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에 건강이 안 좋으신 여든이 넘으신 할머니를 방문하여 함께 시간을 보낸 것을 기억합니다. 건강이 안 좋아 오래 살 것 갖지 않으신 것도 아시고 계십니다. 십여년 동안 교회를 다니시고 험한 세상을 열심히 살아오신 할머니가 하루는 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시고 그리고 근심스러운 모습으로 저에게 물어 옵니다. "전도사!, 세상에서 죄진 것 많은데 나 죽으면 천국 갈 수 있을까" "예, 그러문요. 할머니 천국 가실 수 있어요".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나".
그래서 요한 복음 3:16절의 말씀,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을 가지고 복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미 할머니께서도 듣고 아시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귀담아 들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모릅니다. 말씀을 들으신 후에, "이봐요 전도사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이제 늙어서 자꾸 잊어버려, 기억치 못해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떻하지"하며 걱정하시는 모습으로 물어 봅니다. "할머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잊어 버려도 되요. 머리에 기억하는 것보다 마음에 새기면 되잖아요". "그래 어떻게 하면 새기나" 하시기에 저를 따라서 기도하세요.
그래서 함께 두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노인이 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그 손이 얼마나 강렬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노인에게서 그 강렬한 힘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기도가 끝나서도 한동안 두 손을 잡은 체 손을 놓으시지 않는 모습 가운데 구원의 확신과 소망의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할머니와 교제를 나누고 인사를 드리고 방문을 나서는 순간에 저는 뒤돌아 할머니를 다시 돌아 볼 용기가 나지 안았습니다. 아니 돌아보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 할머님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발걸음을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할머니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그후 어느 날 그 할머니의 장례예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한 그 강렬했던 손을 다시금 잡아 보았습니다. "할머니! 이제는 저의 손을 잡을 필요가 없어요. 이제는 손을 놓으셔도 주님이 당신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인도하시 자나요. 주님이 이끄시는 손으로 천국에 함께 계시는 당신의 모습을 새깁니다. 우리는 할머니를 다시는 이 땅에서 만나 볼 수 없기에 가슴 아파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이별을 애통해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당신의 미운 정 고운 정을 간직하기에 그것을 그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다가 갑니다. 긴 것 같은 인생이지만 장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인생이 짧고 빠른 것을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짧은 삶 가운데서도 얼마나 아옹다옹하며 조그마한 일에 집착하여 안달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살아가는 동안 욕심과 시기와 미움이 합하여 조그마한 일에 서로 대면하지 아니하고 마치 적과 같이 대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마음속에 미움을 버리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마음이 편하고 기쁨 마음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가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같이 설텐데, 그날이 결코 먼 훗날이 아니데 오늘의 조그마한 문제로 다투며 살아갑니다. 그뿐아니라 우리의 살아가는 것이 힘에 벅차고 지칠 때, 우리가 육체적으로 아픔과 고통 가운데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우리가 믿었던 믿음마저도 저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때로 어려운 삶 가운데 주님이 주신 은혜의 구원마저도 믿음이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잃어 버릴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의 손을 놓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꼭잡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는 변함이 없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위로자 되심에 감사드립니다.
/새생명침례교회 이훈 목사
그래서 요한 복음 3:16절의 말씀, "하나님이 이처럼 세상을 사랑 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을 가지고 복음을 함께 나누었습니다. 이미 할머니께서도 듣고 아시는 성경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귀담아 들으시는 할머니의 모습이 얼마나 진지한지 모릅니다. 말씀을 들으신 후에, "이봐요 전도사님,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려고 하지만, 이제 늙어서 자꾸 잊어버려, 기억치 못해 천국에 가지 못하면 어떻하지"하며 걱정하시는 모습으로 물어 봅니다. "할머니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잊어 버려도 되요. 머리에 기억하는 것보다 마음에 새기면 되잖아요". "그래 어떻게 하면 새기나" 하시기에 저를 따라서 기도하세요.
그래서 함께 두 손을 잡고 기도했습니다. 여든이 넘으신 노인이 저의 손을 두 손으로 꼭 잡은 그 손이 얼마나 강렬한지 모릅니다. 어떻게 노인에게서 그 강렬한 힘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기도가 끝나서도 한동안 두 손을 잡은 체 손을 놓으시지 않는 모습 가운데 구원의 확신과 소망의 전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기도를 마치고 할머니와 교제를 나누고 인사를 드리고 방문을 나서는 순간에 저는 뒤돌아 할머니를 다시 돌아 볼 용기가 나지 안았습니다. 아니 돌아보지 않는 것이 나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저는 분명 할머님을 천국에서 다시 만나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발걸음을 바꾸었습니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할머니를 본 마지막이었습니다.
그후 어느 날 그 할머니의 장례예배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손을 잡고 기도한 그 강렬했던 손을 다시금 잡아 보았습니다. "할머니! 이제는 저의 손을 잡을 필요가 없어요. 이제는 손을 놓으셔도 주님이 당신의 손을 잡고 천국으로 인도하시 자나요. 주님이 이끄시는 손으로 천국에 함께 계시는 당신의 모습을 새깁니다. 우리는 할머니를 다시는 이 땅에서 만나 볼 수 없기에 가슴 아파합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이별을 애통해 합니다. 우리의 마음 가운데 당신의 미운 정 고운 정을 간직하기에 그것을 그리며 눈물을 흘립니다."
우리는 누구나 이 세상을 살다가 갑니다. 긴 것 같은 인생이지만 장례 예배를 드릴 때마다 인생이 짧고 빠른 것을 되새기게 됩니다. 우리는 이 짧은 삶 가운데서도 얼마나 아옹다옹하며 조그마한 일에 집착하여 안달을 하며 살아가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게 됩니다. 살아가는 동안 욕심과 시기와 미움이 합하여 조그마한 일에 서로 대면하지 아니하고 마치 적과 같이 대적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마음속에 미움을 버리고 용서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사랑하며 마음이 편하고 기쁨 마음으로 살아가면 얼마나 좋을까요. 언제가 우리 모두가 주님 앞에 같이 설텐데, 그날이 결코 먼 훗날이 아니데 오늘의 조그마한 문제로 다투며 살아갑니다. 그뿐아니라 우리의 살아가는 것이 힘에 벅차고 지칠 때, 우리가 육체적으로 아픔과 고통 가운데에서 절망하고 있을 때, 우리가 믿었던 믿음마저도 저버리기 쉬운 것이 바로 우리의 연약한 모습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때로 어려운 삶 가운데 주님이 주신 은혜의 구원마저도 믿음이 들리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 믿음을 잃어 버릴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붙잡고 계십니다. 우리는 힘들고 지칠 때 주님의 손을 놓을지라도 주님은 우리의 손을 꼭잡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는 변함이 없고 언제나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의 위로자 되심에 감사드립니다.
/새생명침례교회 이훈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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