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살다 보면 사람이 무너질 때가 있다. 어떤 때일까? 사업에 실패했을 때 무너진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을 때 무너진다. 건강을 잃었을 때 무너진다.
그럴 때 우리는 절망하게 된다. 그런데 때로는 이것보다 더 깊은 곳에서 사람이 무너진다.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될 때이다. “내가 이렇게 잘못된 삶을 살았구나.” “내가 하나님 앞에서 이렇게 멀어졌구나.” “내가 이렇게 나쁜 사람이었구나.”
[2]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사람은 견디기 어려운 슬픔에 빠질 수 있다. 느헤미야 8장의 이스라엘 백성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었다.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져 있었다. 오랫동안 폐허 가운데 살았다. 그런데 느헤미야와 백성들이 성벽을 다시 세웠다. 성벽이 완성되었다. 이제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성벽을 세운 다음에 더 중요한 일이 시작되었다.
사람의 마음을 다시 세우는 일이다.
[3] 백성들이 수문 앞 광장에 모인다. 학사 에스라가 율법책을 가져와 읽는다. 그런데 8절에 놀라운 말씀이 나온다.
“하나님의 율법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라.”
그러자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백성들이 울기 시작했다. 왜 울었을까?
말씀이 그들의 마음을 찔렀기 때문이다.
[4]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거울 앞에 자신들의 모습을 비추어 보니 지금까지의 삶이 보였다. 그동안 하나님을 떠나 살았던 모습이 드러났다. 불순종했던 모습이 보였다. 언약을 지키지 못했던 모습이 보였다. 그래서 울었다. 그랬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위로하기 전에 먼저 우리를 폭로할 때가 있다. 우리의 마음이 말씀 앞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슬피 우는 것이 정상적인 자세다.
[5] 자신들의 마음이 폭로된 백성들의 반응이 울음이다. 그런데 여기서 놀라운 장면이 등장한다. 느헤미야 8장 9절 말씀이다.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왜 느헤미야가 백성들에게 울지 말라고 했을까? 그들의 죄에 대한 회개가 중요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다. 죄는 심각했다. 회개도 필요하고 눈물도 필요했다.
[6] 그러나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죄책감에 영원히 붙잡혀 있는 것이 아니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죄를 보여 주시는 궁극적인 목적은 우리를 절망시키는 것이 아니라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정상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우리를 절망과 눈물의 자리에서 일으키신다.
그리고 말씀하신다. “이제 나를 바라보아라.”
[7] 그리고 10절에서 오늘 본문의 핵심 구절이 등장한다.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이 말씀을 우리는 너무 쉽게 이해한다. “힘들 때 하나님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아진다.” “하나님 안에서 긍정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구절은 그런 정도의 말씀이 아니다.
여기서 “힘”이라는 말은 히브리어로 ‘מָעוֹז’(마오즈)이다.
[8] 이 말은 ‘요새, 피난처, 견고한 성채’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너희가 다시 일어설 수 있는 힘은 너희 자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의 요새가 여호와이시다.” 이런 의미이다.
생각해 보라. 백성들이 탄식하고 울게 된 것은 무엇때문인가? 죄되고 무기력한 자기 자신들의 모습 때문이다. 그렇다. 자신들의 실패를 바라보면서 무기력해진 것이다. 자신들의 죄를 바라보면서 힘이 없어진 것이다.
[9] 그래서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한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면 다시 일어설 이유가 생기고 요동치 않고 견고한 요새가 생기기 때문이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가장 위험한 순간 중 하나는 자신만 바라볼 때이다.
“나는 왜 이것밖에 안 되지?” “나는 왜 또 넘어졌지?” “나는 왜 이렇게 믿음이 없지?”
이렇게 자신만 계속 바라보면 결국 두 가지 가운데 하나로 가게 된다.
[10] 교만하거나 절망하게 된다. 잘하면 교만하다. 내가 잘나서 잘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못하면 절망한다. 무능한 자신의 모습이 드러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복음은 우리의 시선을 나에게서 하나님께로 돌린다. “나는 부족하지만,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나는 넘어졌지만,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으신다.” “나는 약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시다.” 이것이 여호와를 기뻐하는 믿음이다.
[11] 느헤미야 8:10은 이렇게 이어진다.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것은 단순한 잔치가 아니다. 거룩한 날의 공동체적 기쁨이다. 특히 중요한 표현이 있다.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기쁨은 자기만 즐기는 기쁨이 아니다.
[12]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를 공동체와 나누는 기쁨이다. 그래서 12절에서 백성들은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였으니”라고 기록하고 있다.
왜 즐거워했나?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준 말을 밝히 앎이라.”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그렇다.
자신의 허물과 죄를 인식하고 울고 회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13]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 있으면 안 된다. 우선 하나님을 쳐다보고 그분을 우리의 든든한 요새로 삼아야 한다. 아울러 여호와를 되찾은 기쁨으로 축제를 벌이면서 주변에 가난하고 주린 영혼들을 위해서 음식과 기쁨을 나눠주어야 한다.
오늘 내 삶에도 그런 변화와 열매의 삶이 구체적으로 펼쳐지길 이 새벽에 간절히 기도드린다.체적으로 펼쳐지길 이 새벽에 간절히 기도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