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oto : )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이명진(한국기독교생명윤리협회 상임운영위원장, 성산생명윤리연구소 전 소장)

나는 되고 너는 안 돼 

조지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은 전체주의를 비판하는 정치 우화 소설이다. 동물농장에 나오는 돼지 나폴레옹과 스노볼은 평등한 사회를 만들겠다고 혁명을 일으키고 인간 주인을 몰아낸다. 

돼지들은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7가지 규율을 만든다. 1. 두 발로 걷는 자는 적이다. 2. 네 발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친구이다. 3. 동물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동물은 침대에서 자서는 안 된다. 5. 동물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하지만 권력에 취한 돼지 나폴레옹은 자신의 이익과 권력 유지를 위해 7가지 규율을 교묘하게 수정해 간다. '동물은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는 규칙은 '침대에 시트만 없으면 괜찮다'로 바뀌고, '술을 마시면 안 된다'는 '과도하게 마시면 안 된다'로,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는 '정당한 이유 없이 죽여서는 안 된다'로 바꾸어 버린다. 결국 돼지 나폴레옹은 규칙을 무시하고 인간처럼 두 발로 걸어 다닌다. 자신의 주변에 사나운 개들을 포진시켜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자신에게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대하는 동물들을 위협하고 입을 막아버린다. 

조지 오웰은 소설을 통해 도덕적 책임과 견제가 없는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한다는 것과 자신의 입지를 정당화하기 위해 언어와 규칙을 조작하고 왜곡시키는 타락한 권력의 모습 그리고 공포와 선동정치로 대중을 무력화시키는 전체주의의 위험성을 꼬집고 있다. 

한 분을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는 현 정권 

현재 대한민국이 동물농장화 되고 있다. 한 입을 가지고 두 말을 하고, 어제와 오늘의 말이 다르다. 현 여권은 자신들의 권력 유지를 위해서라면 못 할 일이 없어 보인다.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현 여당은 한 명을 지키기 위해 비정상적인 방탄 국회와 방탄 입법을 서슴지 않았다. 최근 2년간 국회에서 이루어진 탄핵 소추안 발의 건수가 대한민국 헌정 사상 최다 수준이다. 입법권을 압박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정권을 잡은 후에는 자유민주주의 질서와 헌법을 무력화시키는 작업들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자유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견제와 균형의 원칙을 무시하고,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법과 제도를 만들고 있다. 

입법부와 정부 요직은 한 명을 위한 대형 로펌이 되어버렸다. 국회의원의 격과 품위를 찾아 볼 수 없는 저급한 고함질과 무례함이 고스란히 방송을 타고 있다. 상식과 법 정의에 역행하는 법을 만들고, 뜯어고치고 있다. 가짜뉴스로 사법부 수장을 위협하고 자신들을 기소한 검사를 탄핵하고, 윗선의 압력으로 대장동 1심 판결에 대한 항소를 못 하게 막았다. 권력의 부패를 막고 사회 정의를 지켜야 할 공권력을 권력의 시녀로 만들었다. 대한민국 검찰의 흑역사다. 

언론을 장악하고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고, 법을 만들어 국민의 입을 막으려 하고 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라고 말하지 못하고 '싫은 것을 싫다'고 표현하지 못하는 나라가 전체주의 국가다. 대한민국이 동물농장화되고 있다. 

후안무치를 자랑으로 여기는 자들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수치심에 있다. 부끄러운 일을 하고도 수치심을 느끼지 못하고, 원초적 탐욕만 쫓는다면 동물과 다를 바가 없다. 여당 국회의원들과 정부 요직에 있는 사람들이 도무지 부끄러운 줄 모른다. 후안무치를 자랑으로 여기고 있는 것 같다. 

이대로 간다면 대한민국의 몰락은 불을 보듯 진행될 것이다. 사회주의 좌익들의 특징은 모든 책임은 사회에 있고, 내가 아닌 남에게 미룬다는 것이다. 내가 한 것은 괜찮고 너는 하면 안 되기 때문에 사다리를 치워버린다. 흥청망청 퍼준 국민 지원금은 누가 갚아낼 것인지 그들에게는 알 바가 아니다. 그들은 나중에 어찌 되든지 책임지지 않는 선동정책을 펼쳐 국민에게 도덕적 해이가 한껏 충만하게 만든다. 국민을 데워지는 냄비 안에 있는 개구리로 만들고 있다. 

독버섯처럼 숨어 있던 친북, 친중 세력들이 사나운 개가 되어 지식인과 정치인을 위협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의 전방위적인 공격에 국익을 빼앗기고 중국의 속국처럼 무너지고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처럼 될까봐 걱정이다. 

불의(不義)는 의로운 용기를 이길 수 없다 

정권의 도덕 불감증, 안보 불감증은 건국 이후 최대치를 갱신하고 있다. 좌파 정권의 역주행은 국민의 분노를 폭발 직전까지 높이고 있다. 나라가 잘못될 것 같아 애만 태우는 국민들은 실의에 빠져 있다. 누군가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 다시 회복력을 되찾게 해 주어야 한다. 

나라가 어려울 때마다 뜻있는 애국지사들이 용기를 내어 앞장서서 나라를 지켜왔듯이 정치인과 지식인들이 용기를 내어 앞장서 바른 목소리를 내 주어야 한다. 정치인들은 더 치열하게 여당과 싸우고 악법을 막아주어야 한다. 언론인들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언론인의 정신을 되찾아 바른 목소리로 국민의 영혼을 깨워야 한다. 검찰은 부당한 외압을 거부하고 결연한 검사 정신을 발휘해야 한다. 사법부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판결로 불의한 권력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해 주어야 한다. 종교계는 깨끗한 양심과 도덕심을 회복하도록 목소리를 내어주어야 한다. 전문직들은 전문 지식을 바탕한 전문가의 목소리로 비효율과 탐욕 세력의 망국적 이권추구를 막아야 한다. 

용기 있는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의 목소리가 많아지고 커지길 바란다. 우리에게 아직 자유를 지킬 자유가 남아있기 때문이다. 불의는 용기 있는 목소리를 이길 수 없다. 동물농장의 나폴레옹을 따라갈 것인가, 나와 후손들을 위해 용기를 내어 바른 길을 갈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