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28년을 살면서 아내를 알 듯하며 알지 못하는 부분이 많다. 사례비를 천 불 받을 때도, 이천 불 받을 때도 어떤 불평 없이 살림을 이끌어 주었다. 한 번도 내 앞에서 돈 걱정 안 했다. 거기다가 교회가 이전하고 건축할 때면 아이들의 돌 반지뿐만 아니라 돈 될 수 있는 것은 다 팔아 헌금했다. 이렇게 헌신했건만, 이상하게도 과거 이야기만 나오면 화부터 낸다.
오늘 저녁에도 식사 후 딸아이가 가족과 함께 연말에 어디를 가자고 한다. 그러면서 텍사스에 살면서 텍사스 인근도 가족과 함께 가본 곳이 없다고 한다. 그러자 아내가 일 만드는 남편, 가끔 쉬는 월요일에는 목회자 모임 나가는 남편...과거를 소환하여 쏟아붓는다. 오늘은 딸아이와 연합하여 쏟아 부으니 항변할 수 없는 분위기이다. 여기서 한마디 잘못하면 세계대전이 일어날 판이다. 상황 판단을 잘 하는 감각만 증폭된 것 같다.
사실 아이들이 어릴 때 가족과 함께 여행 한번 못했다. 가끔 가더라도 교회 차원에서 성도님들과 함께 갔기에 가서도 가족들은 항상 차선이었다. 이런 상처 때문인지 아이들이 장성한 후에도 성도들과의 모임이라면 내용도 들어보지도 않고 거절한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국제시장이라는 영화에서 주인공이 내뱉었던 "아버지... 지도 힘들었어요"라는 대사 한마디가 떠오른다. 내세울 것 없는 인생이지만 나 또한 앞만 보고 달리다 보니 힘들었고 외로웠다.
문득, 존 파이퍼 목사님이 전립선암과 싸우며 쓴 "don't waste cancer"라는 글을 다시 되짚어 본다. 암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 기회라면서 암을 허비하지 않는 비결 중 하나는 암이 주는 고난의 의미를 알지 못한다면 암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또 암에 걸려있음에도 반복되는 죄는 암을 낭비하는 것이라고 한다. 암은 아니어도, 나의 과거에서 오는 상처들을 낭비하지 말아야겠다. 하나님의 말씀처럼 들려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