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Photo : ) 이장렬 교수(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 신약학)

이장렬 교수는 서울대학교(B.M.), 서던침례신학대학원(The South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 영국 에딘버러대학교(University of Edinburgh)에서 수학했으며, 2010년부터 캔자스시티에 소재한 미드웨스턴침례신학대학원(Midwestern Baptist Theological Seminary)에서 신약학 교수로 목회자와 신학자를 양성하는 사역에 힘쓰고 있다. 복음서와 신약기독론 등 성서학 분야의 연구를 이어가는 한편, 목회자와 성도들을 위한 말씀 묵상 안내서를 저술하는 데 열정을 갖고 있다.

[2023년 4월 8일 토요일] 기다림의 시간

읽을 본문: 마태복음 27장 62-66절

27:62 그 이튿날은 준비일 다음 날[*주: 여기서 “준비일 다음 날”은 유대인의 안식일, 즉 토요일을 가리킴]이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함께 빌라도에게 모여 이르되
27:63 주여 저 속이던 자가 살아 있을 때에 말하되 내가 사흘 후에 다시 살아나리라 한 것을 우리가 기억하노니
27:64 그러므로 명령하여 그 무덤을 사흘까지 굳게 지키게 하소서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도둑질하여 가고 백성에게 말하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하면 후의 속임이 전보다 더 클까 하나이다 하니
27:65 빌라도가 이르되 너희에게 경비병이 있으니 가서 힘대로 굳게 지키라 하거늘
27:66 그들이 경비병과 함께 가서 돌을 인봉하고 무덤을 굳게 지키니라

해설과 묵상

1. 십자가상의 외침
신약성경의 책들은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에 입각해서 쓰였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신약성경 책 중 단 한 권도 저술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태복음의 본문을 이해할 때도 역시 주님의 부활에 입각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그것이 저자인 마태의 의도와 신학에 부합되는 해석 방식입니다. 그 말은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한 마태의 기록 역시 주님의 부활에 입각해서 읽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어제 읽었던 마태복음27:42-54에 관해 조금 더 생각해 보기 원합니다. 이 본문은 예수님이 임종 전에 하신 말씀과 함께, 자연계의 반응 그리고 십자가형을 집행하던 군인들과 군중의 반응을 매우 생생하게 기록합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죽어 가시며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외칩니다(마27:46). 우리는 마치 한탄 내지는 절규처럼 들리는 예수님의 이 외침 역시 그의 부활에서 입각해서 이해해야 합니다. 왜냐면 마태복음의 결론은 27장(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아니라 28장(예수님의 부활과 대위임령)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상에서의 예수님의 이 외침은 시편22:1의 인용입니다. 주님은 이 시편을 자신에게 적용하십니다. 그런데 의인의 고난을 주제로 하는 이 시편(시편 22)은 고통 가운데 있는 의인의 절규(1-18절)로 시작하지만, 그것으로 마치지는 않습니다. 이 격정적인 시편은 구원을 위한 기도와 탄원(19-21절)을 거쳐 하나님의 개입으로 말미암은 승리에의 확신과 찬양으로 종결됩니다(23–31절). 특히 잘 알려진 27-28절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시편 기자의 이같은 확신에 찬 선포는 마태복음의 결론부인 28장과 맥을 같이 합니다. 마태복음의 결론부(마28장)와 시편22편의 결론부(시22:27-31) 모두, 의인의 절규나 한탄이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에 대한 선포를 들려줍니다! 그렇게 놓고 볼 때,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십자가상의 외침(마27:46)은 소망의 상실을 인정하는 체념 섞인 넋두리가 결코 아닙니다. 이 외침은 죽음 앞에서 부활을 내다보는 믿음의 선언이며, 하나님 아버지를 향한 예수님의 신뢰의 고백입니다!

