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소위 ‘1.5세’다. 1975년 당시 13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 와 이 호칭을 듣게 됐다. 어찌 보면 한국과 미국 모두의 문화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어중간한 모습으로 비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중간자적 역할을 담당할만한 존재란 생각도 든다. 필자는 1.5세로서 양쪽 세대의 장단점을 모두 보고 체험해왔다. 이 두 세대가 떨어져 있는 공간(gap), 그 가운데서 서로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펜을 들었다.

현지의 의식구조 이해해야

2세를 이해하자는 목적에서 제일 먼저 언급하고 싶은 것은 역시 문화적인 차이(Cultural difference), 즉 의식구조의 차이다. 어떤 이는 언어의 벽이 문제라고 말하지만, 그것은 제2의 문제라 생각된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르라는 말이 있듯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의 문화와 의식구조를 이해해야 2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자신이 한국 사람이라고 한국식 문화와 한국식 삶의 방식을 고집하면 할수록 2세를 이해하기 어렵다. 미국에서 태어난 2세들이나 어려서 이민 온 자녀들은 1세들이 원하든 원치 않든 미국 문화 속에서 미국의 사고방식을 배우고 산다. 올바른 문화냐 아니냐는 또 다른 문제다. 일단 이들이 미국문화를 접하고 또 받아들이고 산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수용하는 것이 저들을 이해할 수 있는 첩경이다.

결과중심적인 최고 지향의 의식구조

이민 1세 대부분은 영어표현에도 있듯이 'the end justifies the means' 즉 '수단과 방법이야 어떻든 결과만 좋으면 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으로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결과중심적 사고방식은 우리 2세에게 긍정적인 면보다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Report Card(성적표)를 받아보고 ‘B’나 ‘C’ 점수도 받기 힘든 아이에게 ‘A’를 받지 못했다고 야단친다거나, 옆집아이는 명문대학에 가는데 자기자식은 겨우 Local College(동네대학)에 진학하는 꼴을 보고 탓하며 비교하는 것은 잘못이다. 그저 자식 잘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모습이겠거니, 또는 모든 부모의 단순한 욕심이라고 이해해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다.

한인 1세들의 의식 속에는 최고를 추구하고 동경하는 경향이 있다. 그 자체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결과에만 치중할 때 우리 이민 2세들의 미래는 위험수준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곳에서 자라나는 2세들의 의식구조는 1세들의 의식구조와는 엄연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2세들의 미래와 미국주류사회 진출을 위해서라도, 두 개의 다른 의식구조가 존재하며 2세들 마음속에 작지 않은 고민이 있음을 1세들이 먼저 깨달아야 한다.

과정에 충실 하는 의식구조

필자도 7학년부터 미국교육을 받았는데, 결과보다 과정을 더 중요시한다는 것을 많이 느꼈다. 좀 부족한 학생에겐 격려하고 목적의식을 심어주어 다시 도전하도록 돕는 것이 이곳의 교육시스템이다. 아이들을 좌절하거나 당황하지 않고 계속 도전하는 강인한 사람으로 성장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중심의 교육을 받고 자라난 2세들에게 우리 1세들이 결과중심적으로 접근할 때 마찰이 생긴다.

‘한국 사람이 한국(문화, 말)을 몰라서야 되겠는가?’라는 지적이다. 옳은 지적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자녀들은 미국에서 살면서 미국을 이해하거나 배우려고 노력하지 않는 부모님을 이해할 수 없다. 이 말은 이민 2세들로서 자라나는 자기들을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더라는 것과 같은 말이다.

미국의 교육시스템은 부모가 선생님과 공조하도록 하고 있다. 따라서 PTA(학부모회)에도 참석하고, 이웃들과 대화하며 더불어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해야 한다. 흔히 자녀교육을 위해 미국에 왔다는 부모님들이 많은데,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라면 더더욱 미국의 생활문화에 적응하려고 애써야 한다.

‘팀 정신’, 말하고 들어주는 대화의 정신

미국의 문화는 인간 평등과 권리를 주장하는 성향이 강하다. 평등을 가르치고 자기 의사를 정확히 발표하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장려한다. 학교에서도 자기표현을 잘하는 학생은 선생님의 총애를 받지만 말없고 발표를 잘 안 하는 학생은 찬밥신세가 된다. 안타깝게도 우리 2세들은 전자보단 후자에 더 많이 속한다는 것을 여러 경험으로 알게 됐다. 이는 우리 아이들이 미국서 교육받는 방법과는 달리 개인의 의견을 절제시키는 가부장적 분위기에서 자라는 동안에 자기의견을 표시할 기회와 자신감을 잃어버려 발생한 현상이다.

미국교육법은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에게 'Freedom of Speech'(말할 자유)의 권리와 의무, 그리고 그 균형의 중요성을 가르친다. 학교에서든 사소한 자리에서든 상대방의 의견이 나의 의견과 차이가 있어도 서로에게 말할 권리와 들어줄 의무가 있다는 것을 배운다. 이것이 팀 정신이다. 'Fair and Balanced'(공정하고 균형있는)라는 철학이 담긴 현대사회의 의식이기도 하다. 결론이 어떻게 나오든 모든 의견을 존중해 듣고 종합해 민주적으로 결정하고 따르는 라이프 스타일인 것이다.

언어보다 더 큰 의식구조의 벽

부모와 자녀간의 대화가 불가능해졌다는 말을 많이 한다. 언어의 벽이 있어서일까? 엄밀히 따져서 1세들의 영어실력과 2세들의 한국어 실력이 부족한 것도 사실이지만, 더 큰 이유는 의식구조가 다르기 때문이다.

1세들은 자기의견을 서슴없이 표현하는 자녀들에게 버릇없이 따지고 드는 무례함을 느낀다. 어른으로서의 권위가 침범 당한다고 느끼기도 한다. '어린것이 뭘 알아, 잠자코 어른이 하라는 데로 해'라는 식으로 대화는 단절되고 만다. 자유롭게 대화하는 법을 배우고 자란 2세들은 자기들의 의견이 진지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음을 느낄 때, 무시당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엄마 아빠하고는 말이 안 통해'라며 역시 대화의 문을 닫아 버리는 게 부지기수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 2세들은 갈 곳이 없어진다. 열등의식 속에 주체성마저 잃고 '국제미아'가 돼 버리기 일수다. 그러기에 우리 부모가 2세들의 문화를 배우지 않고 이해하려고 노력하지 않으면 2세들의 미래는 밝기 어렵다.

두 문화가 가지고 있는 의식구조들을 인식하는 것, 그리고 다른 점을 인정하는 것부터가 우리 2세들을 이해하고 저들의 미래를 조금이나마 도울 수 있는 출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하모나장로교회 신우선 담임목사(Rev. William Sh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