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례문이 불에 타 무너지는 것을 보고 내 집이 불에 타도 그럴까 싶을 정도로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숭례문 화재는 대한민국의 속살을 드러냈습니다. 외형은 그럴 듯한데 아직도 내실이 빈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습니다. 선진국, 아니, 든든한 기초위에 백년대계를 하는 나라들과 너무도 거리가 먼 모습들을 봅니다.

숭례문이 무너지자 누구 탓인가를 두고 요란(妖亂)이 일었습니다. 서로 제 탓이 아니라고 얼굴 드러내는 것이 역겹기도 합니다. 소방대원들이나 문화재 국장 과장들이 얼굴 보일 때가 아닙니다. 선진국에서는 국민들의 마음에 충격을 준 사건이 일어나면 즉각 가장 고위급 인사가 전면에 나섭니다. 그들은 현장을 둘러보는 대신에 오히려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국민 앞에 나옵니다. 대통령, 총리, 문화재청장, 행정자치부 장관, 서울시장 순으로 얼굴을 보여 줘야 합니다. 노블리쥬 오블리제를 말하기 전에 공인의 책임이 먼저입니다. 사회에 충격을 준 사건이 터지면 지위가 높을수록 피신하고 보신할 자리를 찾는 나라가 후진국입니다.

붕괴 몇 시간 후에 전문가들은 복구 기간을 2-3년으로 잡았습니다. 가정집을 하나 지어도 2-3년에 마치기가 어렵습니다. 방향을 정하고 규모를 정하는 위원회를 운영하는 데 1년, 어차피 새로 짓는 길에 최첨단 방화, 방재 시설을 고려해서 설계를 완성하는데도 최소한 1-2년은 족히 걸릴 것입니다. 재료를 확보하고 찌고 말리고 준비하는 데도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600면 된 문화재 복원을 2-3년 만에 후딱 해 치우는 나라가 과연 백년대계를 말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한 방화 방재 체계를 갖추는 것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의 차이는 어처구니없는 인재(人災)가 발생하느냐 아니냐로 결정되지 않습니다. 미국과 일본 같은 나라에서 발생한 초대형 인재의 역사를 훑어보면 참으로 어처구니없고 상식에서 벗어난 재앙이 나라 규모에 어울리게 거대한 규모로 벌어지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선진과 후진의 차이는 집단 학습을 통한 대처에 있습니다. 후진국에서는 대형 인재가 반복해서 벌어지고 선진국에서는 딱 한번만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시는 화재로 국가의 보물을 잃지 않는 철저한 제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얼마 전 교회 건축 과정에서 소방 당국과 신경 쓰이는 일이 여러 차례 있었습니다. 지역 정치인을 개인적으로 만난 자리에서 고충을 묻기에 사정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어떤 것이든지 자신이 최소한 문의는 해 줄 수 있지만 소방당국에는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유를 물었습니다. 제도적으로 소방당국은 누구의 지시도 받지 않는 지위를 가지고 있다고 답해 주었습니다. 소방 행정은 생명과 직결된 영역이기 때문에 어떤 정치인도 간여할 수 없도록 제도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미국에서 여러 차례 건축 과정을 거치면서 소방 당국이 가장 힘든 관청인 이유를 알 것 같았습니다.

자금성의 건물마다 사방에 사람 키보다 큰 청동 항아리에 물을 채워 화재에 대비한 것을 본 적이 있습니다. 고대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소방은 국가적인 최 우선순위입니다. 불이 난 현장에서 일 초가 급한 상황에 협의와 논의를 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석은 일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영원한 나라를 사는 사람들입니다. 기독교인들은 천만년 대계를 품고 살아야 합니다. 백년대계를 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서 교회와 성도들이 앞장서서 기여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위 칼럼은 지혜와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의 모임인 '연우포럼'(www.younwooforum.com)과 합의하에 전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