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10:28 이하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예후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중에서 바알을 멸하였으나 이스라엘에게 범죄하게 한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 곧 벧엘과 단에 있는 금송아지를 섬기는 죄에서는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북 이스라엘의 장군 예후는 이스라엘을 우상 숭배의 죄에 빠뜨렸던 아합의 집을 쳤을 뿐 아니라, 그가 섬기던 바알의 목상을 헐었으며, 또 바알의 신당을 변소로 만들었던 장본인입니다.
생각해보면, 쉽지 않은 일들을 정말 거침없이 해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왕이 된 이후, 예후는 온전하지 못했습니다. 바알은 멸하였으나 금송아지 우상은 남겨놓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헐면, 백성들이 자신을 버리고 남쪽 유다로 돌아갈 수도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는 심판할 수 있었지만, 자신의 죄는 남겨놓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예후의 삶이 절반은 성공한 것이었을까요?
'절반의 성공'이란 말이 있습니다. 성공이라 하기에는 부족한 부분이 너무 많고, 실패라 하기에는 그래도 얼마간의 진보가 있었던,그런 애매모호한 상태를 묘사하는 말입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절반의 성공이란 말은 사실 실패를 뜻하는 말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결국, 목표한 것을 다 이루지 못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12년 동안 우리 교회에는 참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보수적인 교단에 속한 교회이면서도 담임 목사의 시무 투표를 합니다. 5년 전 여러분들이 허락하셔서 다시 시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 우리 교회는 장로님들이 5년을 시무하고 1년을 쉰 후에 다시 시무 투표를 합니다. 장로님 6분이 계실 때 정한 것입니다. 다른 교회 같았으면 제가 쫓겨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장로님들이 다 기쁜 마음으로 동의하셨습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장로님들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평생을 누구보다 애쓰고 수고하셨으면서도 그 잘난 감사패 하나 없이 은퇴하신 장로님과 권사님들이 참 고맙습니다. 저도 때가 되면 어느 주일 아침 마지막 설교를 마치고 그렇게 떠나갈 것입니다. 원로 목사도 안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하면 좋은 교회가 될 수 있는가?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가 복음의 감격으로 더욱 충만하고, 또 각자의 금송아지 우상을 하나 하나 버릴 수 있다면, 우리는 점점 주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에 가까워져 갈 것입니다.
세상에는 '절반의 성공'이란 말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은 믿음의 말일 수 없습니다. 죄가 남겨진 인생은 결코 성공한 인생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더 나은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절반의 성공'은 없습니다. 혹 있다면, 오직 '졌잘싸', 졌지만 잘 싸운 우리의 삶을 이기게 하시는 예수님의 은혜가 있을 뿐입니다. 각자에게 있는 금송아지 기득권들을 내려놓고 함께 믿음의 싸움을 싸울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