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임목사 7년째를 하면서 그 동안 3가지 면에서 기도가 변했습니다.
첫째는 금식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밥먹고 힘있게 기도하자!를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목회 속에 크고 작은 사건을 경험하며 음식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조차 넘길 수 없는 절박한 기도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이젠 끝이라는 지점까지 갔을 때의 기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밥 먹고 기도하자가 아니라 물조차 넘길 수 없는 처절함과 절박함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교회에서 엎드려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시절 마루바닥의 교회를 다녔기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새벽기도때, 또는 주일에 의자 방석에 코를 박고 기도하는 것은 뭔가 지저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지 더럽게 남들 엉덩이 대고 앉은 자리에 얼굴을 박고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역시 하나님 앞에 절박해지니 다시 마루가 아닌 그냥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고 방석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긍휼이 여겨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더 나아가 ‘살려 주시옵소서’ 입니다. 적어도 그 전에는 “살려 주시옵소서” 같은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하며, 어느 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또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살려주시옵소서” 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는 기도였습니다.
목회가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요새는 ‘은혜입니다. 기적입니다. 신비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또 다른 관점에서는 저 자신을 훈련하는 훈련장입니다.
첫째는 금식기도에 대한 것입니다. 그 전에는 밥먹고 힘있게 기도하자!를 주장했었습니다. 그런데 목회 속에 크고 작은 사건을 경험하며 음식은 고사하고 물 한 모금 조차 넘길 수 없는 절박한 기도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바닥까지 내려갔을 때, 이젠 끝이라는 지점까지 갔을 때의 기도는 전혀 다른 것이었습니다. 밥 먹고 기도하자가 아니라 물조차 넘길 수 없는 처절함과 절박함의 기도가 있습니다.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둘째는 교회에서 엎드려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물론 어린시절 마루바닥의 교회를 다녔기에 무릎꿇고 기도하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새벽기도때, 또는 주일에 의자 방석에 코를 박고 기도하는 것은 뭔가 지저분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구지 더럽게 남들 엉덩이 대고 앉은 자리에 얼굴을 박고 기도할 필요가 있는가? 그런데 아니었습니다. 역시 하나님 앞에 절박해지니 다시 마루가 아닌 그냥 바닥에 무릎을 꿇게 되고 방석에 얼굴을 묻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셋째는 ‘긍휼이 여겨 주시옵소서,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더 나아가 ‘살려 주시옵소서’ 입니다. 적어도 그 전에는 “살려 주시옵소서” 같은 기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의 크고 작은 일들을 감당하며, 어느 땐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또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앞에 두고 할 수 있는 유일한 기도는 “살려주시옵소서” 였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 앞에 나를 낮추는 기도였습니다.
목회가 무엇이냐고 누군가가 묻는다면 요새는 ‘은혜입니다. 기적입니다. 신비입니다’ 라고 대답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목회는 또 다른 관점에서는 저 자신을 훈련하는 훈련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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