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Photo : 기독일보) 시애틀 형제교회 권준 목사

12월에 들어왔습니다. 2024년이 이제 한 달 남았습니다. 예수님 오신 날을 기억하고, 새로운 해를 맞이하는 이 시기에 우리가 바른 영적 시각을 가지고 이 세상을 분별하고, 하나님과의 관계, 사람 사이의 관계를 다시 잘 정리하는 시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또 한해가 지나가며 이 빠른 세월 속에서 변하지 않는 진리의 말씀을 다시 확실하게 붙잡고 말씀 위에 더 든든히 서겠다는 결단을 모두 하게 되기 기도하며 새로운 한 주를 시작합니다.

이번 주 형제와 나누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날 때부터 시각 장애인이었던 사람을 고쳐 주었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을 체험적으로 만났습니다. 확실한 그 경험은 그 사람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지 않고 당당하게 예수님에 대해 나눌 수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그가 확실하게 고침을 받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예수님이 그 일을 행하셨다는 것을 고백하기 꺼려 했습니다. 그 고백을 통해 자신에게 주어질 불이익이 더 두려웠기 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이제까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에 핍박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오히려 신앙생활 제대로 안 한다고 야단맞은 적은 있었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구주로 인정하고 다른 사람 앞에서 떳떳하게 신앙인이라고 밝히는 것이 얼마나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인가에 대해서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요즘 많은 분이 이 세상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고 밝히는 것이 꼭 이세상에서 이득이 아닐 때가 있다는 말을 듣습니다. 그리고 한참 코로나가 유행이었을 때에는 교회를 가는 것이 마치 병균을 옮기러 다니는 사람들 취급을 받았던 적도 있었습니다.

형제와 제가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것은 과연 우리가 눈은 뜨고 있지만 과연 옳은 것을 보고 바른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인가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것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 막고 귀 막은 채로 잘못된 선택을 하며 나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다시 되돌아보아야 합니다. 한 예로 예수님이 잡히시던 날 밤에 베드로는 칼을 휘둘렀고, 그 칼에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가 잘려 나갔습니다. 그것을 예수님은 다시 붙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가능한 일이 아니었고, 지금도 수술실에서 몇 시간이 걸려야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 광경을 예수님을 잡으로 온 사람들은 목격하였을 것입니다. 귀가 잘렸던 사람뿐 아니라 그 주변에 있었던 사람들은 큰 기적을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들에게 보여진 일을 애써 외면하고 그들이 온 목적대로 예수님을 잡아갑니다. 그들은 자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세를 좇아가기를 선택하였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역시도 우리 앞에 보이는 영적 사인들을 외면하면서 큰 물줄기에 올라타 그 길을 가고자 하는 것을 아닐까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더 힘들어 보이고 가능해 보이지 않기 때문에 그냥 쉬운 길에 묻어가는 것은 아닐까 우리의 삶은 다시 점검해 보기 원합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이 시기, 형제와 저의 신앙을 다시 점검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리고 이제까지의 삶 속에서 신앙인으로서 예수님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두려웠다면 담대함을 달라고 기도하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또한 다른 사람의 삶 속에 일어난 예수님의 기적 같은 일들에 나 역시도 증인이 되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 용기도 달라고 기도합시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이 12월에 형제와 저를 통해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는 시기가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