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이를 보니....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요한계시록 20:11-12)
숙주나물이 무엇이고 숙주나물이라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기성세대는 대강 다 알고 있지만, 미국에 살고 있는 1.5세나 2세들 그리고 한국에 있는 어린 학생들은 잘 모릅니다. 콩나물은 콩을 길러서 나오는 것이지만, 숙주나물은 숙주를 길러서 나오는 나물이 아니고, 녹두를 기른 나물입니다. 그런데 왜 녹두나물이라고 하지 않고, 일반적으로 숙주나물이라고 하는지 어린 학생들은 잘 모를 겁니다.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는 것은 변절자 신숙주(申叔舟:1417-1475)의 이름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녹두나물을 숙주나물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녹두나물이 콩나물이나 다른 나물보다 더 빨리 변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변절자 신숙주의 이름을 따서 숙주나물이라 부릅니다.
신숙주는 전남 나주 출생으로 머리가 명석하여 세종대왕 시절에 과거 시험에 합격해서 집현전 학사로 사육신(死六臣) 성산문과 박팽년 등과 함께 훈민정음 창제와 연구에 많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는 비록 문관이었지만 병력을 이끌고 북쪽의 여진족과 남쪽에 외구(일본) 토벌에 여러 번 출정하였으며 말년에는 의정부 영의정까지 오른 인재였습니다.
신숙주는 사육신들과 함께 문종의 유언을 받들어 단종을 보필하기로 서약했으나 변절하여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하는 계유정난(癸酉靖難)에 가담하여, 유학자로 절개를 꺾고 불사이군(不事二君:한 신하는 두 임금을 섬기지 않은다.)이라는 계율을 어기고 단종을 왕위에서 내쫓고 수양대군을 세조로 옹립하는데 앞장섰습니다.
그 후에 단종 복위운동이 일어나자 단종과 금성대군의 처형을 강력히 주장하여 이들을 처형하였고, 간신 유자광(柳子光)의 모함으로 남이(南怡)장군이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도 적극 참여하여 또 다시 권력에 아부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뛰어난 학문과 재주로 <고려사>, <고려사절요>, <해동제국기> <국조오례의>, <동국통감> 등을 편찬하였고, 농업과 축산업 기술에 대한 서적도 편찬하였으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창제에도 많은 공로를 남겼습니다.
신숙주는 많은 공헌에도 불구하고 단종을 제거하고 수양대군을 옹립하는 일에 앞장서서 사육신과 대조적인 인물로 여겨집니다. 신숙주를 평가 할 때, 그가 단종을 폐위, 처형하고, 수양대군을 왕으로 옹립한 것은 유교 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는 배신자임에 틀림없습니다. 반면에, 그가 만일 사육신들과 더불어 세상을 떠났다면 그가 이룬 의미 있는 일은 후세에 남아 있지 못 했을 것입니다. 신숙주의 공로보다 더 소중한 것은 절개라 보는 사람들은 숙주나물을 당연한 것으로 여길 것입니다. 인간에 대한 평가는 항상 양면성을 지닙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진정한 평가는 하나님이 흰(백)보좌 심판석입니다.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계 20:12) 우리는 사후에 우리 행위를 기록한 책에 있는 대로 심판을 받게 됩니다. 역사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심판을 늘 생각하면서 항상 올바른 신앙생활에 매진합시다. 주말 잘 보내시고, 월요일에 만납시다. 샬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