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Photo : ) 김병구 장로(바른구원관선교회).

오늘날 많은 설교가 상처 입은 성도들을 위로하고, 지친 영혼을 어루만지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물론 위로는 복음의 중요한 기능이다. 예수님께서도 상한 갈대를 꺾지 않으시고,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않으셨다. 그러나 설교가 위로에만 머물고, 변화에까지 이르지 못한다면 교회는 점점 영적 능력을 상실하게 된다. 성도는 위로받는 존재로는 머물 수 있으나, 거룩하게 변화되는 제자로는 자라지 못하게 된다.

성경이 말하는 설교는 언제나 인간의 마음만이 아니라 삶과 성품을 변화시키는 능력을 동반한다. 선지자들의 설교는 늘 “너희 길을 돌이키라”는 회개의 외침이었고, 예수님의 공생애 첫 선포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사도들의 설교 역시 죄를 가볍게 넘기는 위로가 아니라, 죄에서 떠나 하나님께로 돌아오라는 강력한 요청이었다. 참된 설교는 늘 위로와 함께 변화를 요구한다.

오늘날 위로 위주의 설교가 반복되면서 성도들 안에는 ‘위로받는 신앙’은 강해졌지만 ‘자기를 부인하는 신앙’은 약해졌다. 십자가 없는 위로, 회개 없는 은혜, 순종 없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 성품의 변화 없는 신앙은 성경적 신앙이 아니다.

진정한 치유는 감정이 진정되는 데서 끝나지 않는다. 분노가 절제로, 교만이 겸손으로, 미움이 사랑으로 변화될 때 비로소 복음의 능력이 삶 속에서 증명된다. 이전과 같은 말, 같은 선택, 같은 가치관을 유지한 채 “위로만 받은 신앙”은 결국 열매 없는 신앙으로 남게 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눈물의 순간이 아니라, 삶의 방향 전환이다.

오늘의 교회는 다시 한 번 설교의 방향을 되돌아보아야 한다. 설교는 듣기 편한 말이 아니라, 영혼을 깨우는 말이어야 한다. 잠시 감동을 주는 메시지가 아니라, 월요일의 삶을 바꾸는 말씀이 되어야 한다. 가정과 직장, 돈과 권력 앞에서도 이전과는 다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이 진정한 설교의 열매다.

설교는 단순한 위로의 기술이 아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간의 성품을 빚어 가는 거룩한 도구이다. 위로는 필요하지만 변화 없는 위로는 불완전하다. 참된 설교는 위로하면서 동시에 돌이키게 하고, 안아 주면서 동시에 새 사람으로 살아가게 한다. 오늘 우리의 설교가 다시 성도들의 성품을 흔들고, 삶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