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병이어의 기적사건은 기독교 인이라면 한 번쯤 들어 본 말씀 중의 한 부분입니다. 벳세다 광야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 수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고, 해가 지는지 모르고 말씀 듣는 일에 심취해 있던 청중들은 저녁을 맞이 합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시장할 것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주도록 부탁하십니다.

그때 먹을 것을 구할 수 없는 곳에서 안드레라는 제자가 한 아이의 손을 잡고 그 아이의 도시락 쯤으로 보이는 약간의 먹을 것을 가지고 옵니다. 그 일이 어떤 기적을 일으킬 것이라는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 도시락을 내 놓은 아이도 배가 고팠을 것이고, 또 다른 먹거리를 가지고 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아이는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있는 이곳에 ‘왜 하필 내 도시락을 원하는 겁니까 ?’ 라는 의구심이나 못마땅한 반응도 없었습니다. 몰래 숨어 자신의 배를 채우기에도 넉넉치 않은 양의 음식인데 말입니다.

이런 사건은 구약에도 등장합니다. 사르밧에 사는 한 과부는 하나님의 사람을 만나 자신의 생에 마지막 남은 한끼 식사를 내어 놓을 수밖에 없는 처지를 만나게 됩니다. 그곳 사건은 좀더 심각한 듯 합니다. 그 여인은 이 마지막 남은 가루로 식사를 아이에게 해주고 죽으려고 했다고 고백합니다.

이 얼마나 참담한 상황입니까? 이 여인은 그 마지막 남은 식사를 요구하는 하나님의 사람 엘이야에게 ‘왜 하필이면 납니까? 더 도와주지 못할 망정 마지막 양식을 달라니요 ? 다른데 가서 좀 넉넉한 사람 찾아 보시거나 하나님의 사람이면 직접 하늘에 명해 먹을 것을 낼 것이지’라고 할 법도 한데 그리하지 않습니다. 그냥 자신의 것을 내어 놓으며 묵묵히 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일반 상식적으로 보면 두 사건에 등장한 부인과 아이는 억울하게 보여 집니다. 그러나 그들은 누구도 경험하지 못할 축복을 누리게 됩니다. 아이가 내어 놓은 도시락은 대략 2만의 사람들을 먹일 수 있었고, 사르밧과부가 내놓은 마지막 식사는 가뭄의 위기가 지날 때까지 모자람이 없이 먹을 수 있는 풍성함을 가져 옵니다.

올 한 해는우리에게 여러 가지로 쉽지 않은 해였습니다. 집값은 떨어지고, 모기지 이자율은 오르고, 달러가 폭락하니 사업도 어렵고, 쌓이는 이민사기 문제들로 신분문제도 쉽게 풀리지 않고, 갈 길은 먼데 만나는 환경들이 다 첩첩산중입니다. 그런데 이 어려운 때에 여러분 마음의 소리에 주님이 뭘 원하신 다는 소리가 들리신 적이 있습니까? 어떻게 반응 하셨습니까 ?
그저 내 생활이 답답한데 나한테 뭘 더 원하십니까 ?라고 체념하고 무시해버리지 않으셨습니까?

여러분 , 이 ‘추수의 때’ 감사 할 것이 뭐가 있나 ? 주변을 살펴 볼 것만이 아니라 오히려 더 풍성한 축복을 누리기 위한 ‘씨(Seed)’를 말씀의 순종으로 심는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은 여러분이 넉넉하고, 환경이 좋아 찾아오시고, 내게 있는 것을 요구하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 가진 쌀통이 빈 것을 아시기에, 또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없음을 아시기에 채워주시려고 요구하십니다. 이때 원망 없이 순종하셔서 어떤 환경에서든 인생에 진정한 풍성함을 누리는 여러분 되시길 소원합니다.

글/손기성 목사, 은혜장로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