2. 대제사장들의 헛된 노력
신약의 네 복음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된 다음 날, 즉 유대인의 안식일(토요일)에 있었던 일에 대해 침묵합니다. 유일한 예외가 바로 오늘 읽은 본문인 마태복음 27장 62-66절입니다. 이 본문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 다음 날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취한 행동에 주목합니다. 이들은 나사렛 예수가 자신의 부활에 대해 예언했음을 기억하고 예수의 제자들이 그의 시신을 훔쳐 간 후 자신들의 스승이 부활했다고 주장하지 못 하도록 조치를 취합니다. 이를 위해 로마 총독 빌라도의 허락을 받아 예수의 무덤 주변에 경비병을 배치하여 삼엄한 감시를 시행하고, 돌을 인봉하여 그 누구도 나사렛 예수의 묘실에 접근치 못하게 조치합니다.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이 유대인의 큰 명절 기간 중 안식일 날에 이같이 행한 것은 그들의 이중성을 단면적으로 드러냅니다. 이들은 안식일의 문자적 준수를 강조했지만 막상 자신들은 그것을 지키지 않고 있습니다. 나아가 예수의 무덤에 대한 이같은 경비 및 인봉 조치는 예루살렘에 있던 유대교 지도자들이 얼마만큼 예수와 그의 추종자들에 대해 신경 쓰고 있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줍니다. 그들은 다음 날 새벽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상치 못 한 채 헛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헛되이 지키네 예수 내 구주
헛되이 봉하네 예수 내 주
원수를 다 이기고 무덤에서 살아나셨네(새찬송가 160장)

3.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
고난주간의 토요일은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되신 다음 날이며 그가 부활하시기 전날입니다. 이 기다림의 시간은 우리로 하여금 잠시 멈추지 않는다면 놓치기 쉬운 것들에 대해 돌아보아 묵상할 수 있는 기회를 선사합니다. 기다림의 날인 고난주간의 토요일은 무엇보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가 지금 어떤 상황에 놓였을지에 대해 상기시켜 줍니다. 주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우리는 아직 죄 가운데, 어둠 가운데, 그리고 깊은 절망과 허무감 가운데 머물러 있을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고전 15:17-19).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이렇게 선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그렇습니다!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그가 다시 사셨고 승천하사 하나님 아버지 우편 보좌에서 우주만물을 통치하시며 또 그의 영을 보내사 우리와 함께 해 주십니다! 우리는 이 놀라운 사실을 너무나 당연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복된 실체에 너무 익숙해져 버려 그만 우리의 감격이 시들해져 버렸습니다. 그러나 오늘,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이 토요일에 잠시만 멈추어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예수님이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지금 우리 삶이 얼마나 암울하고 소망 없고 허무하고 비참했을지를 말입니다.

오늘 이 토요일은 뜻 깊은 기다림의 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아침을 기다리는 시간이고 또 장차 있을 성도의 부활을 기다리는 시간이기도 합니다(고전 15장; 빌3:20-4:1). 기다림의 날인 이 토요일에 주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합시다. 우리를 대신하여 예수님께서 죽으셨음을 생생하게 기억합시다. 우리가 주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 역시 기억합시다(갈2:20). 또한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며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하게 될 그 영광스러운 날을 믿음으로 바라봅시다. 우리가 이 땅에 사는 동안 매일마다 예수님께 겸손히 의존하고 주님의 부활의 능력을 힘입어 살아갑시다.

우리는 주님께서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어둠 가운데서 소망 없이 허무하게 죽어갈 수 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사흘째 되는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기에 이 토요일은 불안과 공포와 좌절의 시간이 아니라 기다림과 신뢰와 소망의 시간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ex nihilo)하시고 출애굽의 기적을 베푸신 하나님을 믿기에, ‘유월절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그의 부활을 믿기에, 주의 영이 지금 우리 가운데 함께 하심을 믿기에,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기에, 지금 우리 개인과 공동체의 삶이 얼마나 무너져 있는지와 상관없이, 우리는 여전히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금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주님은 재활복구의 최고 전문가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실패한 자, 무너진 자, 낙담하고 좌절한 자를 다시 일으켜 세우실 수 있습니다. 왜냐면 그가 “부활이요 생명”이시기 때문입니다(요11:25)!

이제 2023년 고난주간 묵상 가이드를 마칩니다. 내일 주일에는 섬기시는 교회 공동체와 함께 예배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축하하시기 바랍니다. 지금 여러 요인으로 인해 개인적으로 혹은 공동체적으로 매우 어려울 수 있으나 부활하신 주님으로 인해 기쁨의 본질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힘겨운 상황 그 한복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이전과 전혀 다르게 바라볼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 15:57-58).

한 줄 기도: 기다림의 날인 이 토요일에, 제가 예수님과 연합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받아들이고, 이제 부활이요 생명이신 주님께 겸손히 의존하여 살아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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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고난주간 묵상 가이드는 이충재 박사와 공저한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요단출판사, 2021)에서 필자가 저술한 내용 일부를 발췌하여 개정 및 증보했다. 출판사 및 공저자의 허락 하에 이 책의 내용 일부를 재사용함을 밝힌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64032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