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장 권오헌 목사) 제12회 서울포럼이 ‘코로나 이후 교회의 회복과 성장을 위한 과제-청년 결혼 출산을 중심으로’라는 제목으로 15일 다산중앙교회(담임 최식 목사)에서 열렸다.
이날 권수경 고신대 석좌교수가 ‘교회의 회복과 성장을 위한 과제 청년, 결혼, 출산’이라는 제목으로 발제했다. 권 교수는 “청년은 몸과 마음의 활기가 가장 넘치므로 그 누구보다 삶을 많이 즐기고 기쁨도 더 누릴 수 있다(전 11:9). 그래서 청년은 무엇보다 말씀으로 자기를 관리해야 하는 시기다(시 110:3; 119:9). 말씀으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면 귀하고 거룩한 일꾼이 된다(딤후 2:22)”고 했다.
이어 “청년기는 결혼 적령기다. 몸과 마음이 충분히 자랐기 때문이다. 한 남자 한 여자가 만나 가정을 이루어 살게 하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청년의 때 남녀는 알맞은 배우자를 찾아 결혼한다. 그리고 자녀를 출산한다”고 했다.
그는 “성경도 청년에 대한 보편적 이해를 그대로 수용한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해서 청년이 가진 보편적 특성을 덜 가지거나 더 가지지는 않는다. 여호수아처럼 청년이 가진 에너지로 주님을 열심히 섬겨야 한다(출 33:11)”며 “따라서 우리 시대 청년의 고통 문제도 청년이 갖는 보편적인 특성을 전제로 성경적 원리와 적용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 시대의 청년은 그런 전통적 보편적 특성에서 상당히 벗어나 있다. 청년이 문제가 되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라고 했다.
권 교수는 “무엇보다 전통적 세계관의 기초를 이루고 있던 성경적 세계관이 자연과학의 발전으로 엄청난 공격을 받고 있다. 진화론은 사람과 동물이 근본적으로 차이가 없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윤회를 바탕으로 한 불교 세계관과 잘 통하며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존엄성을 가진다고 가르치는 성경을 공격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결과적으로 인간의 특별함에 대한 인식이 줄었고 인간 자신에 대한 자부심도 많이 약해졌다”며 “청년들은 어려서부터 새로운 세계관에 노출되어 그 세계관의 주도 아래 자랐다”고 했다.
또한 “인터넷, SNS, 이메일, 문자 등 이런 기술이 우리 삶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다. 우리 시대 청년을 Z세대(Z Generation)라 부르는데 첫 특징이 온라인과 스마트폰을 통한 신기술 사용”이라며 “텔레비전과 유튜브를 많이 보아 비주얼 문화에 익숙하다. 대신 책은 상대적으로 덜 읽고 문해력도 떨어진다. 디지털 문화의 특성상 문화를 소비할 뿐 아니라 생산하는 일도 함께 수행한다”고 했다.
아울러 “청년들은 서로 소통할 때나 자기를 계발, 구현할 때 디지털 문명을 애용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보다 디지털 기기가 매개 역할을 하는 때가 많아졌다. 따라서 전통적인 대인관계의 근본적인 변화를 겪고 있다. 본디 쉽지 않던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더 어려워져 아예 사람을 회피하는 경향마저 생긴다”고 했다.
또 “청년들은 근대성에 대한 반발로 나온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 이는 주류에 억눌려 온 비주류를 인정하려 시도한 결과,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옳다 주장하는 모순을 보인다”며 “잠시 거짓 평화는 가능할 수 있으나 공의가 서지 않고 나중에는 더 큰 투쟁이 벌어지게 된다”고 했다.
특히 “포스트모더니즘은 다양한 특성들이 무질서하게 모여 있고 반이성적 모호함을 기본으로 하기에 실체를 파악하기가 쉽지 않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의 가장 큰 특성 중 하나는 상대주의다. 거대담론 즉 모두에게 적용되는 절대 진리를 거부한다. 근대의 유산인 절대 진리를 믿은 결과 두 번의 세계대전과 인간소외를 경험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든 것을 상대적으로 수용한다. 이런 태도는 삶의 중요한 결정에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그는 “절대 진리 대신 정치적 올바름을 따르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최근 등장한 챗GPT와 잘 맞는다. 이제는 사실 여부가 중요하지 않고 다른 데이터와 일치하는가가 문제다. 더 많은 데이터 즉 다수가 진리다. 이러한 절대성을 거부하는 태도는 절대 진리를 주장하는 종교 일반에 대한 거부로 이어지며 특히 그런 진리를 확정된 형태로 선포하는 기독교에 대해 반감을 보인다”고 했다.
