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대학교동문 모임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반가운 얼굴들과의 인사를 나눈 후 서로의 근황을 묻다가 ‘누가 안 보인다?’, 하자 ‘그 동문은 지난번 그 일로 섭섭해서 참석 안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동문의 마음이 상하게 되었고, 그래서 동문회에도 참석하지 않게 되었다니 얼마나 서운하게 생각하는지를 대강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살면서 ‘섭섭하다’ 는 말을 잘 사용하고 있고, 자주 듣기도 합니다.

‘섭섭하다’ 는 말은 ‘나는 너에게 이러 저렇게 했는데 너는 나에게 이러 저렇게 해 주지 않으니 속상하고, 서운하다’ 는 뜻입니다. 왜 이렇게 ‘섭섭하다’는 말이 나옵니까?

‘섭섭하다’ 는 말이 나오게 되는 것은 대략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기의 의사를 상대방에게 정확하게 표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정도 이상으로 상대방에게 잘해 주었고, 자기도 상대방에게 그렇게 대접받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정도 이상으로 뭘 하게 되면 꼭 탈이 생기게 됩니다. 맛있는 음식도 정도 이상으로 먹게 되면 탈이 생기기 마련입니다. 사람을 좋아하더라도 한계 이상으로 좋아하고, 정도 이상으로 좋아하다 보니 ‘상사병’ 이 생기게 되는 것입니다. 심하면 스토커가 되어서 자기 자신과 상대방까지 망가뜨리게 됩니다.

운동도 정도 이상으로 하다가 건강을 위해 하던 운동이 오히려 건강을 망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뭐든지 정도 이상으로 하게 되면 반드시 탈이 나게 됩니다. 그러나 정도 이상으로 해도 전혀 탈이 생기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탈은 커녕 좋아하면 할수록 더 행복하고, 아름다와 지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하나님을 정도 이상으로 사랑하기 보다 물질과, 자녀와, 이성(異性)을 정도 이상으로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생기고, 그래서 탈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정도 이상으로 사랑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큰 능력자가 됩니다.

정도 이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께서 어머어마 하게 크게 들어 쓰십니다. 이 칼럼을 읽는 모든 분들이 그런 능력자, 그렇게 쓰임받는 분들이 되시기를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