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직후 1957년에 중학교 2학년이었던 한 남학생이 축구 경기에서 골키퍼를 하다가 공에 눈을 맞아 실명하게 됩니다.
사고 나기 얼마 전 이 소년의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이 소식을 들은 어머니도 갑자기 숨졌습니다. 친누나는 어린 동생들을 살리기 위해 일하다 과로로 숨졌습니다. 어린 세 남매는 뿔뿔이 흩어졌고, 이 소년은 맹인학교에 보내졌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마도 시각장애인들이 많이 하던 안마사가 될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희망을 놓지 않고 대학에 가기 위해 점자를 공부합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한 그는 지금의 아내를 만나 한국 장애인 최초로 미국 유학을 가면서 피츠버그대학에서 교육학 박사 학위까지 마칩니다.
그 후 2001년부터 2009년까지 조지 W. 부시 정부의 미국 국무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분과위원장(차관보 해당 보직급)을 역임합니다. 이 소년이 바로 한인 사회에서도 유명한 시각장애인 강영우 박사입니다.
2011년 췌장암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지만, 그는 시력을 잃으며 마음의 한 가지 소원이 바로 빛을 보는 것이었습니다. 여러 번의 수술을 거치면서 빛을 볼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번번이 실패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그는 신앙의 힘으로 이 모든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더 깊이 만나게 됩니다. 그리고 고백합니다. 눈에 보이는 빛은 보지 못했지만, 내 영혼 안에 그분이 빛이 되어 들어오셨다고 말입니다. 그래서 그의 삶을 모티브로 '빛은 내 가슴에'라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했었습니다.
펄벅 여사는 강영우 박사를 이렇게 묘사합니다. "세상을 어둡다고 불평하지 않고 스스로 하나의 촛불이 되어 세상을 밝힌 분"이라고 말입니다. 시력을 잃은 후 평생 빛을 보기만을 간절히 기다렸던 그는 빛을 눈이 아닌 영혼에 담아내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그의 가슴에서 촛불처럼 타올라 이웃과 나라를 비추는 빛이 되었습니다.
대림절 마지막 주간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평화의 왕이신 예수님을 간절히 기다립니다. 우리는 그분을 눈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영혼 안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두운 우리 영혼을 밝히셨고, 죄로 물든 우리 영혼을 빛으로 정결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다음 주일이면 성탄절입니다.
여러분은 빛이신 그분을 어디에 모시겠습니까? 바로 저와 여러분 영혼에 그분을 모시고 가족과 이웃에게 따뜻한 한 줄기 빛이 되시는 성탄절이 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