그러면서 “포스트모던 상대주의는 기독교 신앙을 상대화시켜 복음의 절대성을 공격한다”며 “포스트모더니즘의 절대 기준에 대한 거부는 전통적인 권위에 대한 거부로 나타난다. 연장자, 윗사람, 선생, 상급자 등등 사회 질서가 부여한 권위마저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했다.
권 교수는 “그리고 새로운 것들을 선호한다. 전통을 내세우는 이들을 ‘꼰대’라 하여 거부한다. 이런 태도가 교육, 직장생활, 사회생활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교회에서 드리는 전통적 예배나 심지어 교회 자체의 이미지에도 거부감을 나타낸다. 이들의 눈에는 결혼이나 출산도 전통 방식일 따름”이라고 했다.
또 “절대 기준이 없으니 자신이 중심일 수밖에 없다(삿 17:6). 자신의 열망에 기반을 둔 경험과 재미를 추구한다. 자신만의 개성을 격조 있게 추구하는 우아한 삶을 꿈꾼다. 나를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고 나를 표현할 수 있고 내 가슴을 뛰게 하는 어떤 것”이라며 “자신의 지향과 맞는 사람들과 사회적 자본을 이루고 싶어 한다. 자기 소리를 잘 내지만 이익이 되지 않는 일에는 연대하기를 꺼린다. 자기가 중심이면서 또 타인을 과도하게 의식한다”고 했다.
그래서 “사회적 압력을 많이 받고 스트레스도 많다. 비교의 기준은 주로 돈과 공부다. 개인주의 성향은 어쩌면 그런 압력에서 자기를 지키려는 방어기제일 가능성이 크다. 개인주의와 경쟁의식이 한데 어울려 사람 만나는 일을 어렵게 만든다”며 “책임감이 약하다. 자아를 추구하되 절대성과 거리가 먼 상대적 기준을 적용하기 때문이다. 포스트모던 자아는 환경적 요소의 집합체로서 영속적 존재가 아니므로 책임도 지지 않는다. 이 점에서 인간의 존엄성을 떨어뜨리는 자연과학 및 첨단기술의 영향이 크다”고 했다.
반대로 “자신과 마음이 맞는 곳에서는 시민정신이나 사회적 책임이 높게 나타나기도 한다. 아이돌 공연을 본 다음 함께 주변을 청소하는 식이다. 일관성 있는 인생을 발견하기 어려우므로 미래보다 현재에 집착하는 특성을 보인다”며 “미래 전망이 좋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안정성과 실용성을 추구하며 불확실한 미래를 현재의 확실한 물질로 보상받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 카푸어족이 대표적이다. 책임을 외면하는 포스트모던 자아 개념은 사람에게 영혼이 있어서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는 가르침과 충돌한다. 당연히 결혼을 기피하는 원인도 된다”고 했다.
또 “청년들은 종교에 무관심하다. 기독교뿐 아니라 종교 자체에 관심이 없다. 2021년 한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80%가 종교에 관심이 없다고 했다. 60대의 60%가 종교에 관심이 없다는데 비하면 현저히 낮은 수치”라며 “자신의 행복 여부에 종교가 전혀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 그런데 파고 들어가 보면 전통적 종교에 대한 무관심일 뿐 그들의 삶에서 영적 요소는 강하게 드러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종교의 씨는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오늘의 청년답게 다른 방식으로 드러낼 뿐이다. 청년들이 모이는 곳에는 반드시 타로와 사주 부스가 있다. 포스트모던 청년은 자신의 소소한 삶을 의식(儀式, ritual)처럼 행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일상 가운데 일부를 마치 종교적 제의를 수행하듯 즐긴다. 빈 공간에서 향을 피우고 휴식을 즐긴다. 기성세대와 다른 형태로 표현되는 이런 종교성을 바로 파악한다면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효과적인 방법도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아울러 “청년들은 외로움을 많이 느낀다. 청년들은 일상에서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 자기중심적 사고의 결과 자기와 맞는 친구를 쉽게 만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높은 자존감 때문에 자기보다 수준이 같거나 높은 사람을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런 사람이 많은 커뮤니티에 사람이 몰린다. 기독인 청년들의 경우 담임목사의 전통적 설교보다 진정성 있는 교제에 더 관심이 많다”고 했다.
