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22장에는 tax 이야기가 나옵니다. 바리새인 제자들이 아주 간사하게…속보이게 아첨하는 말을 하면서 예수님께 다가오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참되시고 참으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며 아무라도 꺼리는 일이 없으시니 이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심이니이다.’ 예수님과의 대화를 시작하면서 벌써 자기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인정하고 있다는 듯이…가까이에 있는 무리들…백성들 들으라고 하는 아첨의 말인 것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물어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지방의 납세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유대 지방의 분봉왕이었던 헤롯은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이 헤롯왕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방을 다스리는 권한이 로마 황제가 임명하는 총독이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유대 백성들이 로마 황제인 가이사…영어로 하면 시저이죠…시저에게 직접 세금을 내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된 것입니다.
이 때 로마의 황제가 누군가 하면, 그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그 줄리어스 시저가 부르투스에게 살해를 당하고 나서 그 당시 19살이었던 옥타비우스가 자신의 숙적인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르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되고 나서 이름을 아우구스투스라고 바꾸고 장장 40년이 넘는 평화의 시대를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우구스투스가 죽으면서 티베리우스라는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에 바로 유대가 로마의 총독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을 즈음에 우리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공생애 기간이 바로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였습니다.
그 때에 갈릴리 사람인 유다라는 사람이 소위 유다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란은 진압이 되었지만, 유다라는 사람이 주장하던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신데 이방 왕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반역 행위라고 주장하는 논리가 백성들 사이에 퍼지게 되고 시저에게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헤롯 당원들은 헤롯 가문을 다시 부흥시켜서 헤롯 대왕의 시절로 유대를 돌이켜야 한다는 주장 아래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백성들에게 권장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여튼 복잡한 족속입니다.
아무튼 우리 예수님이 아주 복잡한 문제에 부딪힌 것입니다. 시저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하시면 바리새인들이나 열심당원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되고 그들이 환영하던 메시야로서의 명분을 잃게 됩니다. 납세를 반대하면, 헤롯당원들과 사두개인들, 로마 총독으로부터 반역범으로 몰리게 됩니다. 진퇴양난이고 사면초가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셨다…그리고, 한 마디 하시지요? 외식하는 자들아…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그리고는 엉뚱하시게도 셋돈을 한번 가져와봐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으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다시 대답하십니다.‘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세금을 내는 돈의 종류가 달랐습니다. 로마에 대는 세금은 로마 황제가 발행하는 은화…데나리온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로 화폐는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자기 이름과 얼굴을 찍어서 발행했습니다. 한 데나리온 그러면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로마 군인이 하루 동안 일하고 받는 돈이었습니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성인 한 사람 당 한 데나리온을 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쉽게 유대인들이 이방 황제의 그림과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돈 자체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혐오감을 주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개라고 여겼던 사람들이니까요. 비즐리 라는 학자는 이런 설명을 합니다. 유대인 랍비들이 무엇을 믿었는가 하면…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아브라함과 사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화폐가 세계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믿고 가르쳐 왔다고 설명합니다.
참…재밌는 상상입니다. 그래서, 헤롯 왕도 정치 초기에는 이런 유대인 랍비들의 사상 때문에 화폐를 만들 때 형상을 새기는 일을 피해 왔습니다…그러다가 서서히 헤롯 빌립이 유대 주화에 도입하고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본격적으로 유대 주화에 자신의 형상을 새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놀라운 대답을 주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니까 시저의 세금은 시저에게 내고…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실까요?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의 상황을 정확하게 뚫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시저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묻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정작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들은 전혀 드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계신 것입니다.
( 마23: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 주님의 말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이 말씀이 어떻게 저와 여러분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맡기신 세상에서의 삶도, 교회에서의 삶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원칙을 지키면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떤 시험대에 오르든지…감사의 대상이 되든지…능히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뱀과 같이 지혜로워야 된다는 말씀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편법을 사용하고 남을 속이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삶도 교회에서의 삶도 둘 다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바빠요…어렵습니다…그런데,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이제 예수님께 가이사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은 일입니까…물어봅니다. 예수님 당시에 유대 지방의 납세 문제는 상당히 민감한 사안이었습니다. 유대 지방의 분봉왕이었던 헤롯은 종교적으로도 유대인이었기 때문에 유대 사람들이 헤롯왕에게 세금을 내는 것은 별로 문제가 되질 않았습니다.
그런데, 유대 지방을 다스리는 권한이 로마 황제가 임명하는 총독이 다스리게 되면서부터 유대 백성들이 로마 황제인 가이사…영어로 하면 시저이죠…시저에게 직접 세금을 내는 꼴이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방인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된 것입니다.
이 때 로마의 황제가 누군가 하면, 그 유명한 줄리어스 시저…그 줄리어스 시저가 부르투스에게 살해를 당하고 나서 그 당시 19살이었던 옥타비우스가 자신의 숙적인 안토니우스와 이집트의 클레오파트라를 무찌르고 황제가 되었습니다. 황제가 되고 나서 이름을 아우구스투스라고 바꾸고 장장 40년이 넘는 평화의 시대를 다스렸습니다.
