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하나님의 구원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책이다. 하나님이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인간을 만드시고 에덴동산에 두시고 당신과 만나고 교제하면서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셨다. 하나님과의 만남과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와 능력을 얻고, 하나님의 대리자가 되어서 만물을 다스리고 통치하게 하셨다. 이것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 하는 것이다.(소요리문답1번,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
그런데 인간이 뱀의 유혹을 받아 하나님의 법을 어기고 죄를 짓게 되면서 하나님과 단절되고, 정죄를 받아 사망에 이르게 되었다. 사랑의 하나님은 곧바로 최초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구원의 길을 여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창3:15) 이것은 뱀의 머리를 깨뜨릴 여자의 후손인 메시야(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구원을 완성하시겠다는 선언이다. 그 여자의 후손이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님이시다.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20:31)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을 믿을 때 생명을 얻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메시야)는 예수님의 이름이 아니라 예수님에게 주어진 직분이다. 구원의 일을 이루라고 주어진 직분이다. 왕의 직분이 있고, 선지자의 직분이 있고, 제사장의 직분이 있다. 이 세가지를 한꺼번에 수행할 수 있는 직분이 그리스도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의 댓가를 다 지불하셨다는 증거로 부활하셨다.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신 것이다. 죽음에서 부활하시면서 사망의 권세를 잡고 있는 사탄의 머리를 박살내셨다. 모든 영적권세를 그 발아래 굴복시키시는 왕의 역할을 수행하신 것이다. 죽으시고 부활하심을 통해서 하나님과 가로막혀 있던 담을 허무시고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열어 주셨다. 우리는 예수님의 피를 힘잆어 하나님께로 나아갈 수 있다. 선지자의 직분을 수행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14:6)
종합하면 예수님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완성하심으로 우리에게 의로움과 생명을 허락해주신 것이다.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우리의 모든 죄는 사해졌고, 사탄의 머리는 박살났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었고, 우리의 모든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고 끝난 것이다. 우리가 이 사실을 믿고 예수님을 우리 인생(마음) 가운데 왕으로 모셔들이면, 예수님이 왕과 주인이 되셔서 우리의 인생을 통치하고 다스리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하신다.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행2:36)
최초의 복음이 선포된 이후에 구원의 역사를 이루가시는 하나님과 그것을 방해하려고 하는 사탄의 계략이 계속해서 부딪힌다. 사탄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이길 수 없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언약을 붙들고 살려고 하는 하나님의 백성과 유혹하고 속여서 하나님의 언약을 놓치게 하려는 사탄과의 끝임없는 싸움이 이어진다. 이것을 영적 싸움이라고 한다. 이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두 가지 관점을 가지고 읽어야 한다. 첫번째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1차적인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문맥, 뜻) 두번째는 그 이야기가 보려주려고 하는 영적인 의미를 찾아야 한다. 성경의 이야기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영적인 의미만을 강조하면 근거가 없는 자의적인 해석이 된다.(이단, 사이비) 반면에 영적인 의미를 찾지 않고 성경의 사건만 강조하면 과거의 영웅담에 지나지 않는다.
이 관점에서보면 여호수아가 가나안 땅을 정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것이고, 가나안 땅에 있는 7개 부족은 그것을 방해하려고 하는 적들이다. 가나안 땅에 정복은 사탄과의 영적인 전쟁을 보여주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는 정복해야할 7개 부족 31명의 왕이 있었다. 이들을 정복해야 하나님의 통치가 가나안 땅에 이루어진다. 이걸 보면서 깨달아야 하는 것이 있다. 우리 안에도 하나님이 주인 되지 못하게 하는 31개의 왕이 존재한다. “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29.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롬1:28) 이 모든 것이 우리 안에 다 있다.(상황과 환경이 되면 나온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왕이 되어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게 하고, 두려워 하게 하고, 하나님께 불순종하게 한다. 우리 인생을 다 망치는 주범들이다. 이것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싸워 이기는 것이 영적인 싸움이고 전쟁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이미 승리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싸우면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다.
여호수아는 아이성 전투에서 승리한 뒤에 에발산과 그리심산이 있는 세겜으로 가서 제단을 쌓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율법을 낭독하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다시 새롭게 상기했다. 영적인 충전의 시간을 가진 것이다. 다음에 있을 전쟁을 위해서 영적으로 무장을 한 것이다.
