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백할 내용이 있는 인생
여호수아 4장 1절-24절
하나님 때문에 벅찬 감격을 느껴본 때가 언제인가? 믿음으로 승리의 희열을 맛 본 때가 언제인가? 끓어 오르는 감정을 주체할 수 없어 눈물을 흘려본 적이 언제인가? 소년 다윗은 완전 무장한 골리앗이 자기 앞에서 쓰러지던 순간을 평생 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소년 다윗은 골리앗 앞에서 죽을 만큼 두려웠지만 “전쟁은 칼과 창에 달려 있지 않고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라고 믿음의 고백을 내뱉었다.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골리앗을 향해서 물맷돌을 던졌을 때 거인 골리앗이 자기 눈 앞에서 쿵 하고 땅에 쳐박혔다. 다윗은 이 경험 이후 더 이상 소년이 아니었다. 믿음의 거장으로 훌쩍 커버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널 때의 느낀 감격이 이런 종류의 것이었다. 출애굽 2세대인 사람들은 홍해를 건너본 경험이 없는 사람들이다. 그런데 요단강이 갈라지는 것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자기 발로 건넜을 때 백성들의 가슴 속에 꿈틀거리고 올라오는 뜨거운 감정이 있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어떤 일도 할 수 있겠다.”
오늘 말씀에 보면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는 시기를 조율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다. 건기 때라면 요단강의 넓이가 30m 정도 밖에 되지 않아서 쉽게 건널 수 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넜을 때는 일년 중 강물이 가장 많이 불어난 우기 때이다. 강 넓이가 1천 600m, 물의 시속이 16km, 그리고 수심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이다. 하나님은 일부러 우기에 강을 건너게 하셨다.
그 이유를 23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요단 물을 너희 앞에서 마르게 하사 너희를 건너게 하신 것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 앞에 홍해를 말리시고 우리를 건너게 하심과 같았나니.”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는 것을 40년 전에 홍해를 건넌 사건과 비교하고 있다. 이 두 사건에는 공통점이 있다. 하나님이 일부러 어려운 상황으로 몰아 넣으셨다는 것이다. 출애굽할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던 길을 되돌아 와서 홍해가 막힌 길로 들어가게 하셨다. “2.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출14:2-3) “돌이켜”는 가던 길을 되돌아 간다는 말이다. 가나안 땅으로 가기 위해서 굳이 홍해를 건너지 않아도 되었는데 하나님이 홍해 길로 가게 하셔서 바로로 하여금 추격할 수 있는 빌미를 준 것이다. 요단강은 건기에 건너면 쉽게 건널 수 있는데 일부러 일년 중 가장 물이 많이 불어 났을 때 건너게 하셨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하셨나? 24절을 보자. “이는 땅의 모든 백성에게 여호와의 손이 강하신 것을 알게 하며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항상 경외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라.” 이 두 사건을 통해서 “여호와의 손이 강한 것을 알게 하고, 너희가 여호와 하나님을 항상 경외하게”하기 위함이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이 얼마나 강한지를 보여주시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다. 홍해를 마르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광야 40년의 어려움을 지나갈 준비를 시키셨듯이, 요단강을 마르게 하신 사건을 통해서 강한 적들이 버티고 있는 가나안 땅을 정복할 준비를 시키신 것이다.
우리의 인생의 위기는 하나님이 놓아 두신 선물이다. 위기를 믿음으로 극복할 때 하나님의 강한 손을 경험하게 된다. 위기를 극복하게 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함으로 앞으로 일어날 모든 문제를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기도록 하신다. 그래서 우리는 위기를 만날 때 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도하면서 돌파해야 한다.
지금부터 우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요단강을 건넜는지 살펴 보면서 그 감격을 함께 느껴보려고 한다. 넘실거리는 요단강 앞에 막혀서 3일 동안 치열하게 기도하고 난 뒤 여호수아는 백성들에게 요단강을 건너라는 명령을 내렸다. 요단강을 건너는 순서를 정하고 대열을 정비했다. 제일 앞에 하나님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가고 그 뒤를 무장한 군사들이 따랐다. 그리고 그 뒤를 백성들이 지파별로 따라서 건넜다.
여기에서 우리가 눈여겨 보아야할 것이 있다. 하나님의 언약궤를 메고 가는 사람이다. 평소에 이동을 할 때에는 고핫자손들이 언약궤를 메고 간다.(민4:15) 그런데 오늘은 제사장들에게 그 언약궤를 메라고 한다. 제사장이 언약궤를 멜 때에는 특별한 때이다. 주로 전쟁을 치를 때이다.
요단강을 건너는 장면은 홍해를 건너는 장면과 상당한 차이가 있다. 홍해를 건널 때에는 이미 홍해가 갈라진 뒤에 물로 들어갔다. 갑자기 들이닥친 이집트의 군대 때문에 혼이 싹 빠져서 생각할 겨를도 없이 살기 위해서 뛰어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까 홍해를 건넜고, 이집트 병사는 다 죽어 있었다.
