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좋아하는 찬양 중에 '요게벳의 노래'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작은 갈대 상자 / 물이 새지 않도록 / 역청과 나무 진을 칠하네 / 어떤 맘이었을까 / 그녀의 두 눈엔 / 눈물이 흐르고 흘러... 곡의 가사가 좋기도 하지만 특히, 주일학교를 생각하면서 이 찬양을 들으면 늘 눈물이 났습니다. 작은 갈대 상자를 만들던 요게벳의 간절함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노예였던 엄마가 노예로 태어난 자기 아기를 살리기 위해, 그 아기를 갈대 상자에 담아 나일 강물에 띄어 보내려고 했을 때, 그 엄마의 마음은 얼마나 슬펐을까요? 물이 새지 않도록 그 상자에 역청을 바르고, 또 나무 진을 바르면서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혹여 물이 새지 않을까, 바르고 바르고 또 바르지 않았을까요?
요게벳의 간절한 마음을 묵상하는데, 문득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이 이렇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갈대 상자에 물이 새지 않도록 역청과 나무 진을 꼼꼼히 칠했던 요게벳의 간절함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내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갈대 상자가 물이 새서는 안되는 것입니다. 물이 새는 갈대 상자는 가라 앉을 수 밖에 없고, 그러면 아기 모세를 구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자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 했던 것입니다. 죄 없는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물이 새는 구멍 난 갈대 상자를 당신의 피로 메꾸고 또 메꾸셨던 것입니다. 물이 새지 않도록 말입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는 세상에 보내진 구원의 방주'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우리들이 경험하고 있는 이 시대의 교회들이 정말 세상을 구원할 만한 방주로 보이십니까? 사람들의 싸움이 끊이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음란한 사람들이 모이는 이 시대 교회들이 정말 세상을 구원할 방주처럼 보이십니까? 예, 그렇습니다. 그런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 시대의 교회들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남겨진 구원의 역사를 써내려 가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가 함께 힘써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회복해야 할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이겠습니까?
역청과 나무 진을 바르는 교회입니다. 갈대 상자에 역청과 나무 진을 바르 듯,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우리 각 사람의 마음과 가정과 교회의 영역에 바르고 또 바르는 것입니다. 죄와 싸우는 교회가 되고, 그래서 그리스도의 신부 된 순결한 교회로 회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교회가 될 수 있다면, 하나님은 우리 교회를 통해서 세상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의 방주로 사용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런 마음을 함께 품을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교회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인 줄로 믿습니다.
여러분들을 사랑합니다. 장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