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을 흘려본 자만이 눈물 흘리는 자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 중에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아픔과 눈물이 있습니까?
여러분들은 어떤 고통을 겪고 있습니까?

한때 행복했던 인간관계가 무너진 자 있습니까?
그래서 슬픔에 젖어있습니까?
한때 사랑했던 관계가 깨어진 자가 있습니까?
그런 상처 때문에 고통 받고 계십니까?
건강했던 육체가 질병으로 무너진 자가 있습니까?
행복했던 가정이 무너진 자가 있습니까?
탄탄했던 경제가 무너진 가정이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멀어지고 신앙이 무너진 자가 있습니까?
이모든 슬픔과 눈물이 상처로 남지 말고
눈물과 한숨이 변하여 사명이 되시기를 기도합시다.


미국에서 유명한 토크쇼를 진행하는 최초의 흑인 앵커 오프라 윈프리는
미국사회에 대단한 영향을 끼치며 존경 받는 세계적인 스타중의 스타입니다.

그런 그녀는 18세의 미혼모에게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습니다.
매일 몽둥이로 맞고 마구간으로 쫓겨가서 쭈그리고 앉아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백인 되게 해 주십시오!
백인은 자기 자식을 안 때리는데
왜 흑인들은 이렇게 맞나요? 하며
눈물 젖은 추억 속에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아홉 살 때 십대의 친척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후에도 여러 사람에게 성적으로 학대를 당했습니다.
14세에 임신을 하여 조숙아를 낳다가 아이가 죽었습니다.

수치심과 불안감 때문에 그녀는 그런 사실을 감추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잘 성장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녀가 진행하는 토크쇼의 주제가 성폭행이었습니다.
방송이 시작되고 성폭행을 당한 피해자들이 와서 자신들이 당한
끔찍한 일들과 고통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오프라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성폭행을 당한 한 여성을 껴안고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다 털러 놨습니다.

그러면서 오프라가 그 여성에게 한말이
“ I KNOW YOUR PAIN” 이었습니다.
나는 너의 아픔이 무엇인지 알고 있다. 는 것입니다.

그 한마디에 방송국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울고 전국에서
TV를 보고 있던 모든 사람들이 울었습니다.
오프라는 자신이 겪었던 아픔과 슬픔으로
이제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격려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명자의 삶입니다.
내가 겪은 아픔과, 눈물이 있다면 그 아픔과 눈물로 인해
애통해 하며 영혼의 상처로 주저 않지 말고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에 능력으로 그 상처를 극복하고
“나는 너의 아픔을 안다” 그러므로 그곳에 오히려
나의 사명이 있다고 사명으로 극복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영혼을 반드시 축복하시고 크게 사용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무너지고 깨어진 곳에 관심을 갖고 눈물을 뿌리며 기도하고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여
슬픔을 기쁨으로 승리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 세상에서 큰 일을 했던 사람들은 자기 생애의 어느 시점에
확고한 사명을 발견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인생의 발견 중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은 자기의 사명 발견입니다.
사람이 사명감을 가지면 사명감이 사람을 위대하게 만듭니다.
사명이라고 할 때 사(使)는 “심부름 사”자요 명(命)은 “목숨 명”자입니다.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20:24절)

사명이란?
하나님이 심부름을 시키려고 이 세상에 보내신 목숨이라는 말입니다.

심부름을 받고 태어난 목숨이 바로 나라는 자각입니다.
보 잘 것 없는 사람이지만 자기 사명과 만날 때
얼마나 성실해지고 분발하게 되는지 모릅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살면서부터 삶의 질이 달라집니다.

사명은 그의 목표가 되고 사는 이유가 됩니다.
사람이 왜 사는 겁니까?

하루 세끼 잘 먹고 잘 입고 잘 사는 것이 생의 목표라면
그 인생이 시시한 것 아닙니까?

“나는 이것을 위해서 산다”라고 할 수 있는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사명적 존재였습니다. “주 예수께 받은 사명”이 있었다는 말입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 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빌1:20)
이것이 그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 따른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예수님은 그의 추종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니라”(미11“29-30)
예수님의 짐은 우리에게 주신 사명입니다.
사명은 힘들지 않습니다. 즐거울 뿐입니다. 헌신이 행복합니다.
사명자는 사명을 고통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노예처럼 살지 말고 사명자로 사십시다.

류관순 열사가 친구들과 기차를 타고 가면서 기차 소리가 어떻게 들리느냐?고 물었습니다.
‘칙칙폭폭’ 한다고 했습니다. 자기 귀에는 ‘대한독립 대한독립’이라고 들린다고 하더랍니다.
류관순 열사는 대한독립이 사명이었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몸을 바치고 있습니까?
몸바칠 일도 없고 몸바칠 대상도 없는 인생은 공허하고 허무합니다.
헌신의 대상을 만나야 합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예배니라”(롬12:1)

교회를 위해 복음 전도를 위해 헌신하십시오.
반드시 건강한 삶이 되고 참된 행복이 따라 올 것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하든지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당신은 왜 사느냐고 물으면 무어라고 대답할 것입니까?
가치를 추구하는 하나님의 사명자에게 눈물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 열심이 있습니다.
그 사람에게서 목숨을 걸고 덤비는 헌신이 나옵니다.

질 높은 헌신이 있는 곳에서 경쟁력이 나옵니다.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무서운 힘이 발생합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사명자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라고
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올라 가시었던 주님의 뒤를
사도 바울도 열심히 죽음의 길인 로마길을 향하였듯이
저와 여러분들도 이런 고백과 함께 사명길을 따라갑시다.


주님이 홀로 가신 그길 나도 따라 가오
모든 물과 피를 흘리신 그 길을 나도 가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험한 산도 나는 괜찮소
바다 끝이라도 나는 괜찮소
죽어가는 저들을 위해 나를 버리길 바라오

아버지 나를 보내주오 나는 달려가겠소
목숨도 아끼지 않겠소 나를 보내주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나는 사랑하겠소
세상을 구원한 십자가 나도 따라가오
생명을 버리면서까지 나를 사랑한 당신
이 잔을 나를 받아주오 나도 사랑하오


사명이란/ 부담이고/눈물이며/십자가입니다/
사명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입니다./
죽어가는 영혼을 위하여 나를 버리는 것입니다.
목숨도 아끼지 아니하고 험한 산 바다 끝이라도 달려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나를 미워해도 세상을 구원할 십자가만 붙잡고
이렇게 신앙을 고백하면서 따라 가는 것입니다.

다같이 따라 합시다

행20; 24절에서
"나의 달려 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주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는 기회는 언제나 있는 게 아닙니다.
기회는 나를 기다려 주지 아니합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거든 사양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그런 일이거든 힘써 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