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CCC 창설자로서 '민족복음화운동'을 기치로 한국교회 성장과 세계선교 확장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故 김준곤 목사의 업적을 회고하는 선양 학술심포지엄이 CCC와 세계성시화운동본부 주최, 신안군 협력으로 29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세계성시화운동본부 김철영 사무총장의 사회로 진행된 심포지엄에서 인사말을 전한 박성민 목사(CCC 대표)는 "심포지엄을 개최할 수 있도록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며 "세계적인 대학생운동가이자 민족복음화와 세계복음화운동의 지도자인 김 목사님의 한국교회와 우리 민족 사랑, 인류애를 더욱 선양하고 구현해가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후 김진표 국회의장, 김상복 목사(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전용태 장로(세계성시화운동본부 대표회장), 두상달 장로(대한민국국가조찬기도회 명예회장), 김영진 장로(전 농림부 장관)가 격려사를, 류영모 목사(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서삼석 국회의원(민주당 신안), 이용선 의원(민주당), 박우량 신안군수, 조용호 회장(CCC 전국나사렛형제들)이 축사했다.
1925년 전라남도 신안군 지도읍 봉리에서 출생한 김준곤 목사는 광주숭일중고등학교 교장을 역임하고 유학길에 올랐다가 풀러신학교에서 CCC 창설자 빌 브라이트 박사를 만나 귀국 후 1958년 한국대학생선교회(CCC)를 창설했다.
'오늘의 학원 복음화는 내일의 세계복음화'라는 슬로건으로 대학생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을 전했고, 1965년 국회조찬기도회, 1966년 국가조찬기도회를 비롯해 1968년 나사렛형제들을 창단하고, 1969년 전군신자화운동, 1971년 민족복음화운동을 선언한 데 이어 1974년 민족복음화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던 1974년 엑스플로 74 대회를 개최했다.
10만 선교사 헌신을 서약한 '80세계복음화대성회 개최, 1981년 한국창조과학회 창설, 1990년 2000마닐라대회 개최, 1995년 전 세계 181개국 4500명 지도자들이 세계선교전략을 논의한 GCOWE 대회 개최,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조직, CCC 북한젖염소보내기운동 등을 이끌었다.
1971년 민족복음화운동 선언 후 20년 만에 4배 이상 성장
'유성 김준곤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과 민족목회사상'을 발제한 김성영 박사(한국복음주의신학회 전 회장, 전 성결대 총장)는 유성의 민족복음화운동이 끼친 영향에 대해 "대사회적인 관점에서 예수의 소문을 세상에 널리 전파했다"며 "실제적으로는 1971년 민족복음화운동 선언 이후 불과 20년 만에 기독교 신자가 4배 이상 폭발적으로 증가했다"고 했다.
김 박사는 "교회의 부흥과 연합운동에 기폭제가 됐다. 다양한 민족복음화운동을 전개할 때마다 언제나 대전재로 개교회가 적극 참여하는 연합운동이 돼야 한다고 했다"며 "또 한 가지, 한국교회에 세계선교의 중요성을 더욱 고취시켜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선교의 지상명령을 수행토록 했다"고 했다.
그는 김 목사의 민족복음화운동의 특징으로 ▲한 민족의 완전복음화를 지향한 운동 ▲한 민족의 성도화 모델을 추구한 운동 ▲세계복음화를 위한 발전적·병행적 종말운동 ▲개인구원과 사회구원을 병행한 입체적 구원운동 ▲민족 변혁을 위한 혁명운동이었다고 정의했다.
▲유성 김준곤 목사의 업적을 회고하는 선양 학술심포지엄이 29일 오후 3시 서울시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렸다. ⓒ송경호 기자 |
그는 특히 "그의 민족복음화운동은 민족을 구원해 '민족을 변혁하기 위한 영적 혁명' 운동이었다"며 "유성이 추구한 혁명은 세속적인 혁명이 아닌 영적인 '예수 혁명'이었다. 여기에 파생된 표현이 '영적 혁명', '민족 예수 혁명', '세계선교 혁명'"이라고 했다.
김 목사는 발제를 마치며 '준곤이즘(Jonngonism)을 제언했다. 준곤이즘의 5대 운동으로는 △학원복음화운동 △민족복음화운동 △세계복음화운동 △성시화운동 △남북통일운동을, 3대 사상으로 △완전복음화 사상 △사회변혁 사상 △영적혁명 사상을 꼽았으며, 5대 실천과제로 절대신앙, 절대헌신, 절대훈련, 절대행동, 절대사랑을 제언했다.
