 그런 부류들을 질시하는 것도 좋은 모습은 못됩니다. 이런 단어들이 판치는 세상이 조금 안타깝긴 하지만 그들을 부러워하거나 그 틈에 끼고 싶어 기를 쓰지도 맙시다. 그것은 세상을 더 삐뚤어지게 만들 뿐 아니라 자신도 다른 사람들의 질시의 대상이 되게 하고 맙니다. 그보다 우리는 나 있는 자리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 그 사랑 생각하면서 바울 사도가 ‘내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고백한 것처럼 그렇게 사시길 바랍니다. 분명 ‘하나님 은혜’는 여러분 인생을 잘 되고도 욕먹는 대상이 아니라 잘 되도, 부족해도 존경과 인정을 누리는 인생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