이때 가나안 땅의 있는 적들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1절과 2절을 보자. “1. 이 일 후에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2.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헷 사람, 아모리 사람, 가나안 사람, 브리스 사람, 히위 사람, 여부스 사람이라는 것은 가나안 땅에 있는 전체 부족을 이야기 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영적인 충전을 하고 싸울 준비를 할 때 적들도 한 마음이 되어서 이스라엘과 싸우겠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
우리가 믿음으로 결단하고, 기도를 시작하면 사탄도 무장하고 싸울 준비를 한다. 기도하려고 하는 의지를 꺾어 버리려고 모든 것들을 다 한다. 마음 상한 일이 생기게 하고,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지게 하고, 싸우게 하고, 차 타이어가 펑크가 나기도 하고, 좋은 일거리를 줘서 예배와 기도를 빠지게 하기도 하고, 몸이 피곤하게 하고…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동원해서 기도하는 것을 막을 것이다.
기도를 시작했으니 하나님이 축복해 줄거야. 기도를 시작했으니 모든 일이 잘 풀릴거야. 이런 순진한 생각으로 기도를 하면 오히려 더 시험에 든다. 기도를 시작하면 가장 먼저 찾아오는 것은 평탄함이 아니라 방해다. 그 방해를 믿음으로 이겨야 하나님이 허락하신 응답을 받을 수 있다. 믿음으로 기도하면 반드시 사탄의 방해를 이기고 승리한다. 예수님이 이미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승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기도하고 싸우는 것이다. 이미 이긴 전쟁을 싸우는 것이다.
그런데 대 놓고 이렇게 방해하고, 공격하는 것은 오히려 쉽다. 사탄의 방해가 너무 분명하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주의해야 하는 것은 교묘하게 속이는 것이다. 우리로 하여금 영적인 싸움인 것을 인지하지 못하게 하면서 우리는 넘어뜨리는 것이다. 3절과 4절을 보자. “3. 기브온 주민들이 여호수아가 여리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4. 꾀를 내어 사신의 모양을 꾸미되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히위 족속에 속한 기브온 사람들이 이스라엘과 직접 싸워서는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동맹 조약을 맺어서 살아 남으려고 했다.(7절)
그런데 이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가나안 땅에 있는 7개 부족과는 언약을 맺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하셨기 때문이다.(출34:11-12)기브온 족속이 동맹 조약을 맺고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속여야 했다. 그래서 먼나라에서 온 사신인 것처럼 낡은 부대, 찢어져서 기운 포도주 부대, 낡은 옷과 신, 그리고 마르고 곰팡이가 생긴 떡으로 위장을 했다. 자신들은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라 먼 나라에서 온 사람이라고 속여서 동맹을 맺자고 했다. 결국 여호수아와 족장들이 그들에게 속아서 죽이지 않기로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고 동맹 조약을 맺었다.
그런데 3일 뒤에 여호아와 그 족장들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았다. 16절-18절을 보자. “16. 그들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야 그들이 이웃에서 자기들 중에 거주하는 자들이라 함을 들으니라. 17. 이스라엘 자손이 행군하여 셋째 날에 그들의 여러 성읍들에 이르렀으니 그들의 성읍들은 기브온과 그비라와 브에롯과 기럇여아림이라. 18. 그러나 회중 족장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로 그들에게 맹세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그들을 치지 못한지라 그러므로 회중이 다 족장들을 원망하니.”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해서 남쪽으로 이동해서 한 성읍을 공격하려고 하는데 보니까 동맹을 맺었던 기브온 족속이 딱 거기 있었다. “니가 왜 거기서 나와!” 기브온 족속에서 완전히 속아버린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탄의 전략을 볼 수 있다.
첫번째, 사탄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영악하다. 4절에 보면 “꾀를 내어”라는 표현이 나온다. 꾀를 내어라는 단어는 <오르마>라는 단어인데 창세기 3장 1절에 아담과 하와를 속여서 선악과를 따먹게 한 뱀에게 사용된 단어다.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창3:1) 간교하다는 말은 ‘간사하다’, ‘교활하다.’ ‘영리하다.’ ‘속임수를 잘 쓴다.’ 이런 말이다. 속이기로 작정한 사람들은 허술하게 속이지 않는다. 사기꾼들은 사람을 속이기 위해서 치밀하게 계획을 짠다. 가짜를 진짜처럼 속이려면 얼마나 계략을 잘 짜야 할까? 그래서 속고난 뒤에 사람들의 반응은 나는 진짜인줄 알았다고 말을 하는 것이다.
두번째, 사탄의 속임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간파할 수 없다. 7절을 보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히위 사람에게 이르되 너희가 우리 가운데에 거주하는 듯하니 우리가 어떻게 너희와 조약을 맺을 수 있으랴 하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처음에는 의심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이 기가막히게 거짓말을 지어내서 한다. 12절과 13절을 보자. “12. 우리의 이 떡은 우리가 당신들에게로 오려고 떠나던 날에 우리들의 집에서 아직도 뜨거운 것을 양식으로 가지고 왔으나 보소서 이제 말랐고 곰팡이가 났으며. 13. 또 우리가 포도주를 담은 이 가죽 부대도 새 것이었으나 찢어지게 되었으며 우리의 이 옷과 신도 여행이 매우 길었으므로 낡아졌나이다 한지라.” 조금 의심하는 것처럼 하다가 교묘한 거짓말에 또 속아 넘어갔다. 사람의 생각으로 사탄의 간교함을 이길 수 없다.
