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모 방송국 열린음악회를 시청했습니다. 우연히 TV를 켰는데 열린음악회의 마지막 가수가 나와 노래를 불렀습니다. 이 마지막으로 출연한 가수는 김흥국이라는 가수였습니다. 첫 곡으로 '59년 왕십리'를 불렀고 두 번째 곡은 '호랑나비'라는 노래로 가수 김흥국씨을 있게 한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호랑나비'라는 노래로 김흥국씨는 오랜 무명의 설움을 한꺼번에 떨쳐버릴 수가 있었고 대한민국 사람으로 이 '호랑나비'를 모르면 간첩이었습니다. 그는 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참 이상합니다. 어렸을 적 시골버스를 타면 꼭 유행가가 흘러나왔고 유행가를 들으면 멀미가 더했습니다. 트로트라는 장르의 노래를 그 당시에는 뽕짝이라고 부르며 많은 사람들이 함께 부르고 흥겨워했지만 동시에 싸구려 노래로 인식이 되었습니다. 이런 노래들이 세월이 지나며 그렇게 싫어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나름대로 인생의 애환이 담긴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김흥국씨는 바로 이런 뽕짝노래를 교향악단의 반주에 맞춰 부르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교향악단은 한국을 대표하는 국립교향악단이기도 합니다.

김흥국씨가 '호랑나비'를 노래부를 때 김흥국씨의 어깨너머로 연주자의 얼굴의 표정을 볼 수가 있었습니다. 그 순간 연주를 하지 않던 현악연주자들의 얼굴표정들은 하나 같이 돌덩이처럼 굳어있었던가, 아니면 완전 무표정이었습니다. 그 날 따라 부부싸움을 하고 연주하러 나온 것인지, 아니면 뽕짝가수의 노래를 연주해야하는 것이 못마땅해서인지 관중석의 관중들의 환한 얼굴과는 정반대였습니다. 비록 몇 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그들의 굳은 얼굴표정을 보며 여러 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언젠가 세계적인 테너가수인 루치아노 파파로티가 팝송가수와 함께 팝송을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습니다. 조수미가 부르는 오페라곡이나 가곡도 좋지만 일반인도 쉽게 부를 수 있는 가요나 포크송도 좋아합니다. 미국의 전 대통령이었던 빌 클린턴을 개인적으로 좋아하지는 않지만 저녁 TV방송에 출연해 섹소폰을 부르는 모습을 좋아합니다. 자신의 영역이나 명예, 혹은 전문성에 가치를 두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취미와 가치도 존중하며 함께 나누는 모습이 더욱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교인들 가운데 아직도 자신의 근엄함과 권위, 혹은 명예를 지키려 찬양시간에 박수 한 번 치지 않고, 웃어야 할 때에 웃지 않지 않고, 봉사해야 할 때에 봉사하지 않는 분들이 계시는 것 같아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저는 권위보다는 겸손함, 근엄한 얼굴보다는 웃는 얼굴, 점잖음보다는 자연스러움이 훨씬 좋습니다. 이것 때문에 주책이 없고 가벼워 보인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면 기꺼이 감수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