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해마다 새해가 되면 그 해에 '하나님이 각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이라 해서 성구를 하나씩 뽑게 하는 교회들이 있다. 미신적인 행위라고 비난하는 이들이 있긴 하지만, 내용이 성경 말씀이라면 그리 비난할 일만은 아닌 것 같다. 다 힘이 되고 은혜가 되는 축복의 성구들인데, 자신이 뽑은 한 구절을 붙잡고 한 해를 힘차게 살아가는 일을 무조건 나쁘다 여길 순 없다고 본다.
송구영신예배를 다녀와서 잠들었다가 좀 전에 깨어났다.
[2] 동쪽 창문 밖이 훤해서 25층 아파트에서 내다보니 동해에서 붉은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자주 보는 광경이지만, 새해 첫날에 보는 일출 광경이어서 그런지 여느 때와는 달리 색다르게 느껴진다.
새해에 첫 번째 주시는 말씀이 무엇일까 성경을 뒤지는데, 소중한 한 구절의 말씀이 눈에 팍 들어왔다. 신명기 11장 12절의 말씀이다.
내용을 읽는 순간 가슴에 팍 꽂혀옴을 절감할 수 있었다.
[3] 내용은 다음과 같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새해를 맞는 내게 딱 맞는 말씀이었다.
전후 문맥을 살피면서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았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그 위”라는 짧은 단어에 있다. 히브리어 원문은 “바흐(בָּהּ)”로, ‘그 안에, 그 위에’라는 뜻이다.
[4] 이 말의 선행사는 분명하다. 바로 ‘가나안 땅’(אֶרֶץ)이다. 그러나 이 표현은 단순히 하나님이 하늘에서 땅을 내려다보신다는 공간적 묘사가 아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눈’은 관찰자의 눈이 아니라 ‘언약을 책임지시는 분의 눈’, ‘돌보시고 지키시는 분의 눈’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이 구절은 '가나안 땅 전체가 하나님의 지속적인 관심과 책임 있는 섭리 아래 놓여 있다'는 소중한 선언이다.
[5] 이 말씀은 앞선 문맥과 분리해서는 이해할 수 없다. 신명기 11장 10~11절에서 하나님은 애굽과 가나안을 대비하신다. 애굽은 나일강의 물을 발로 끌어올려 농사짓는 땅이었다. 인간의 기술, 체계, 관리가 생존을 좌우했다. 그러나 가나안은 달랐다. 하늘에서 비가 내려야만 생존할 수 있는 땅이었다.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구조 속에 놓인 땅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으로 인도하셨다.
[6] 편리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땅’으로 말이다. 그렇기에 하나님은 “내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말은 “너희가 잘하든 못하든 내가 지켜본다”는 경고가 아니라, “내가 맡은 내 소유의 땅이니 내가 끝까지 책임진다”라는 약속이다. 새해 초만이 아니라 연말까지, 시작만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눈은 떠나지 않는다. 우리의 소망이 여기에 있다.
좀 더 이해를 쉽게 해보자.
[7] 대형 물류센터에서 자동화 시스템이 완벽하게 작동할 때는 관리자가 현장을 자주 보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사람의 손길이 많이 필요한 작은 공장은 다르다. 사장이 수시로 현장을 돌며 기계를 점검하고, 직원의 상태를 살핀다. 왜냐하면 작은 문제 하나가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관심이 많다는 것은 위험하다는 뜻이 아니라, ‘소중하다’는 뜻이다.
가나안이 바로 그런 땅이었다.
[8] 하나님의 눈이 머문 이유는 불안정해서가 아니라, 언약 안에서 너무도 중요했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스스로 자립했다고 느끼는 순간을 경계하셨고, 그래서 일부러 하늘을 바라보게 하셨다. 출애굽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까지 광야의 삶 또한 하늘만 바라보고 살게 하신 특별한 의도였듯이 말이다.
2026년 새해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도 다르지 않다.
[9] 우리는 계획을 세우고, 기술을 배우고, 미래를 예측하려 애쓴다. 하다 못해 쪽집게라 하는 무당들을 찾는 이도 많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의 삶은 예측되거나 통제되지 않는 변수들로 가득 차 있다. 건강, 경제, 정치, 인간관계, 사명 등, 우리가 붙들 수 없는 것들이 우리 삶을 지탱하고 있다. 그런 한계적 상황에서 우리가 유일하게 의지할 수 있는 길이 있다면 ‘우리를 떠나지 않는 하나님의 눈에 집중하는 것’이다.
[10] 새해는 종종 “어느 해보다 더 잘 살아보겠다”라는 다짐으로 시작한다. 서양인들은 '새해 새 결심’(New Year's Resolution)을 한다.
그러나 신명기 11장 12절은 우리에게 다른 출발선을 제시한다. “더 의지하라.”
가나안처럼 '하늘을 바라보는 삶', '하나님의 눈 아래 놓인 삶' 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모든 것을 장악하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대신 그분의 눈 아래 '머물기'(stay)를 원하신다.
[11] 2026년 또한 모든 것이 순조로운 해가 아닐 것이다. 가나안처럼 예측할 수 없는 순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약속만은 변하지 않는다. ‘여호와의 눈이 이 해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신다’는 사실 말이다. 그 눈 아래서 살아가는 자는 어떤 환경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을 것이다. 연초부터 연말까지,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눈 안에 있음을 믿으며, 2026년을 신뢰함으로 걸었으면 좋겠다. 그 눈이 떠나지 않는 한, 이 해는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