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오늘 주일 아침, ‘웨스트 힐’(West Hill) 장로교회에서 설교하는 날이다. 담임이 호텔로 와서 함께 교회로 갔다. 이곳은 한인들이 주위에 많이 살지 않은 곳인데도 성도들이 꽤 많이 모이는 교회이다. 담임이 인물이 좋고 설교가 뛰어난 데다, 겸손과 온유함까지 갖추고 있어서 앞으로가 더 기대되는 유망주이다. 1부 예배를 마친 후 2부 예배 설교 바로 직후 초중고대 주일학교 학생들이 왕창 강대상 위로 올라오는 것이었다.
[2] ‘Back to school Service Prayer’, 방학을 마치고 학교로 돌아가기 전에 어른들이 자녀들을 위해 축복송을 불러주고 기도해 주는 시간을 가지는 것을 보았다. 아주 뜻깊고 감동적인 순서라 판단되었기에 한국 교회도 적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요즘 한국 교회에 주일학교 학생이 엄청나게 줄어드는 불행이 계속되고 있다. 우리 학창 시절엔 반에서 25%가 기독교인이었다.
[3] 하지만 지금은 5%만이 교회에 출석한다고 할 정도로 처참한 통계가 나와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우리가 세상 떠나고 나면 머잖은 미래에 교회가 텅텅 빌 거 같은 위기의식이 감지되고 있다. ‘시집 장가 잘 가지 않고, 결혼해서 아이 잘 낳지 않는 건 하나님도 어쩔 수가 없다’라는 말이 돌 정도로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누가 봐도 인구 절벽 시대를 대처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4] 불신 자녀들이 결혼 잘 하지 않고, 결혼해서도 아이를 잘 낳지 않는 이때,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빨리빨리 결혼해서 자식을 많이 낳는 것이다. 물론 자식을 많이 낳으면 교육비나 생활비가 많이 들기 때문에 용기를 내지 못한다는 이유를 모르는 바가 아니다. 과거 우리 할아버지나 부모님 시대엔 지금 우리보다 더 잘 살아서 6명, 10명, 12명까지 낳은 게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기적이고 인간적으로 바뀐 요즘 젊은이들의 모습이 한탄스럽다.
[5] 세상적인 계산법을 버리고 하나님을 굳게 믿고 신뢰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15~20년 전, 하나님은 내게 4명의 자녀를 주셨다. 아내와 나는 결혼 전에 2명의 자녀를 가질 것을 계획했다. 그런데 그게 우리 뜻대로 되질 않았다. 유학할 당시 하나님은 세 명의 자녀를 더 주셨다. 당시는 선교사로도 아이 넷을 받지 않는다고 기죽이는 선배가 있었다. 교인들도, 유학하는 목사가 아이 넷을 가졌다고 수군거렸다는 얘길 나중에 들은 바 있다.
[6] 하지만 지금은 우리 가정과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이들이 많다. 아이 넷을 낳아서 기르면서도 빚 하나 지지 않고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다. 아내가 고생 많이 한 건 숨길 수 없는 사실이지만, 하나님께서 끝까지 책임져 주셨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리의 계획을 넘어서는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아이들을 주셨기에 그분이 순간순간 함께해주셔서 한 끼도 굶지 않고 지금까지 이끌어주셨다는 사실을 깊이 체험한 바이다.
[7] 우주를 창조하시고 들의 백합화와 공중에 나는 새들을 자라게 하시고 먹이시는 창조주 하나님이 그것 하나 하시지 못하겠는가? 그렇다. 오직 굳센 믿음과 신뢰로 사명감을 가지고 빨리 결혼해서 경건한 후손들을 많이 많이 낳아 길러야 한다. 불신자들이 아이를 잘 낳지 않을 때 믿음의 자녀들이 자식들을 많이 낳아 기르면 우리나라와 이 사회는 자동적으로 복음화가 될 것이다. 로마가 세계를 지배할 때 기독교인이 0.2%밖에 되질 않았다.
[8] 그런데 그들이 멋지게 살아가니 로마 황실에서 왕자들 결혼시킬 때에 믿음의 딸들과 결혼하는 일들이 발생했다. 당시는 성적으로 문란해서 처녀를 구하기 힘들었는데, 기독교인의 딸들은 성결한 몸이었기에 그들을 왕실의 며느리로 들이는 일이 일어난 것이다. 그래서 그 기독교인의 딸들이 왕실에 들어가 남편을 변화시키고, 자식들을 낳아서 신앙인으로 양육하니 로마가 뒤집어져서 기독교가 국교로 공인될 수 있었던 것이다.
[9] 지금도 마찬가지다. 인구 절벽 시대를 맞아 우리 믿음의 자녀들이 신앙 좋은 배우자들과 잘 만나서 결혼하고, 그 사이에 태어난 2세들을 신앙으로 잘 양육해야 한다. 그런 자녀들이 많아지면 기독교인이 우리나라에 압도적인 영향을 끼치는 주역으로 쓰임 받을 수밖에 없음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2부 예배를 마치고 나니 절친인 동기 목사님과 기독신문사 대표 목사가 와 있었다.
[10] 동기 목사님과 오랜만에 만나니 정말 반갑고 기뻤다. 네 명이 식사를 같이하면서 밀린 얘기들로 회포를 풀었다. 그 후 5시에 동기 목사님 차를 타고 신대원 동기들이 모이는 뷔페식당으로 갔다. 가보니 이미 20명에 가까운 목사님과 사모님들이 모여 있었다. 역시 동기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행복하다. 식사를 한 후 카페에 가서 차를 마시며 대화하다가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도 신실한 성도들과 목회자들과의 만남의 기회를 주신 하나님께 깊이 감사드린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