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가 한 나라의 국력을 평가하는 기준을 언급하며 이승만 대통령의 업적을 전했다.  

김진홍 목사는 8월 1일 김진홍의 아침묵상을 통해 "국토의 넓이, 지하자원, 인구 수, 군대 등이 그 나라의 국력을 평가함에 요소들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국토의 넓이도, 지하자원도, 인구 수도 국력을 평가하는 최고의 기준이 될 수는 없다"며 "(최고의 기준은) 기술력이다. 그 점에서 한국은 가히 기적을 일으킨 나라"라고 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1945년 일본의 지배로부터 해방된 이후 극심한 혼란기를 지냈다. 그 시절의 좌우대립은 죽이고 죽는 사생결단의 대결이었다"며 "1948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자, 미처 정부가 뿌리도 내리기 전에 6.25 전쟁이 일어나 전국을 잿더미로 만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이승만 대통령이 이끄는 대한민국 정부는 그런 잿더미에서 다시 시작하여야 했다. 그 당시 대한민국의 경제력은 세계 최빈국이었던 아프리카 가나에 다음 가는 국민소득 53달러였다"고 했다.

김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 중 문맹률이 80%가 넘는 현실에서는 투표도, 경제 발전도 허사일 것을 인식했다. 그래서 이승만 대통령은 국민 교육을 실천하는 데 필요한 교과서를 제작하기 위하여 종이를 구하러 미국을 방문했다. 대통령이 미국의 부자들을 찾아다니며 종잇값을 기증하라고 부탁하고 다녔다"고 했다. 

이어 "그 방문길에 MIT 공과대학을 방문했다. 대학을 방문한 자리에서 이승만 대통령은 무릎을 치며 말했다. '바로 이거다.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야 빈곤을 벗어날 수 있다. 대한민국이 자원이 없는 국가이기에 ,유일한 자원인 사람들에게 과학과 기술을 가르쳐야겠다' 그렇게 다짐한 이승만 대통령은 귀국 후 달러가 없는 처지에서 매년 수십 명의 영재들을 선발하여 미국·독일 등의 과학 선진국으로 유학을 보냈다. 그때 선발되어 유학한 인재들 중에서 대한민국의 과학 기술 국가로 발돋움하게 하는 인재들이 되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김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이 남긴 최대의 업적은 4가지"라며 '토지 개혁을 실시한 업적', '6.25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업적',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정착시킨 업적과 교육입국의 기초를 놓은 업적', '한미동맹을 체결하여 박정희 대통령 시절 경제 개발에 전념할 수 있게 한 점'을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