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 하는 자들이라.” (디모데전서 4:2)
미국에 살고 있는 한 70대 노인이 대학생 시절에 독일에 여행을 갔다가 술집에 들러서 맥주를 마신 후에 맥주잔이 마음에 들어 슬쩍 가지고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로부터 52년이 지난 후인 2024년 5월, 노인이 맥주잔 값을 주인에게 지불했다는 보도가 났습니다. 독일의 맥주집 ‘호프불로이하우스’는 자신의 이름이 Gregory라는 74세 미국 노인에게서 편지 한 통을 받았습니다.
Gregory가 미시간주립 대학에 다니던 1972년 초에 친구들과 함께 유럽 여행을 하던 중에 독일의 호프불로이하우스 맥주 집에서 맥주를 마신 후 맥주잔을 몰래 가지고 와서 지금까지 간직하고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면서 바보 같은 행동을 용서해 달라며 50달러 지폐를 편지 봉투에 넣어 보냈습니다. 그리고 편지 마지막에는 ‘어리석은 대학생’이라고 적었습니다. Gregory가 대학생 때 훔친 맥주잔은 호프불로이하우스를 뜻하는 문구 HB가 새겨진 석재(石材) 잔이었습니다.
그런데 호푸불로이하우스는 이 잔에 맥주를 얼마나 많이 따랐던지 눈금이 잘 보이지 않게 되자, Gregory가 다녀간 몇 달 뒤부터 사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은 기념품으로 40유로 정도에 판매한다고 합니다. 호프불로이하우스는 “Gregory의 사죄를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맥주잔과 함께 계속 즐기시길 바란다. 편지와 함께 온 50달러는 자선 단체에 기부하겠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동물들 중 인간들에게만 양심(良心:Conscience)을 두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철이든 후부터 양심에 어긋난 일을 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혹시 다른 사람이 보지 않나 하는 두려움에 휩싸이게 됩니다.
그리고 남의 집에서 몰래 가지고 온 물건이나 물품을 볼 때마다 그 때 생각이 떠오릅니다. Gregory는 50년이 지난 후에도 여전히 맥주잔을 볼 때마다 주인 몰래 갖고 나온 물건이라는 양심의 가책을 느낀 것입니다.
늦게나마 맥주 집에 컵 값을 보내며 사죄한 것은 Gregory가 맥주 컵을 볼 때마다, 이것은 슬쩍해 온 물건이라는 양심의 소리를 들은 때문입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주인에게 사실을 고백하고 컵 값을 지불하는 것이 옳다는 끊임없는 양심의 채찍질에 드디어 50년이 지난 후에 컵 값을 주인에게 돌려준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에게서 보낸 첫 번째 편지에서 “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2)는 말씀을 했습니다. 양심이 화인(火印)을 맞았다는 말은 양심이 마비되었다는 뜻입니다.
화인 맞은 양심은 감각이 둔해서 찬 것이나, 뜨거운 것이 닿아도 크게 통증을 느끼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람마다 양심은 있지만, 그 양심의 민감성은 다릅니다. 바늘 하나를 도둑질에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소를 도둑질하고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는 파렴치한 인간들이 많습니다. 양심이 없으면 짐승이지요.
Gregory 노인이 50년 전에 있었던 일에 대해 청산한 것은 그의 양심이 살아 있다는 증거입니다. 양심이 살아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입니다. 대부분의 불신자들이나 공산주의자들은 50년 전에 있었던 일은 잊어버리고 맙니다. 이 일에 대해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지요.
우리에게는 내가 행한 비양심적인 행위에 대해 청산할 시간이 주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간은 언제까지 지속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생명이 언제 끝날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생명이 끝나기 전에 청산할 것은 청산해야 합니다.
바울 선생은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딤후 1:3)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여기 바울 선생이 말한 ‘청결한 양심’은 청산할 것을 청산하는 양심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은 사람은 청결한 양심과 거짓 없는 믿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우리 스스로를 반성해 보는 시간을 잠시 가져 봅시다. 혹시 당신은 슬쩍한 물건을 여전히 쓰고 계신가요? 이 일에 대해 양심의 가책이 없으신가요? 샬 롬.
L.A.에서 김 인 수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