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제리 맥글로틀린의 기고글인 '위대한 부흥이 대형 집회에서 시작되지 않는 이유'(Why the next great revival won't start at big gatherings)를 25일 게재했다.
제리 맥글로틀린은 헌정 공화국을 보존하고 발전시키는 데 헌신하는 게스트를 대변하고 유대-기독교 윤리를 유지하는 것으로 유명한 홍보 기관인 스페셜 게스트(Special Guest)의 CEO로 재직하고 있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요즘 부흥(revival)에 대한 이야기가 참 많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아주사 거리(Azusa Street) 부흥, 웨일즈(Welsh) 부흥, 그리고 18세기 수많은 이들의 마음을 뒤흔들었던 대각성(Great Awakening)을 떠올린다. 좀 더 최근에는, 사람들이 며칠 또는 몇 주씩 머물렀던 애즈베리(Asbury) 대학 부흥이나, 수많은 신자들이 더 깊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구하게 한 토론토 블레싱(Toronto Blessing)도 있었다.
그런데 요즘 또 자주 등장하는 표현이 있다. 바로 '더 큰 영광'(greater glory)이다. 이는 성령의 가장 큰 부으심은 아직 오지 않았으며-예수와 함께 걸었던 사도들이 경험한 기적들보다 더 큰 역사가 앞에 놓여 있다는 믿음이다.
예수님께서도 말씀하셨다. "내가 아버지께로 가므로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리라." 그분이 승천하신 후 성령을 보내주셨고, 그 '다락방의 경험'을 통해 믿는 자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내주하시는 은혜를 받게 되었다. 우리는 이제 성령께서 지속적으로 우리를 인도하시는 특권과 영광을 누리고 있다.
옛 조상들과 선지자들은 하나님과의 그러한 친밀함을 갈망했다. 그러나 우리는 종종 그것을 당연히 여긴다. 마치 만나에 지친 옛 이스라엘처럼 말이다. 그들은 고기를 달라고 외쳤고, 하나님이 메추라기를 보내셨을 때 많은 사람이 죽었는데, 그들의 마음이 이미 하늘의 완전한 양식을 거부했기 때문이다.
그 이야기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런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영원한 것을 눈앞에 두고도, 일시적인 것을 갈망하고 있는가?"
그런데도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
우리는 종종 "하나님은 내 마음을 아신다"는 말로 스스로를 위로한다. 물론 사실이다. 그러나 때로는 그 말이 영적 핑계가 될 때가 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개인적 바람과 다를 때, 우리는 "주님, 당신의 뜻을 원합니다"라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조용히 "...하지만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시죠"라고 덧붙인다. 즉, "제가 진짜 이걸 원하지 않는다는 걸 하나님도 이해하실 거예요"라는 의미다.
그렇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아신다. 그러나 우리도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있다. 그분의 뜻은 완전하다. 반면 성경은 말한다: "사람의 마음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하니..." (예레미야 17:9)
그러므로 "하나님은 제 마음을 아세요"라는 말을 도피구가 아니라 신뢰의 고백으로 바꾸자: "주님, 제 마음을 아시지만, 저는 제 마음보다 주님을 더 신뢰합니다." 그 마음을 그분의 손에 맡기고, 부분적 편안함이 아니라 완전한 뜻을 구하자. "하나님, 제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하소서." (시편 51:10)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내 뜻을 원하는 자리에서 그분의 뜻을 원하는 자리로 이동하게 되고-바로 거기서 부흥이 시작된다.
"한 사람의 부흥" 진짜 부흥은 어디서 시작되는가?
필자는 다음 위대한 부흥은 거대한 스타디움 집회나 바이럴 예배 영상에서 시작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그것은 한 사람의 마음 속에서 시작될 것이다. 말 그대로, "한 사람의 부흥(revival of one)"이다.
한 사람의 부흥이란, 하나님과 끝까지 동행하기로 결단한 신자를 말한다. 하나님의 뜻을 "원하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진짜로 그 뜻 자체를 원하는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어려운 예를 생각해보자. 하나님의 뜻이 당신의 편안함을 시험하는 결혼으로 이끈다면? 하나님의 계획이 24시간 돌봄이 필요한 특수 욕구 아동을 양육하는 것이라면? 그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아니면 속으로는 누군가 다른 사람이 그 일을 하길 바라고 있을까? 이 지점이 바로 부흥의 갈림길이다.
부흥의 길
해답은 단순하지만 깊다. 우리 마음에 분명하게 결단하는 것은 하나님의 완전한 뜻과 완전한 때를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핵심은 이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신뢰할 때만 그분께 완전히 순복할 수 있다. 하나님은 단지 '사랑이 많으신 분'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으셨다. 그것이 우리의 모델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그것을 이 땅에서 반영하는 것, 이것이 부흥이다. 즉, 감정이 아니라, 정렬(alignment)이다.
연합된 부흥
만약 우리가 각각 "한 사람의 부흥"을 경험한다면 어떨까? 전 세계 신자들 사이에 어떤 영적 시너지(synergy)가 일어날까? 각 사람이 하나님의 뜻과 타이밍 안에서 걷고, 성령의 흐름 속에서 서로 완전한 일치를 이루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요한복음 17장의 핵심이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하나인 것처럼 그들도 하나 되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던 그 자리 말이다. 다가올 부흥은 우리 가운데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통해 일어날 것이다. 부흥이 건물이나 운동에서 시작되기를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시작되기를 구하자. 우리가 개인적으로 새로워지고, 그다음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한 성령, 한 사명, 한 사랑 안에서 연합되자. 우리가 바로 그 '한 사람의 부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