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벗, 친구, “함께”라는 주제는 인간사회를 살아가는 모두에게 중요한 주제입니다. 창조론적 관점에서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실 때, “in one nature 본질적으로는 하나”이시지만, “three persons 세 분”이신 “trinity 삼위일체”라는 자신의 본성을 닮게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누군가와 함께 더불어 살아가야 합니다. 혼자는 외로워 보이는 반면, 함께 하는 모습은 자연스럽고, 행복해 보입니다. 함께 하는 것 자체에는 어떤 힘이 있는 듯합니다.
오래 전 “친구’라는 영화가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친구와 함께 하는 우정과 일탈이 아름답게 그려졌으나, 사실은 친구 관계 속에서의 배신과 죽음, 즉 안타까운 비극을 다룬 영화였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친구 관계에 희비가 존재하지만, 친구는 아름다운 추억이다”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던져 주었고, 영화를 관람한 많은 이들이 공감하였습니다.
저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어릴 때부터 친구가 많았습니다. 초등학교 때 까지만 해도 내향적 성격이라 친구들이 많지 않았던 형을 제 친구 그룹에 조인하게 하여 같이 놀 정도였습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에는 모범생들과 친했는데, 개인적인 사정으로 고등학교를 자의로 그만두면서, 다양한 부류의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습니다. 실제로 제 나이보다 열 살에서 심지어 스무 살이 많은 분들을 형님이라고 부를 정도로 알고 지내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20대 당시에는 그러한 다양한 친분과 친구 관계가 제게 큰 위로와 재미를 주었습니다. “친구인가? 가족인가?”라고 묻는다면, 망설임 없이 “친구”라고 대답할 정도 친구 없이는 못 사는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그러나, 많은 친구가 제게 오히려 마이너스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은 하나님 은혜를 경험하고 나서 부터였습니다.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음성은 “사랑하는 아들아! 내가 너를 오랫동안 기다려왔다”였습니다. 주님을 만난 후에 저는 그간 제가 친구들을 마음으로 의지하고 살았고, 그 때문에 하나님을 찾을 마음의 여유가 없었고, 하나님께서 부모님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IMF였음에도 불구하고 유학을 보낼 마음을 갖도록 하셨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후 제게는 친구에 관한 3가지 통찰이 생겼습니다. 첫번째 통찰은 “진정 나를 사랑하여, 마음까지 헤아려 주는 친구는 주님 한 분 뿐이다”라는 통찰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나의 친구”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힘들 때 마음을 털어 놓고 고백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도움을 구할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면서, 그분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으로부터 “너는 나의 친구라”는 영광스러운 칭찬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두번째 통찰은 “가족이야 말로 진정한 친구다”라는 통찰입니다. 한국에는 어릴적부터 친한 두명의 베스트 프렌드가 있습니다. 두 친구 모두 저를 무척 아껴줍니다. 친구들 중에 유일한 목회자라고 대접까지 해줍니다. 그런데, 목회자가 되면서, 괜히 제가 툭하고 던진 신앙적 조언이 그들에게 부담이 될까봐 조심스럽고, 또 목회라는 특수한 공감대가 없어서, 자주 연락하기 조심스러운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두 친구 외에도 제게는 무척 가까이 지내는 목회자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제게 가장 가까운 친구는 아내이며, 이제는 사회인과 대학생이 된 자녀들이라는 사실을 최근에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가끔 딸들에게 잔소리도 듣고, 모르는 걸 묻기도 하고, 아내에게 생각을 물어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요.
그리고 친구에 관한 저의 마지막 통찰은 교회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이 진정한 영적 친구, 동역자라는 통찰입니다. 물론, 예전에 말씀드린 것처럼, 믿음의 형제 자매들을 언니 오빠 형님 동생으로 부르지 마십시오. 직분을 부르는 것이 좋습니다. 영적으로 맺어진 관계가 육신적으로 접근하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관계는 더 없이 친해질 수 있지만, 반드시 예의와 격식을 갖추어야 합니다. 그러나, 어쨌든 교회로 모이는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신앙과 삶을 나누는 가장 좋은 친구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우리가 바라는 친구의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기쁠 때 같이 웃어주고, 슬플 때 같이 울어주는 것이 친구이지 않습니까? 장례예배를 집례해보면, 결국 유명인이 아닌 다음에야 조문객 대부분이 교인들입니다. 그들이 함께 울어줍니다. 그들이 챙겨 줍니다. 심지어 교회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은 하나님께 울며 기도해줍니다. 그리고 서로 기도하다가 기도 응답을 받는 일이 생기면, 다같이 내 일처럼 기뻐해줍니다. 시기 질투할 겨를이 없습니다. 함께 기도하여, 주신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이기 때문입니다.
친구라는 관점에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 가족과의 끈끈한 관계, 교회의 믿음의 형제 자매들과의 친밀하면서 영적인 관계를 다시 고민하고, 재정립하며, 돈독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