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대학원에서 공부할 때, 저는 출판사로부터 번역 일감을 받아서 학비와 생활비를 충당했습니다. 몇 개월 작업을 하여 원고를 갖다 주면, 많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몇 개월을 지낼 수 있는 원고료를 받을 수 있 었습니다.

첫 번째 원고료를 받았을 때, 돈에 관해 잊을 수 없는 훈련을 받았습 니다. 첫 번째 원고료로 받은 돈이 8만원이었습니다. 저는 그 돈을 들고 청계천에 있는 헌책방 거리로 갔습니다. 신학 공부에는 특히 책이 많이 필요한데, 책을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끙끙 앓고 있던 차였습니다. 저는 그 몫 돈으로 필요한 책을 전부 사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곳에서는 꽤 좋은 신학 책도 2천원 정도에 살 수 있었습니다.

청계천으로 가는 동안 제 마음에는 번민이 생겼습니다. 이 원고료에 서도 십일조를 바쳐야 할까? 8천원이면, 좋은 책 네 권을 살 수 있는 돈 인데, 꼭 그래야 할까? 십일조의 본래 의미 중에는 제사장과 레위인의 생활을 도우려는 것도 있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신학생이요 전도사인 나 는 십일조의 의무에서 면제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생활 자체가 어려운 상황에서, 굳이 십일조를 바쳐야 하나? 내가 신학 공부를 위해서 십일조를 사용한다면, 하나님이 용서해 주시지 않을까?

청계천 헌책방 거리에 도착할 때까지 저는 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 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마음 한 편으로는 이 문제와 씨름하면서, 첫 책방 에서부터 뒤져 나갔습니다. 세 번째 책방에 이르러 책 몇 권을 집어 들 고 값을 치르려고 뒷주머니에 손을 넣었는데, 지갑이 없는 겁니다. 순간, 아찔했습니다. 누가 훔쳐갔거나(당시에는 그런 일이 많았습니다), 아니면 제 부주의로 흘렸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누가 훔쳐갔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고, 만일에 흘렸으면 혹시나 아직 길에 있을지 몰라서, 오던 길을 되돌아가면서 찾아보았습니다. 그렇게 하여 방금 책을 사 가 지고 나온 책방에 갔습니다. 혹시 제 지갑을 보지 못했느냐고 책방 주인 에게 물으니, 지갑의 내용에 대해 물어 보십니다. 제가 말한 것과 지갑의 내용이 일치하는 것이 확인되자, 그 주인께서 지갑을 넘겨 주셨습니다. 저는 그 주인에게 사례를 하고 안도의 한숨을 쉬었습니다.

그 때, 제가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이건 하나님의 경고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십일조를 떼어 먹은 것에 대한 징계요 경고라고 생각 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돈에 대한 욕심에 눈이 멀면 이렇게 된다”는 경고로 생각되었습니다. 그 때, 저는 마음에 분명하게 새겼습니다. 십일 조 헌금은 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나 자신을 해방시키는 영적 훈련이라 고 말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것을 실천하고 있습니다. 저는, 십일조 헌금을 드릴 때마다 두 가지의 기도를 드립니다. 하나는, “주님, 또 한 달 열심히 일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라는 기도이며, 또 하나는 “하나님, 저를 돈에 대한 욕심으로부터 해방시켜 주셔서, 돈의 노예가 아니라 돈의 주인으로 살게 하소서”라는 기도입니다.

청지기 주일에 돈으로부터 얼마나 자유로운지, 내가 돈의 노예인지 주인인지, 한 번 되돌아보기를 기대합니다. 십일조 헌금은 물질주의로부 터의 참된 자유의 선언이요, 그 증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