그러면서 "유성이 민족복음화운동을 통해 우리에게 끼친 그의 신앙사상과 복음을 위한 실천적 삶을 계승함으로써, 교회가 새롭게 부흥하고 갱신하며 아울러 우리게 맡겨진 사명의 멍에를 더욱 든든히 매야 한다"고 했다.
박정희에 당당히 예수 전해... '혁명의 개념을 혁명하라' 도전
김철해 전 횃불트리니티신학대학원대학교 교수(신약학)는 "김준곤의 모든 사역은 오로지 믿음으로 민족복음화운동에 모든 힘을 기울였다. 학생들을 순모임이란 살아 있는 유기체 같은 제자화의 조직으로 양육했고, 민족복음화의 꿈을 안고 농어촌 5만 9천 자연부락 사랑방 구석구석을 복음으로 불태웠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자연스럽게 이들을 통해 대전 1만 명 합숙 훈련이 횃불이 돼, 준비과정과 경험을 거쳐 하나님의 방법으로 엑스플로 74의 대폭발이 여의도광장에서 터지게 됐다. 이 폭발은 군사혁명 정권의 독재 아래 있던 국민들에게 아주 선한 의미로의 탈출구가 돼, 복음전파의 불이 붙고 교회마다 큰 부흥을 경험해 한국교회는 최대 부흥기를 맞았다"고 전했다.
그는 "김준곤은 민족복음화를 단순히 교회 부흥의 수단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가 믿고 꿈 꾼 것은 '전 복음(Whole Gospel)'이었다"며 "어떤 상황에서든지 복음이 온 민족에게 전해지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뤄지며, 가난한 나라에도 경제는 물론 모든 분야에서 일등 국가가 되는 신명기 28장의 하나님의 축복을 포함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된다"고 했다.
▲국가조찬기도회에서 설교하는 김준곤 목사(한국CCC 설립자). ⓒCCC 제공 |
그는 "한국 현대사는 그와 민족복음화운동을 말하지 않고는 바른 평가가 불가능하다"며 박정희 대통령과의 관계도 이러한 꿈을 박 대통령에게 주문하고 같이 꿈꾸기 위했던 것이라고 했다. 그는 "군사혁명을 일으킨 후 독재정치를 하던 박정희를 하나님은 국가조찬기도회를 통해 예수의 복음을 갖고 당당히 만나는 길을 열어 주셨다. 당당히 예수의 복음과 공의와 정의로 정치하고 공정한 세상을 만드는 꿈을 심어 줬다"고 했다.
그는 "특히 혁명가 박정희에게 '혁명의 개념을 혁명하라'고 도전을 주며 군사혁명이 넘어가지 못할 한계선을 예수의 혁명으로 성령의 혁명으로, 사랑의 혁명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혁명의 사명을 감당할 것을 주문했다"며 "실로 그는 박정희 개인의 목사이며 청와대의 담당목사이며 마치 대한민국의 종교국 비공식 장관정도의 역할로 존재했다"고 전했다.
그는 "민족복음화 운동은 단순히 교회만 머무는 혁명이 아니라, 박 대통령에게 약속하고 주문한 예수 혁명이 이 민족에 일어나고 있으며 자연스럽게 선교한국과 통일한국의 꿈의 실현으로 나가고 있다. 민족복음화운동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캠퍼스, 다민족복음화, 세계복음화 일으킬 전문 지도자 필요
마지막으로 발제한 정경호 박사(총신대학교대학원 선교신학)는 "전환기적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복음을 모르는 새로운 세대가 형성되고 있고, 민족과 세계 역시 같은 시대의 변환을 겪고 있다"며 "새로운 세대의 캠퍼스운동과 다민족복음화운동, 그리고 세계복음화운동을 동시에 일으킬 수 있는 각 분야의 전문적인 지도자가 필요하다"고 과제를 던졌다.
세 발제자에 대한 논찬은 박응규 교수(아신대학교/ACTS, 역사신학), 김요섭 교수(총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역사신학), 임경철 총장(Asia Graduate School of Theology-Pacific 선교학)이 맡았다.
▲심포지엄에는 김준곤 목사에게 훈련받아 사회 각계각층에서 리더십을 발휘하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비롯해 많은 이들이 참석해 김 목사를 회고했다. ⓒ송경호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