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주님이 왜 깨어 있으라고 하실까요? 그것은, 그 시와 때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깨어 있어야 하는 이유를 바로 열 처녀의 비유에서 설명하십니다. 열 처녀가 등불을 들고 신랑을 맞이하러 나갔는데 신랑이 늦게 옵니다. 다들 기름을 준비했지만 미련한 다섯 처녀들의 기름이 다 떨어져 갑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은 여유의 기름을 그릇에 담아서 가지고 갔다고 말씀합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 좀 나누어 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모두가 다 기름이 부족할 테니까 가서 사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한 마디로 언제 신랑이 올지 모르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넉넉히 가지고 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깨어 있으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내려 놓음’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계신 이용규 선교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도전이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선교사님 글 중에 이런 간증을 실어 놓으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2005년도 봄에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을 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고 합니다. 벌러르라는 한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교회에 들어왔답니다.
그녀는 몇 달 전에 선교사님의 기도팀에 의해서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기적을 체험한 자매였습니다. 예배 시간 몇 시간 전에 집에서 기르던 소를 잃어 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 왔다는 겁니다.
그 때 선교사님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소가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선택한 믿음이 부끄럽지 않게 해 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서 잃어 버렸던 소가 집으로 간 게 아니라 예배 장소로 제 발로 찾아 왔다고 합니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했던 그 자매는 예배와 소라는 두 가지 기쁨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선교사님의 도전은 과연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 예배보다 소를 먼저 선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질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을 둘 다 누리고 살기 원한다면 그것은 양다리를 걸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다리를 걸친 사람은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십자가를 택하기 보다 세상을 택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참으로 동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항상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과연 내가 주님께서 쓰시겠다 부르실 때 나의 것을 내려 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주인 삼았던 것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미련한 다섯 처녀의 준비성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준비한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준비한다…이 말이 절대적으로 전제로 하고 있는 개념은 바로 ‘미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준비한다고 할 때 그 말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준비한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미리…일이 터지기 전에…일이 시작되기 전에 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유용한 일꾼은 어떤 사람일까요?
교회에서도 함께 사역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미리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사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는 사람들…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그저 남들이 준비해 놓으면 와서 누리고 어지르고 전혀 엉뚱한 곳에다 갖다 놓기도 하고…그런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미리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분들은 일하는 스타일 다릅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어떠하리라고 미리 머리 속에 그려 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를 만들고 점검합니다. 그렇게 미리 준비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는 데…미리 준비하는 자세는 천국에 대한 욕심…천국에 대한 주인 의식…교회에 대한 주인 의식이 없이는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는 희생의 정신이 없이 어떻게 미리 준비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의 모습을 보고 칭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의 미리 준비하는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천국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믿음의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미련한 다섯 처녀들이 기름 좀 나누어 달라고 하니까 그렇게 하면 모두가 다 기름이 부족할 테니까 가서 사가지고 오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기름을 사러 간 사이에 신랑이 왔습니다. 한 마디로 언제 신랑이 올지 모르니까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처럼 기름을 넉넉히 가지고 갔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 깨어 있으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그것은 항상 미리 준비하는 자세를 말합니다. 요즘 제가 읽고 있는 책이 한 권 있습니다. ‘내려 놓음’이라는 제목의 책인데 몽골에서 선교사로 일하고 계신 이용규 선교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도전이 되는 부분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 선교사님 글 중에 이런 간증을 실어 놓으신 것을 읽어 보았습니다. 2005년도 봄에 몽골 이레교회에서 개척을 한 베르흐 지역의 예배 처소를 방문해서 예배를 드릴 때였다고 합니다. 벌러르라는 한 자매가 예배 시간에 땀으로 뒤범벅이 되어서 교회에 들어왔답니다.
그녀는 몇 달 전에 선교사님의 기도팀에 의해서 듣지 못하던 귀가 열린 기적을 체험한 자매였습니다. 예배 시간 몇 시간 전에 집에서 기르던 소를 잃어 버려서 소를 찾으러 뛰어다니다가 예배 시간이 가까운 것을 알고 소를 버려두고 말씀을 들으려고 들판을 가로질러 뛰어 왔다는 겁니다.
그 때 선교사님이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그녀가 소가 아닌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선택한 믿음이 부끄럽지 않게 해 달라고 그 자매가 소를 다시 찾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예배를 마치고 나서 잃어 버렸던 소가 집으로 간 게 아니라 예배 장소로 제 발로 찾아 왔다고 합니다.
소가 아닌 예배의 기쁨을 선택했던 그 자매는 예배와 소라는 두 가지 기쁨을 동시에 얻었습니다. 선교사님의 도전은 과연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 예배보다 소를 먼저 선택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질문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분명히 우리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세상과 하나님을 둘 다 누리고 살기 원한다면 그것은 양다리를 걸친 것이라고 말합니다. 양다리를 걸친 사람은 반드시 결정적인 순간에 가서는 십자가를 택하기 보다 세상을 택하기 마련이라는 겁니다. 참으로 동감이 가는 말씀이었습니다.
우리가 왜 항상 준비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과연 내가 주님께서 쓰시겠다 부르실 때 나의 것을 내려 놓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인가…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언제든지 주님께서 원하신다면 내가 주인 삼았던 것들, 내가 사랑했던 것들을 내려 놓을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저는 미련한 다섯 처녀의 준비성에 대해서 말씀을 묵상하면서 준비한다는 말에 대해서 다시 한번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준비한다…이 말이 절대적으로 전제로 하고 있는 개념은 바로 ‘미리’…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준비한다고 할 때 그 말은 미리 준비하는 것이지 일이 다 끝난 다음에 준비한다고는 말하지 않습니다. 미리…일이 터지기 전에…일이 시작되기 전에 하는 것이 준비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유용한 일꾼은 어떤 사람일까요?
교회에서도 함께 사역을 하다 보면 하나님께서 미리 볼 수 있는 눈을 주신 분들이 계십니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은사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미리 보는 사람들…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리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그저 남들이 준비해 놓으면 와서 누리고 어지르고 전혀 엉뚱한 곳에다 갖다 놓기도 하고…그런 모습을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미리 볼 줄 아는 눈을 가진 분들은 일하는 스타일 다릅니다. 앞으로 전개될 상황이 어떠하리라고 미리 머리 속에 그려 봅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 필요한 것들을 리스트를 만들고 점검합니다. 그렇게 미리 준비합니다.
주님께서 천국은 침노하는 자의 것이라고 하셨는 데…미리 준비하는 자세는 천국에 대한 욕심…천국에 대한 주인 의식…교회에 대한 주인 의식이 없이는 결코 생기지 않습니다. 내가 감당해야 할 부분이라는 희생의 정신이 없이 어떻게 미리 준비하겠습니까?
우리 주님께서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의 모습을 보고 칭찬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미리 준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슬기로운 다섯 처녀들의 미리 준비하는 동기가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그것이 바로 천국은 나의 것이라고 하는 믿음의 욕심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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