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큰딸이 작년 2월 LA에서 결혼을 했다. 신랑은 U. C. 버클리(U. C. Berkeley) 대를 나온 의사다. 사돈은 18세에 홍콩에서 미국으로 이민 와서 UCLA에서 만나 결혼한 홍콩계 미국인이다. 중국계 치고는 아주 드물게 독실한 기독교인에다가 형제 간의 우애가 대단한 분들이다. 바로 옆집에 형님네, 다섯집 떨어진 곳에 여동생집, 그리고 LA 여러 곳에 형제들이 살고 있었다.
[2] 작년 2월, 딸의 결혼을 위해 우리 가족 6명이 3주간 LA에 머문 적이 있었다. 3주 동안 사돈네가 원해서 만난 횟수가 무려 13번이다.
원래 사돈네랑은 가까우면서도 아주 먼 관계다. 만남 자체가 어색하고 편치 못한 관계다. 하지만 우리 사돈 두 분은 전혀 달랐다. 그만큼 정을 내고 교제하기를 즐겨하는 분들이다. 친형제와도 같이 늘 함께 하기를 좋아한다.
[3] 이번 여름 LA에 와서도 벌써 두 번이나 만났고, 어젯밤은 사돈댁에서 하룻밤을 묵은 후 오늘 주일 예배를 드리고 곧바로 요세미티를 향해 출발한 것이다. 목요일까지 3박 4일 일정으로 사돈네랑 관광을 갈 계획을 벌써 5월에 같이 세워놓았다.
바깥 사돈이 운전해서 약 30분쯤 가다가 기름을 채우려고 주유소에 들렀다. 시동을 끄고 기름을 넣은 후 시동을 켜려는데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4] 아무리 파워버튼을 눌러도 빨간불만 올 뿐 시동이 켜지지 않았다. 사돈댁 딸이 타던 밴인데, 사돈이 처음 운전하는 것이었다. 여행 출발부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당황한 안사돈이 이리저리 전화해봤지만 뾰족한 수가 없었다. 분명 차가 고장난 것이라 생각한 우리는 차를 정비소에 맡기고 사위를 불러서 다른 차로 바꿔가야 했다. 그래서 가까운 마트에서 카트를 가져다가 짐을 옮겨 싣기 시작했다.
[5] 바로 그때 보험회사에서 보낸 기술자가 도착했다. 바깥 사돈에게 키를 달라 하더니 운전석에 앉아서 파워버튼을 눌렀다. 그랬더니 녹색 칼러로 바뀌더니만 금새 시동이 켜지는 것이었다. 깜짝 놀라 모두 짐 싣는 일을 멈추고 운전석으로 갔다. 우리의 판단과는 달리 차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다. 문제는 차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아주 간단한 기초 상식과 원리를 몰랐던 것이다.
[6] 그 차는 키를 파워버튼 가까이 위치해서 시동을 켜야 했던 것이다. 그런 줄 모르는 바깥 사돈이 주머니에다 키를 넣은 채 시동을 걸려했던 것이다. 알고 보면 별 것 아닌 초보 지식을 모르면 차 자체가 움직이지 못한다는 사실을 제대로 깨달은 것이다. 순간 우리는 여행 출발 전 안전한 여행이 되도록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안 사돈이 대표로 기도하고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7] 기도 후에 앞좌석 조수대에 앉은 안사돈이 '이 문제의 사건이 주는 교훈이 뭘까'라고 묻는 걸 들었다. 비록 여행이 잠시 지체되긴 했지만, 아주 중요한 교훈 하나를 새롭게 깨우치게 되었다. 그게 뭘까? 바로 이것이다. 'We learned that Jesus, the key to our lives, must always be very close to us.' 그렇다. 우리 삶의 키가 되신 예수님은 항상 우리 아주 가까운 곳에 계셔야 한다는 교훈 말이다.
[8] 바울은 엡 3:17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인들 마음에 계시기를 간구했다. 중생한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가 계시는 게 정상인데 왜 그렇게 간구했을까? 헬라어 원어 '카토이케오'(katoikeo)의 의미를 살려서 번역하면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자기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가까이 모시고 살기를 바란 것이다. 그렇다.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그리스도를 가까이함이 복이다.
[9] 그분을 믿고 영접했다고 하면서도 그분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자기가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삼아 살아가는 이들이 많다. 이는 반드시 실패의 길로 귀결될 수밖에 없음을 알아야 한다.
여행을 시작하면서 차 키를 파워버튼 가까이 밀착시켜야 시동이 걸리는 기본 원리를 터득했다. 그리스도를 가까이 하고 그분께 삶의 결정권을 내어드림이 형통의 지름길임을 기억하고 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