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에서 가나안에 이르는 믿음의 순례 길에는 반드시 건너야 할 두 개의 강이 있습니다. 첫째는 홍해란 강(바다)입니다, 또한 둘째는 요단강입니다. 홍해는 자기 힘으로 건널 수 없고, 오직 은혜의 기적으로 건널 수 있는 강(바다)입니다. 홍해를 건넌다는 것은 자력이 아니라 은혜의 타력, 즉 하나님의 기적과 사랑을 통해 구원 얻음을 의미합니다. 누구도 스스로의 힘으로 건널 수 없는 죄와 사망의 바다를, 그 사이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십자가란 길을 통해서 건널 수 있는 것, 이것이 구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영적 순례의 끝은 아닙니다. 가나안이란 목적지에 이르려고 하면 또 하나의 강을 건너야 합니다. 그것은 요단강입니다.
이 강은 홍해처럼 기적으로 건너는 강이 아니라, 언약궤를 상징하는 말씀을 앞세움으로 건너는 강입니다. 또한 언약궤를 상징하는 십계명을 앞세우며 건넌다는 의미는 말씀에 대한 순종의 태도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말씀에 순종함으로 하나님의 다스림을 구하는 태도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패스포트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마음을 가질 때 비로소 그 땅을 정복하고 그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를 이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홍해를 건넜다고 해도 요단강을 건너지 않으면 아직은 광야에 있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해도 여전히 자아의 지배를 받고 살아간다면,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되 더 풍성히 얻는 가나안을 정복하는 삶을 경험하려면 말씀의 다스림에 순복하는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참으로 온유한 사람이었지만,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므리바에서 물 사건 때문입니다. 거기서 모세는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신의 의지를 따라 행동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자기 뜻대로 바위를 지팡이로 내리쳤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는데, 이것은 모세의 한 번의 실수를 엄벌하는 의미가 아닌 것입니다, 가나안 땅은 오직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에게만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위해 요단강을 건넜던 것처럼, 육에 속한 그리스도인도 영에 속한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영적 요단강을 건너야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이는 자기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다는 의미요,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홍해가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죽으신 십자가라면, 요단강은 우리의 자아가 죽어야 할 자기 십자가입니다. 홍해란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것에서 더 나아가 요단강이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제자로 사는 겁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영적 요단강을 건너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