그런데 요단강을 건너는 것은 홍해를 건널 때와 다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갈라진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시속16km의 급물살이 흐르는 요단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강에 발을 잘못 담겼다가는 물살에 휩쓸려서 물속에 빠져 죽을 수도 있다. “15.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에 잠기자. 16. 곧 위에서부터 흘러내리던 물이 그쳐서 사르단에 가까운 매우 멀리 있는 아담 성읍 변두리에 일어나 한 곳에 쌓이고 아라바의 바다 염해로 향하여 흘러가는 물은 온전히 끊어지매 백성이 여리고 앞으로 바로 건널새.”(수3:15-16)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강물의 위험을 그대로 안고 물에 발을 내디뎠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잠기자 물이 그치기 시작했다. 하나님이 요단강 물을 가르실 때 바람을 사용했을 것이다. 바람에 밀려서 올라간 그 물은 강 상류 쪽에 쌓여서 거대한 물 벽을 형성하고 있었다. 언제 다시 흐를지 모르는 거대한 물벽이다.
이런 상황에서 법궤를 멘 제사장들에게 또 하나의 명령이 내려졌다.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은 요단 가운데 마른 땅에 굳게 섰고 그 모든 백성이 요단을 건너기를 마칠 때까지 모든 이스라엘은 그 마른 땅으로 건너갔더라."(수3:17) 제사장들은 갈라진 요단강을 걸어서 반대 방향 둑으로 나가 버리지 않았다. 강 한 가운데 머물러 서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건널 때까지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았다. 언제 덮칠지도 모르는 거대한 물벽을 등지고 서서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널 때까지 굳게 지키고 있었다.
이처럼 말씀에 순종한다는 것은 편안하고 쉬운 것이 아니다. 위험을 무릅쓰는 것이다. 언제 덮칠지 모르는 두려움 앞에 놓여 있는 것이다. 돈 문제를 하나님 앞에 맡겼다는 것은 시시각각 다가오는 재정적인 압박을 기도하면서 이겨가는 것이다. 힘든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견디는 것이다.
제사장들이 어깨에 무엇을 메고 있는가? 제사장들이 메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법궤이다. 법궤는 하나님을 상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 것이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 의지해서 흐르는 강에 발을 담궜고, 하나님을 붙들고 강 한 가운데에 서 있다. 제사장들이 법궤를 메고 요단강 가운데 굳게 섰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문제의 중심에 굳게 서 있다는 말이다.(수3:17) 하나님은 제사장들이 언약궤를 메고 강 중앙에 서 있는 동안 물이 덮치지 못하게 지켜주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굳게 서 있는 한 하나님이 우리의 울타리가 되어 주신다.
요단강을 다 건넌 후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또 하나의 명령을 내렸다. 4절과 5절을 보자. “4.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각 지파에 한 사람씩 준비한 그 열두 사람을 불러. 5.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각지파에 한 사람씩 열 두명을 뽑아서 제사장들이 서 있는 강 가운데로 다시 들어가서 돌을 하나씩 가져오게 했다. 그리고 그 돌을 쌓아서 기념비를 만들게 했다.
12명이 돌을 가지러 다시 강 가운데로 들어가는 것은 긴장되는 일이다. 백성들은 자기 지파의 대표들이 돌을 가지러 다시 들어가는 모습을 긴장감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요단강을 건너게 하셨다는 것을 마음에 다시 한번 각인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돌들을 길갈에 쌓아서 기념비로 만들게 하셨다. 20절-22절을 보자. “20. 여호수아가 요단에서 가져온 그 열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21.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그들의 아버지에게 묻기를 이 돌들은 무슨 뜻이니이까 하거든. 22. 너희는 너희의 자손들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이 마른 땅을 밟고 이 요단을 건넜음이라.”
하나님이 이 돌무더기를 요단강 뚝에 세운 것이 아니라 길갈에 세우게 하셨다. 첫번째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한 것이었다. 길갈은 가나안 땅 정복을 위한 베이스 캠프였다. 전쟁을 하러 나갔다가 다시 길갈로 돌아왔다. 가나안 땅 정복 전쟁이 다 끝날 때까지 길갈이 영적, 군사적인 중심지였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무더기를 볼 때마다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을 다시 상기하게 된다. 믿음을 잃었다가도 다시 되찾게 된다.
두번째는 자녀들을 위한 것이다. 강에서 가지고 온 돌들은 땅에 있는 것들과 다르다. 땅에 있는 돌들은 표면이 거칠다. 그런데 물 속에서 가져온 돌은 물살에 깎여서 표면이 반질질하다. 단번에 눈에 띄게 되어 있다. 자녀들이 왜 특이한 돌무더기가 저기 있느냐고 물을 때 요단강을 건너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이야기 해주라는 것이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 하다보면 자기 속에 그 열정과 감격이 다시 살아나게 된다.
우리가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할 이야기가 많다는 것이다. 하나님과 겪어온 사건이 많고, 하나님이 도우신 이야기 많고, 하나님 붙들고 승리한 이야기가 많은 것이다.
여러분에게는 하나님과 함께 나눌 요단강 도하의 이야기가 있는가? 어려운 문제 앞에서 하나님을 믿고 도전한 믿음의 고백이 있는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눈물로 기도한 이야기가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한 이야기가 있는가?
여러분에게는 자녀들에게 들려줄 하나님과 나눈 믿음의 고백이 있는가? 나는 인생이 힘들 때 도망쳤다고 할 것인가? 나는 불편한 것을 피해서 편한 곳으로 도망갔다고 할 것인가? 인생에서 좋은 곳만 골라서 다녔다고 할 것인가?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살라고 가르칠 것인가? 내가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 자녀들에게 이야기 해줄 말도 없게 된다.
우리는 고백할 내용이 있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 우리 인생이 핑계와 변명으로만 채워지면 안된다. 승리의 이야기로, 어려움을 극복한 이야기로, 하나님과 함께 한 경험으로 할 말이 있는 인생이 되길 축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