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사람’이 아담과 결부되는 집단적 이미지인 것처럼, 새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과 결부되는 집단적 이미지이다. 야만인과 스구디아인도 언급하는 골로새서 3:10-11의 ‘새사람’ 평행본문은 이 이미지의 집단적 본성을 보여 준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구별하는 것은 사람의 인성 내부에 들어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서 의미하는 것은 새로운 본성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와의 연결과 그 공동체의 특성이다. 신자들은 사람들의 연합인 이 공동체에 속해 있고 이 공동체를 나타낸다. 우리의 생활은 다른 사람들에 대해 민감성과 공감을 가져야 한다. 관계는 다른 사람들을 인식하는 능력 위에 세워진다. 섬김은 다른 사람들의 필요와 연결되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다른 사람들을 향하는 방향성이 있다. 그것은 우리의 관심이 우리에게가 아니라 그들에게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 종류의 상호 인식은 사람들을 함께 묶고 그들을 하나의 몸으로 만든다. 한 사람이 자신을 보살펴야 하는 것보다는 사람들이 서로를 보살피게 하는 것이 더 좋다.
대럴 L. 복 – 에베소서
반드시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가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을 파악하는 첫 단계에 있다는 점이다. 이 책의 후반부에서 당신은 의미를 발견하고 적용하는 일로 나아갈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의 첫 다섯 장이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주의 깊게 읽는 단계를 지나친 채 피상적으로 읽은 후 곧바로 적용으로 나아간다면, 본문의 의미를 놓칠 수밖에 없고 그 결과 성경은 따분해질 것이다. 본문 속에서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어떤 새로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본문을 주의 깊게 읽고 지속적으로 관찰한다면, 확신하건데 당신은 본문의 참된 의미에 도달하게 될 확률이 대단히 높으며, 성경은 당신에게 매우 흥미로운 대상이 될 것이다. 본문에서 지금까지는 몰랐던 새로운 것들을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상황 속에서(즉 특정한 지역에 살며 특정한 언어를 말하고 특정한 삶의 방식을 채택한 사람들에게) 자신의 메시지를 전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고대의 역사-문화적 상황을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그때 살았던 사람들’을 무시한 채 곧바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려는 것으로 건너뛸 수 없다.
스토트 듀발 & 대니얼 헤이즈 – 성경해석
편애는 왜곡된 축복입니다. 왜곡된 축복은 더 이상 축복이 아닙니다. 부모의 편애는 사랑을 넘치게 받는 아이와 못 받는 아이 모두에게 축복이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가족을 파괴하고 부모와 자녀의 삶을, 더 나아가 미래 자손의 삶까지 어그러뜨리는 죄악입니다. 화난 감정을 읽어주는 것은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아이의 감정에는 좋은 감정과 나쁜 감정이 없습니다. 행복한 것은 좋은 감정, 화나고 속상한 것은 나쁜 감정이 아닙니다. 따라서 아이가 화낸다고 혼내는 것은 잘못된 훈육 방법입니다. 칭찬은 좋은 말을 아이에게 퍼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제 아이는 뻔한 칭찬과 그냥 하는 칭찬, 진심으로 하는 칭찬을 구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뻔한 칭찬 에는 전혀 기뻐하지 않습니다. 칭찬을 잘하고 싶다면 아이가 한 것을 있는 그대로 말로 표현해 주세요. 그래서 칭찬은 무엇보다 사실대로, 그리고 진심으로 해야 합니다. 과한 칭찬보다는 꾸밈없는 칭찬이 아이에게 훨씬 도움이 됩니다.
황현주 – 크리스천 부모의 아이 마음 알아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