세번째, 속이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행하신 일을 찬양한다. 9절과 10절을 보자. “9. 그들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되 종들은 당신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심히 먼 나라에서 왔사오니 이는 우리가 그의 소문과 그가 애굽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들으며. 10. 또 그가 요단 동쪽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아스다롯에 있는 바산 왕 옥에게 행하신 모든 일을 들었음이니이다.” 하나님의 이름을 너무 자연스럽게 말한다. 우리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들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당신의 하나님은 여호와는 너무 강하고 놀라우신 분이다. 애굽에서 행한 일과 요단강 동쪽 두 왕들에게 행한 일을 우리도 다 알고 있다. 속이기 위해서라면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은 너무나 쉽게 한다.(비즈니스를 성사시키기 위해서 하나님의 이름을 말하고, 신앙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사기꾼들이다.)
네번째, 말씀을 가지고 공격한다. 사탄은 말씀을 너무 잘 알고 그것을 자유자재로 이용한다. 말씀을 잘 알고 순종하면 변화받을 건데, 말씀을 악한 일의 도구로 사용한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면 죽일 수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속여서라도 언약을 맺으려고 했다. 창세기 3장에서 뱀이 하와에게 왜 선악과를 따먹으라고 했는가? 창세기 2장의 하나님의 말씀을 알기 때문이다. “16.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6-17)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 죽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하와를 속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게 한 것이다.
이렇게 치밀하고 교묘한 사탄의 속임수를 어떻게 이겨야 할까? 오늘 본문에 보면 여호수아가 이들에게 속은 이유를 설명한다. 14절과 15절을 보자. “14. 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는 어떻게 할지를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15. 여호수아가 곧 그들과 화친하여 그들을 살리리라는 조약을 맺고 회중 족장들이 그들에게 맹세하였더라.”
여호수아가 속은 이유는 단 하나이다. 하나님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영적인 싸움은 육신의 힘으로 할 수 없다. 우리의 눈으로, 우리의 생각으로, 우리의 지혜로 싸우면 백번 싸우면 백번 다 진다. 인간의 생각과 지혜로 사탄의 간교함을 이길 수 없다. 우리의 머리로 아무리 궁리해도 사탄의 교묘한 올무에서 벗어날 수 없다.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3:5-7) 자기가 똑똑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속는다. 스스로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 사탄의 종노릇 하고 있다. 그런데 모른다. 이단에 빠진 사람들 중에 지식 있는 엘리트들 수두룩 하다.
영적인 싸움은 기도로 하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힘입어 기도할 때 영적인 싸움에서 승리한다. 사탄은 다른 것을 두려워 하지 않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 두려워 한다. 우리가 기도할 때 성령님이 우리의 영적인 눈을 열어서 사탄의 계략을 보게 하는 것이다. 사탄이 아무리 교묘해도 기도하면 그 실체를 드러내신다. 우리가 모든 일을 기도하면서 준비하고, 결정해야 하는 이유이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매일 매순간 속고 있는데 속는지도 모르고 당한다. 사탄이 분열시키는 지도 모르고 열변을 토하면서 사람들을 이간질 하고 있다. 사탄이 믿음을 떨어뜨리려고 오해하게 하고, 상처받게 만드는데 거기에 속아서 믿음을 잃어버린다. 사탄이 던져주는 대로 원망하고, 분노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절망하는 사이 우리의 인생을 스스로 망쳐간다.
오늘 말씀의 결론은 무엇일까? 아 사탄이 이렇게 교묘하구나! 이렇게 잘 속이는 구나! 이렇게 치밀하고 집요하게 공격하는구나! 그래서 나는 속을 수 밖에 없겠구나! 이것이 결론이 아니다. 내가 요즘 이렇게 힘이 없는 것은 사탄이 공격해서 그런거구나! 나도 안그러고 싶었은데 사탄이 너무 공격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변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목사님, 요즘 사탄의 공격이 너무 심해서 예배를 잘 못드려요.” 이런 책임전가하고 변명하라는 것이 아니다.
기도하면서 사탄의 공격을 분별하라는 것이다. 사탄의 공격을 알고 이기라는 것이다. 사탄은 이미 십자가에서 힘을 잃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완전히 그 권세가 꺾였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싸울 때 우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우리가 왜 힘들게 영적인 싸움을 해야 하는가? 승리한 자에게는 기쁨과 영광이 주어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기쁨이 무엇인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하는 기쁨을 누리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승리할 때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이 된다. 날마다 영적으로 승리하는 기쁨으로 충만하시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