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크리치 목사. ©Christian Post
마크 크리치 목사. ©Christian Post

미국 크리스천포스트(CP)는 마크 H. 크리치 목사의 기고글인 '찰리 커크: 신앙과 자유의 순교자'(Charlie Kirk: A martyr for faith and freedom)를 15일 게재했다.  

마크 H. 크리치 목사(Rev. Mark H. Creech)는 노스캐롤라이나 기독교행동연맹(Christian Action League of North Carolina, Inc.)의 사무총장이다. 그는 이 직책을 맡기 전에 20년 동안 목회자로 사역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서 다섯 곳의 남침례교회와 뉴욕주 북부에서 한 곳의 독립침례교회를 섬겼다. 다음은 기고글 전문. 

찰리 커크의 암살은 미국 전역에 충격을 던졌고, 특히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깊은 슬픔과 분노를 안겨주었다. 그의 죽음은 단순한 정치적 비극이 아니다. 그것은 담대히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이 나라가 세워진 가치들을 지켜 온 한 목소리가 침묵당한 사건이다. 개신교 복음주의자들이 오늘날의 순교를 이해하는 모든 기준에서 볼 때, 찰리 커크는 순교자로 죽었다. 

역사적 의미에서 순교란 그리스도를 시인하다가 생명을 바치는 것이다. 오늘날 미국에서는 신앙을 부인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화형장에 끌려가는 일이 거의 없지만, 자신의 기독교적 확신 때문에 공개적으로, 예언자적으로, 용기 있게 발언하다가 표적이 되는 이들에게도 여전히 순교라는 단어는 정당하게 적용된다. 찰리 커크는 바로 그런 사람이었다. 

그는 단순한 정치 논평가가 아니었다. 단순히 학생 운동의 창립자도 아니었다. 단순히 보수 진영의 선동가도 아니었다. 그는 본질적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였으며, 그의 신앙은 그가 말하고 행한 모든 것을 형성했다. 그는 늘 미국의 미래는 성경적 진리로 돌아가는 데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자유는 정부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확언했다. 그리스도 없는 문화는 결코 지속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러한 이유로 그는 단순한 정치적 반대가 아니라,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 증언을 증오하는 이들의 미움을 받았다. 특히 "깨어 있는(Woke)" 대학 캠퍼스에서 그러했다. 

찰리가 대학 강연 도중 총격으로 쓰러졌을 때, 공격받은 것은 단순한 그의 정치적 입장이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표적이 되었다. 그의 정체성은 분리되지 않았다. 정치적 신념은 곧 기독교적 신념이었고, 그를 쓰러뜨린 것은 곧 정치 안에서 울려 퍼지던 교회의 충성된 목소리를 침묵시키려는 시도였다. 

역사에는 성당이나 강단에서 죽지는 않았지만, 그리스도를 위한 문화적 참여로 인해 생명을 바친 수많은 순교자들이 기록되어 있다. 마틴 루터 킹 주니어가 기독교적 소명에서 비롯된 민권 운동 때문에 순교자로 기억되는 것처럼, 찰리 커크 역시 그리스도와 성경에 대한 헌신에서 흘러나온 그의 행동주의 때문에 순교자로 기억되어야 한다. 

그의 피는 증언한다. 그것은 표현의 자유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문화의 적들이 성경적 가치를 혐오함을, 그리고 담대히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에는 심지어 자유의 나라 미국에서도 대가가 따른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미국의 가장 큰 적은 단순히 외국 정부가 아니라, 세속주의, 도덕 상대주의, 급진적 좌파, 반(反)기독교 문화 엘리트와 같은 독성 철학들이다. 찰리는 이 악을 드러내고 나라를 구하기 위해 생명을 바쳤다. 그러나 수많은 목회자들, 곧 나라의 영혼을 지켜야 할 파수꾼과 하나님의 양 떼의 목자들은 여전히 강단에서 겁내며 침묵하고 있다. 우리는 찰리의 죽음을 애통해야 하지만, 동시에 그의 용기를 기려야 한다. 이제 그 망토는 우리에게로 넘어왔다. 우리도 그처럼 말하고, 살고, 필요하다면 그처럼 죽어야 한다. 믿음을 지키며, 부끄러워하지 않고, 반대 앞에서 굴하지 말아야 한다. 

수년 전 필자는 인도를 세 차례 방문하여 심각한 박해를 견디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격려한 적이 있다. 그 사역은 고(故) M.A. 토마스 박사가 이끌었는데, 그는 인도 전역에 교회와 기독교 학교를 세운 인물이었다. 토마스 박사와 동료들은 힌두교와 이슬람 극단주의자들로부터 위협과 구타, 때로는 부당한 투옥을 정기적으로 당했다. 

그곳에서 필자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날, 한 무슬림 극단주의자가 칼을 들고 나타나 토마스 박사를 죽이겠다고 외쳤다. 가족과 동료들은 만류했지만, 토마스는 집 밖으로 나가 담대히 그를 향해 걸어갔다. 그리고는 셔츠를 찢어 가슴을 드러내며 이렇게 말했다: "여기 있습니다. 내 가슴에 칼을 꽂으시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당신이 내 피 한 방울을 흘리게 하면, 하나님은 그 피 한 방울마다 나와 같은 사람을 천 명이나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 순간, 그 남자는 돌아서서 떠났다. 

테르툴리아누스는 "순교자의 피는 교회의 씨앗"이라고 말했다. 만약 찰리 커크의 죽음이 어떤 의미를 지닌다면, 그것은 그의 피가 흘러내림으로써 하나님께서 수천 명의 새로운 증인을 일으키실 것이라는 점이다. 즉, 이것은 비극이자, 동시에 승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