그리고 나서, 아우구스투스가 죽으면서 티베리우스라는 황제가 다스리던 시대에 바로 유대가 로마의 총독이 다스리는 지역으로 바뀐 것입니다.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죽을 즈음에 우리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고…공생애 기간이 바로 티베리우스 황제가 다스리는 시대였습니다.
그 때에 갈릴리 사람인 유다라는 사람이 소위 유다의 난을 일으켰습니다. 그 반란은 진압이 되었지만, 유다라는 사람이 주장하던 이스라엘의 왕은 하나님이신데 이방 왕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은 반역 행위라고 주장하는 논리가 백성들 사이에 퍼지게 되고 시저에게 세금을 내는 것에 대한 신학적인 논쟁이 계속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한편으로는, 헤롯 당원들은 헤롯 가문을 다시 부흥시켜서 헤롯 대왕의 시절로 유대를 돌이켜야 한다는 주장 아래 로마에 세금을 바치는 것을 적극적으로 백성들에게 권장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하여튼 복잡한 족속입니다.
아무튼 우리 예수님이 아주 복잡한 문제에 부딪힌 것입니다. 시저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옳다고 하시면 바리새인들이나 열심당원들에게 외면을 당하게 되고 그들이 환영하던 메시야로서의 명분을 잃게 됩니다. 납세를 반대하면, 헤롯당원들과 사두개인들, 로마 총독으로부터 반역범으로 몰리게 됩니다. 진퇴양난이고 사면초가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셨다…그리고, 한 마디 하시지요? 외식하는 자들아…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그리고는 엉뚱하시게도 셋돈을 한번 가져와봐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는 아주 기본적인 질문으로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다시 대답하십니다.‘이 형상과 이 글이 뉘 것이냐’
세금을 내는 돈의 종류가 달랐습니다. 로마에 대는 세금은 로마 황제가 발행하는 은화…데나리온으로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고대 사회에서 주로 화폐는 왕권의 상징이었습니다. 왕위에 오르면서 자신의 권위를 상징하고 과시하기 위해서 자기 이름과 얼굴을 찍어서 발행했습니다. 한 데나리온 그러면 성인 남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로마 군인이 하루 동안 일하고 받는 돈이었습니다. 로마에 바치는 세금은 성인 한 사람 당 한 데나리온을 내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쉽게 유대인들이 이방 황제의 그림과 이름이 새겨져 있는 돈 자체가 자신들에게 얼마나 큰 혐오감을 주었을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방인은 개라고 여겼던 사람들이니까요. 비즐리 라는 학자는 이런 설명을 합니다. 유대인 랍비들이 무엇을 믿었는가 하면…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큰 민족을 이루겠다고 하신 약속이 있기 때문에 그 약속이 구체적으로 이루어지면 반드시 아브라함과 사라의 얼굴이 새겨져 있는 화폐가 세계적으로 사용될 것이라고 믿고 가르쳐 왔다고 설명합니다.
참…재밌는 상상입니다. 그래서, 헤롯 왕도 정치 초기에는 이런 유대인 랍비들의 사상 때문에 화폐를 만들 때 형상을 새기는 일을 피해 왔습니다…그러다가 서서히 헤롯 빌립이 유대 주화에 도입하고 헤롯 아그립바 1세가 본격적으로 유대 주화에 자신의 형상을 새기는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주님께서 놀라운 대답을 주십니다.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그러니까 시저의 세금은 시저에게 내고…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쳐라…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왜 우리 주님이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들이라고 부르실까요?
우리 주님은 오늘 본문의 상황을 정확하게 뚫어보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충성심 때문에 시저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은 일이냐고 묻고 있는 바리새인들에게 그들이 정작 하나님께 바쳐야 하는 것들은 전혀 드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고 계신 것입니다.
( 마23:23 )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오늘 우리 주님의 말씀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한다…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이 말씀이 어떻게 저와 여러분의 삶에 적용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맡기신 세상에서의 삶도, 교회에서의 삶도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어야 함을 가르쳐 주십니다.
이 원칙을 지키면 우리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어떤 시험대에 오르든지…감사의 대상이 되든지…능히 통과할 수가 있습니다. 너희가 세상에서는 뱀과 같이 지혜로워야 된다는 말씀이 세상에 살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무엇이든지 닥치는 대로 편법을 사용하고 남을 속이면서까지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일을 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세상에서의 삶도 교회에서의 삶도 둘 다 최선을 다해야 하기 때문에 바빠요…어렵습니다…그런데, 우리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하나님께서 축복하신다고 저는 믿습니다. 그렇게 적극적으로 살게 하는 것이 바로 복음이기 때문입니다.
© 2020 Christianitydaily.com All rights reserved. Do not reproduce without permiss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