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서정희

“아까 말했잖아.”
아이들을 키우면서 내가 가장 많이 했던 말이다.
“냉동실에 미역국 있어. 데워 먹어, 알았지?”
“내가 해준 나물 꼭 꺼내 먹어. 알았지?”
몇 번씩 말하고도 또 말한다.
그런데 나도 엄마에게 참 많이 들었던 말이다.
“아까 말했잖아.”
“그러니까 그렇게 하지 말랬잖아.”
“또 말해야 해?”
아이 입장에서는 이미 들은 이야기다.
“알았다고.”
“알았다고요.”
대답하면서도 또 잊는다.
그런데 성경을 읽다 보면 하나님도 비슷한 말씀을 계속하신다는 생각이 든다.
말을 조심해라. (1–2절)
네 생각만 쏟아내지 마라. (2절)
다른 사람의 말을 함부로 옮기지 마라. (8절)
다투게 만드는 말을 하지 마라. (6절)
네 입이 너를 잡는 덫이 되게 하지 마라. (7절)
그리고 또 말씀하신다.
“내게로 달려오너라.” (10절)
어제도 말씀하셨는데 또 말씀하신다.
특히 잠언에서는 같은 말씀을 여러 모양으로 반복하신다.
중요하니까.
잠언 18장을 읽으면서 문득 예전의 나를 떠올렸다.
방송에서 토크쇼를 진행하던 시절에는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대답할 때가 꽤 있었다. 상대가 말을 하고 있는데 이미 내 머릿속에서는 대답이 만들어져 있었다.
듣는 것보다 대답하는 것이 빨랐다.
조금 급했다.
13절 사연을 듣기 전에 대답하는 자는 미련하다고.
나는 미련한 자였다.

요즘 유튜브 말씀 낭독이나 내가 진행하는 CTS ‘매일 성경’을 보신 분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말하는 게 참 편안해졌어요.”
“예전보다 훨씬 안정적이에요.”
“음성이 편안해요.”
그 말을 들을 때마다 생각한다.
성경 낭독도 훈련의 결과였구나.
문장을 천천히 읽고,
단어를 정확하게 읽고,
뜻을 생각하며 읽었다.
그렇게 오래 읽다 보니 어느 순간 내가 하는 말이 달라져 있었다.
내게 말을 잘하는 법을 가르쳐 준 코치는 성경이었다.
그래서 나는 누군가에게 말을 잘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말한다.
성경을 읽어보라고.
똑똑해지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보라고.
지혜로워지고 싶다면 성경을 읽어보라고.
말을 잘하려고 애쓰기 전에, 성경부터 읽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잠언 18장은 그것을 집요하게 보여준다.
1절의 사람은 자기 소욕을 따르며 스스로 관계에서 떨어져 나간다.
2절에서는 지혜를 구하기보다 자기 의견을 드러내는 것을 좋아한다.
그렇게 쏟아낸 말은 다툼을 만들고, 입은 자신을 잡는 덫이 된다.
8절은 남의 말을 경계한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별식을 먹는것처럼 흥분하며 먹는다.
한 사람의 말을 듣고 다른 사람에게 옮기는 순간, 그 말은 이미 내
뱃속 깊은데로 내려가 버린다.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다르다.
“명철한 자의 입의 말은 깊은 물 같고 지혜의 샘은 솟구쳐 흐르는 내와 같으니라.”
나는 이 문장을 오래 바라본다.
말이 많아서 깊은 것이 아니다.
깊은 사람이 하는 말이 깊은 것이다.
말이 끊임없이 쏟아지는 사람이 아니라, 안에서 오래 길어 올린 것이 있는 사람이 깊은 말을 한다.
한 문장을 읽고,
한 구절 앞에 머물고,
오늘의 삶에 비춰보고,
다시 말씀으로 돌아간다.
그렇게 말씀 앞에 오래 머물다 보면 말도 조금씩 달라진다.
그리고 잠언 18장은 마지막에 뜻밖의 곳으로 우리를 데려간다.
“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10절)
여기서 나는 다시 멈춘다.
내가 흔들릴 때 어디로 달려가는가.
내 생각으로 달려가는가.
내 경험으로 달려가는가.
내 말로 나를 설명하려 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로 달려가는가.
스펄전은 1862년 잠언 18장 10절을 본문으로 설교하면서 고대의 견고한 성채를 떠올렸다. 적이 몰려오면 사람들이 그 성 안으로 달려가고, 성문이 닫히면 밖의 공격으로부터 보호받는 장면이다.
안전하게 하는 것은 그 성으로 달려간 사람의 능력이 아니라 성 자체의 견고함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너무 자주 내 말 안으로 도망쳤다.
설명하고,
해명하고,
설득하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다.
그런데 성경은 또 말한다.
아까 말했잖아.
네 말보다 내 말을 들어라.
네 생각보다 나를 의지해라.
네가 모든 것을 설명하려 하지 말고 내게로 달려오너라.
계속해서 말을 조심하라고 가르치더니, 마지막에는 결국 묻는다.
어디로 달려가는 사람인가.
말을 닫는 훈련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입을 닫은 그 자리에 무엇을 두느냐가 더 중요하다.
내 생각을 두면 겉으로는 조용해도 속은 시끄럽다.
그러나 하나님께 달려가면 말하지 않아도 마음이 먼저 안전해진다.
아마 그래서 주님은 같은 말씀을 자꾸 하시는 것 같다.
“아까 말했잖아.”
중요하니까 또 말씀하신다.
오늘도 읽고,
오늘도 듣고,
오늘도 천천히 말하고,
다시 그 말씀 안으로 들어간다.
성경은 내가 말을 잘하도록 훈련시킨 책이기도 하지만, 그보다 먼저 내가 어디에서 안전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준 책이었다.
그래서 오늘도 나는 내 말보다 말씀을 먼저 배운다.
나의 코치는 성경이었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훈련 중이다.
아까 배웠지만,
또 배워야 한다.
오늘도 나의 코치, 성경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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