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삶에 고난은 힘든 것입니다. 그래서 고난을 이겨내려면 강력한 인내력과 강인함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고난을 쉽게 이기는 방법이 있습니다. 고난을 이해하는 것입니다. 야곱이 요셉을 만나고 고센 땅에 살다 죽었습니다. 요셉 형들은 자기들이 지은 죄 때문에 요셉을 두려워합니다. 이때 요셉은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는가?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고 했지만, 하나님이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위함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셉은 자신의 고난이 형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고난도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의 일부임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떤 고난과 역경이라도 알면 어렵지 않고 쉽고, 그 고난이 상처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고난을 억지로 해석하기에 문제가 되는 겁니다. 그러다 정죄하거나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성경은 자신의 연약함의 책임을 하나님께 돌리라 말씀합니다. 인간의 연약함도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가 되기 때문입니다. 쉽게 이해가 되지는 않지만, 실상은 그렇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가라 하자 변명과 핑계를 대며 못 간다고 버팁니다, "나는 말 더듬고 입이 뻣뻣해서 말도 못한다고 합니다. 이때 하나님은 누가 입을 지었냐? 누가 말 못하는 자 못 듣는 자 맹인이 되게 하였느냐? 나 여호와가 아니냐?"하십니다,
우리가 이해를 해야 하는 것은 우리의 연약함을 네가 책임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책임을 돌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어디에 사용하여 쓰시는지를 보라는 것입니다. 닉 부이치치는 사지가 없는 상태로 태어나 많은 기도를 했지만, 다리가 생기는 기적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닉은 장애에 묶이지 않는 인생을 살고자 했습니다. 사지가 멀쩡해도 수영 못하는 사람이 많은데. 그는 물속에서는 물개와 같습니다. 결혼을 해서 4자녀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600만 명 이상에게 복음을 증거 하는 종으로 쓰임을 받고 있습니다, 닉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놀라운 계획의 일부임에 틀림없습니다.
바울도 육체의 가시로 심한 고생을 했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이 복음 증거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 했습니다. 그래 3번이나 크게 기도했지만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연약한 상태 그대로 있을 때 주님의 능력이 임했습니다. 약했기에 주님을 더 의지했던 까닭에, 더 강한 능력의 통로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약함을 자랑했습니다. 이렇듯이 깊은 진리는 해석되지 않는 곳에 묻혀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과 장애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매달리기보다는 주님이 어떻게 쓰실 지를 기대하며 주님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의 고난이 쓰심을 알기에 더 이상 낙심하지 않고 맡겨야 합니다, 그게 우리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