권 교수는 “청년의 부재는 침체한 한국교회의 한 특성이다. 교회는 교회 내에서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전에 청년들이 교회를 떠난 이유가 무엇인지 그것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결혼하라, 아이를 낳으라 권하기 전에 그 권고를 들을 대상이 있어야 할 것 아닌가”라고 했다.
권 교수는 “교회의 청년도 여느 청년이 겪는 아픔에서 자유롭지 못 하다. 그런데 왜 유독 교회에만 청년이 부족한가. 교회가 청년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보듬어 주지 못 하고 해결해주지 못 했기 때문은 아닌가. 그와 더불어 그들이 겪고 있는 사상적 환경적 요소에 대해서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 했다”고 했다.
그래서 “청년들을 사로잡고 있는 시대사상을 분석하여 그 장단점을 드러내고 청년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 주지도 못 했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상황에 대해 성경적 대안도 제시해 주지 못 했다”며 “교회는 다음 세대의 삶을 바꾸어 놓는 변화에 대해 부정적 태도로 일관해 왔다. 교회로 또 성도의 가정으로 밀려 들어오는 포스트모더니즘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했고 따라서 분석, 비판, 방어, 퇴치하지도 못 했다”고 했다.
특히 “시대사상을 극복하는 성숙함을 길러주지 못 하고 그런 사상으로 무장된 거룩한 공동체를 이루어주지도 못 했다. 오히려 청년들에게 몸에 맞지 않는 옷을 강요했으며 결과적으로 적지 않은 청년을 교회 밖으로 몰아냈다”고 했다.
권 교수는 “한국교회는 청년의 고통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구조와 밀접하게 이어져 있다는 점을 파악하지 못 했다. 개인의 고통을 구제하는 것이 만약 교회의 사명이라면 구조 역시 무시할 수 없다. 청년의 고통을 복음으로 분석해 본다면 반드시 인간의 부패라는 대전제 위에서 해야 하고 그 부패가 가져온 사회적 부조리 구조를 지적할 수 있어야 한다. 구조 개혁이 구원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그대로 두면 구조 자체가 많은 이를 고통에 빠뜨리기에 개선을 시도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구조의 왜곡이 일으키는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하는 일은 너무나 많은 연구와 노력이 필요한 일”이라고 했다.
그러나 “돈이 없어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사랑이다. 한국교회는 청년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위로했는가. 복음은 영원한 것으로서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복음을 담는 그릇과 전하는 방식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다. 기성세대가 책으로 된 성경을 읽었다고 청년들에게 책을 가져오라 강요하기는 어렵다. 기성세대의 예배 방식 역시 그 예배를 이루는 문화적 요소에서 청년들의 호감을 사지 못 한 부분이 없었는지 돌아보아야 한다”고 했다.
특히 “결혼을 말하고 출산을 논하기 전에 청년을 다시 일으켜야 한다. 떠나는 청년을 붙잡아야 하고 나간 청년을 다시 교회로 불러들여야 한다. 교회의 다음 세대가 실종된 상황에서 남은 청년들에게 얼른 결혼해 아이를 많이 낳으라 권하는 것은 해결책이 아니다. 성경적이지도 않지만 현실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결혼 등 창세기의 문화명령보다 주님의 지상명령에 더 비중을 두어야 한다”고 했다.
권 교수는 “그런 다음에야 문화명령도 제대로 순종할 수 있다. 청년 문제의 핵심이 청년의 부재임은 모두가 인정한다. 결혼과 출산은 그 다음이다. 그렇다면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 바울이 본을 보인 방법 곧 낮아지는 방법을 적용하지 않을 수 없다. 바울이 복음을 전할 때 가졌던 낮아지는 태도다. 복음의 순수성을 견지하면서 그 복음을 수용할 사람의 형편을 바로 이해하자는 것(고전 9장 19-23)”이라고 했다.
그는 “청년을 얻기 위해서는 청년처럼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먼저 우리 시대의 독특한 청년을 이해해야 한다. 청년 부재의 시대, 청년이 넘치는 교회도 있다. 그들의 특성을 이해하고 포용하는 노력이 거기 있다. 경제적 어려움을 함께 나누는 노력도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말씀 훈련을 통해 시대사상과 환경을 이기는 노력을 기울이고 그래서 주님의 지상명령에 더 공을 들이기 때문이다. 진정한 교회 회복은 영적 출산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육적 결혼 출산은 그 과정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