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Photo : 강준민 목사(새생명비전교회))

추수감사절 전날 밤, 왠지 모르게 힘이 들었습니다. 쓸쓸함과 외로움이 찾아왔습니다. 조용한 우울함과 작은 흔들림이 밀려왔습니다. 가끔 예고 없이 찾아오는 반갑지 않은 손님이지요. 너무 깊이 빠져들면 안 될 것 같아 성경을 펴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제 마음을 달래 줄 수 있는 책을 꺼내 읽었습니다. 어떤 생각이나 감정은 가만두면 마음 깊숙이 들어와 자리를 잡으려 합니다. 그럴 때 가장 좋은 방법은 움직이는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시도해 보는 것, 작은 변화를 시작해 보는 것입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마음이 훨씬 가벼워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문득 이런 생각이 있었습니다. 항상 행복할 수는 없다는 사실, 무한한 행복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은 자연의 사계절과 같습니다. 바다의 밀물과 썰물처럼 오르내립니다. 항상 같은 감정을 유지할 수 없습니다. 항상 잘 될 수도 없습니다. 어떤 날은 밝고, 어떤 날은 우울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사람은 한계가 있습니다. 우리는 완전할 수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상한 갈대와 같고, 꺼져가는 등불과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꺼져가는 불꽃을 다시 일으키시는 성령님의 바람이 필요합니다. 영혼의 산소와 같은 사랑하는 사람들의 격려가 필요합니다. 지혜롭게 한계를 끌어안는 사랑이 필요합니다.

첫째, 작은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것 속에 보배를 담아 두십니다. 천국을 작은 겨자씨에 비유하신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겨자씨는 작지만, 자라면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깃듭니다. 우리는 큰 것만 추구하다가 작은 것 속에 담긴 아름다움을 잃어버렸습니다. 작은 것 속에 담긴 무한한 가능성을 보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예수님이 작은 아기로 마구간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유 위에 누이셨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작은 마을입니다. 그 작은 곳에서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태어나셨습니다.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미 5:2). 예수님이 태어나신 장소도 작은 마구간입니다. 작은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은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둘째, 약한 것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지혜입니다. 우리는 강해지고 싶어 합니다. 강력한 힘을 발휘하기를 원합니다. 약함을 한계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약함 속에 숨겨진 은혜를 가르쳐 줍니다. 강하면 교만해지기 쉽고, 힘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강하면 지배하고 억압하려고 합니다. 반면에 약하면 겸손해지고, 온유해집니다. 약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 맡깁니다. 약할 때 우리는 연합하고 협력합니다. 약할 때 우리는 하나가 됩니다. 강할 때 자아를 신뢰하지만, 약할 때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강하면 자신이 커 보이지만, 약할 때는 크신 하나님이 눈에 들어옵니다. 하나님이 작아 보이고, 자신이 커 보이는 순간, 영적 위험이 찾아옵니다. 자아가 강하면 육의 힘으로 살게 됩니다. 육의 생각으로 살게 됩니다. 반면에 약하면 자기를 부인하고 영의 생각과 영의 힘으로 살게 됩니다.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을 줍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6).

셋째, 자신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자족은 행복의 비결입니다. 자족의 비결은 머무는 곳을 사랑하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든 것을 한 번에 주지 않으십니다. 모든 땅을 다 주지 않으십니다.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 16:6). 하나님은 머무는 곳을 사랑하고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에게 복을 더하십니다. 요셉은 머무는 곳에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보디발의 집에서도, 감옥에서도, 총리가 된 후 애굽 땅에서도 동일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머무는 곳이 영원한 자리는 아닙니다. 때가 되면 하나님이 넓히시고, 때가 되면 옮기십니다.

넷째, 속도를 줄이는 것이 지혜입니다. 지금은 광속으로 변화하는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빠른 성장을 요구하지만, 속도가 빨라질수록 영혼은 불안해집니다. 영혼은 빠른 속도와 거대함을 힘들어합니다. 모든 생명은 작게 시작하여 서서히 자랍니다. 아이는 엄마의 자궁에서 10개월 동안 서서히 자랍니다. 큰 나무도 작은 씨앗에서 서서히 성장합니다. 나무가 아무리 커도 끝없이 솟구쳐 오를 수는 없습니다. 잘 자라는 나무도 어느 한계 안에서만 성장하게 됩니다. 서두름은 영혼을 위축시키고, 성급함은 영혼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서두름은 사랑의 적입니다. 사랑하려면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친밀한 사랑은 느림의 미학을 즐길 때 가능해집니다.

속도를 줄일 때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말씀 앞에 고요히 머물 때 말씀의 생수가 영혼을 적십니다. 그 생수를 묵상이라는 두레박으로 길어 올려 마시도록 하십시오. 묵상을 위해서는 속도를 줄여야 합니다. 그때 말씀의 맛과 말씀의 경이로움을 깊이 누리게 됩니다. 한계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를 보호하고 겸손하게 하시는 은혜의 울타리입니다. 반면 통제되지 않은 야망은 사탄이 이용하기 쉬운 도구가 됩니다. 자신을 작게 여기고, 자신을 비우고 낮추는 길이 복된 길입니다. 그때 하나님이 크게 보입니다. 은혜는 깊어지고, 내면은 넉넉해집니다. 관계는 신실해지고, 사명은 정결해집니다. 한계를 끌어안는 지혜와 사랑으로 풍성한 생명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목양실에서 강준민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