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다녀 오는 길에 비행기 안에서 어떤 영화를 보다가,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시각 장애인(소경)이고, 그를 위해 집을 한 채 짓는다면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지붕 처마 밑에는 소리 나는 풍경을 걸어 둘 것입니다. 집을 보지는 못하지만, 멀리서라도 소리를 들어 집에 오는 길, 아니 나에게 오는 길을 놓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할 수 있으면 바람이 부는 반대 방향에 집을 짓고 사시 사철 피는 한 가지 꽃을 마당 가득 키울 것입니다. 행여 마음 산란한 날에, 풍경 소리를 듣지 못하더라도, 바람결에 꽃 향기를 맡아 집을 놓치지 않게 할 것입니다. 문 앞 내 땅이라고 할 수 있는 몇 미터부터 길에 작고 편편한 돌을 촘촘히 박아 놓을 것이며, 할 수 있는 한 멀리까지 이런 길을 낼 것입니다. 집 가까이에 와서 집을 놓친다면 마음이 많이 아플 것입니다. 집으로 들어 오는 문에는 늘 기름칠을 해 두고 힘 주어 밀지 않아도 열 수 있게 할 것이지만, 그러나 갑작스레 활짝 열려 당황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문 안 마당에는 걸음을 이끌어줄 포장도로를 낼 것이며, 좌우에 향기 진한 꽃을 심어 좌우로 치우치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안개 길 걸어 오느라 그렇지 않아도 마음 고생 많이 했을 텐데, 내 집 안에서 조차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문에는 문턱을 없앨 것입니다. 행여 발이 걸리는 날엔 크게 고생할 것인데, 그저 스르르 밀고 들어 오기만 해도 되게 만들겠습니다. 일단 집에 들어 오면 모든 통로는 양 쪽으로 손을 내밀면 닿는 정도로 좁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양 벽에는 다양한 두께로 길게 홈을 파겠습니다. 가장 가느다란 홈은 화장실을 향할 것이며, 조금 더 두터운 홈은 침실로, 그리고 더 두터운 홈은 거실을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이 필요한 만큼 홈을 파서 따라가기만 하면 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방마다 좋아하는 고유의 향을 두어 구별되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생각을 다 해 그 사람이 나들기에 불편 없도록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눈이 되어 줄 수는 없지만, 눈 없어도 살 수 있게는 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가 나 없이 활동하는 밖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있는 내 집이나 혹은 그가 사는 그의 집에서는 눈 없어도 살 수 있도록 설계할 것입니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 걸맞게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곳에 살 사람이 편해야 하며, 그 사람이 좋아해야 하며, 그 사람의 취향에 맞아야 합니다. 그 곳에 마음 두고 살 사람보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설계사는 실패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짓는다면, 이론, 자기 취향이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그곳에 살 사람보다 짓는 사람의 생각이 결코 앞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살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는 것을 만들고 살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편하도록 짓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입니다. 물론 주인이 원하는 것에 자기가 가진 건축 실력으로 조금이나마 미를 더할 수 있다면 마음 기쁜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집일수록 그 사람 마음에 흡족하도록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 묻기 이전에, 누구의 집인가 묻는 사람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또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초라한 우리 안에 사시겠다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단 한가지, 죽도록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고마워, 그 분이 사시기에 합당하도록 집을 지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마음을 쏟은 이상으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편하지 않을 마음 밭을 이루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행실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말의 향기를 내 품으며, 하나님이 거니시기에 좋은 인생 계획을 가지고, 한 단계 한 단계 구체적으로 지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짓는 내 인생 집이라고 내 마음대로 지을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사시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셔야 합니다.
한 평생 집 짓는 인생 살아가면서,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묻기 이전에 다시 한 번, 누구의 집을 지을 것인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남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사시기에 좋은 집이어야 합니다.
보이지 않는 안개 길 걸어 오느라 그렇지 않아도 마음 고생 많이 했을 텐데, 내 집 안에서 조차 긴장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집 안으로 들어오는 문에는 문턱을 없앨 것입니다. 행여 발이 걸리는 날엔 크게 고생할 것인데, 그저 스르르 밀고 들어 오기만 해도 되게 만들겠습니다. 일단 집에 들어 오면 모든 통로는 양 쪽으로 손을 내밀면 닿는 정도로 좁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양 벽에는 다양한 두께로 길게 홈을 파겠습니다. 가장 가느다란 홈은 화장실을 향할 것이며, 조금 더 두터운 홈은 침실로, 그리고 더 두터운 홈은 거실을 향하도록 하겠습니다. 방이 필요한 만큼 홈을 파서 따라가기만 하면 되도록 하겠습니다. 물론 방마다 좋아하는 고유의 향을 두어 구별되도록 하겠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모든 생각을 다 해 그 사람이 나들기에 불편 없도록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 사람의 눈이 되어 줄 수는 없지만, 눈 없어도 살 수 있게는 해 주고 싶을 것입니다. 그가 나 없이 활동하는 밖에서는 몰라도, 적어도 내가 있는 내 집이나 혹은 그가 사는 그의 집에서는 눈 없어도 살 수 있도록 설계할 것입니다.
누가 사느냐에 따라 걸맞게 집을 지어야 합니다. 그곳에 살 사람이 편해야 하며, 그 사람이 좋아해야 하며, 그 사람의 취향에 맞아야 합니다. 그 곳에 마음 두고 살 사람보다 자기 생각이 앞서는 설계사는 실패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집을 짓는다면, 이론, 자기 취향이나 경험이 아무리 풍부하다 해도 그곳에 살 사람보다 짓는 사람의 생각이 결코 앞서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자기 생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살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바라는 것을 만들고 살 사람(사랑하는 사람)이 편하도록 짓는 사람이 좋은 건축가입니다. 물론 주인이 원하는 것에 자기가 가진 건축 실력으로 조금이나마 미를 더할 수 있다면 마음 기쁜 일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는 집일수록 그 사람 마음에 흡족하도록 지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지을 것인가 묻기 이전에, 누구의 집인가 묻는 사람이 깊이 사랑하는 사람이며 또한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집입니다. 우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초라한 우리 안에 사시겠다 하셨습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 없고 감당할 수도 없는데 그렇게 하신 이유는 단 한가지, 죽도록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 고마워, 그 분이 사시기에 합당하도록 집을 지어야 할 것인데, 그것은 이제 우리의 몫입니다. 사랑하는 시각 장애인을 위해 구체적으로 마음을 쏟은 이상으로 집을 지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불편하지 않을 마음 밭을 이루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행실의 열매를 맺고, 하나님이 좋아하실 말의 향기를 내 품으며, 하나님이 거니시기에 좋은 인생 계획을 가지고, 한 단계 한 단계 구체적으로 지어야 할 것입니다. 내가 짓는 내 인생 집이라고 내 마음대로 지을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 사시는 하나님께서 좋아하셔야 합니다.
한 평생 집 짓는 인생 살아가면서, 어떤 집을 지을 것인가, 묻기 이전에 다시 한 번, 누구의 집을 지을 것인가, 물어야 할 것입니다. 남 보기에 좋은 집이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하나님 사시기에 좋은 집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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