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개혁으로 분열 왕국을 화합시킨 히스기야 왕의 통합 리더십>
남유다 왕국의 히스기야 왕은 제 13대로서 기원전 715년에 즉위하여 이스라엘 왕국이 솔로몬 왕 이후 남과 북으로 분열된 후 처음으로 남유다 뿐만 아니라 북이스라엘 동족까지도 유월절 절기 행사에 차별 없이 참여케 하여 통합된 유월절 행사를 거국적으로 치르도록 하였다.
이 당시 북이스라엘 왕국은 앗수르 제국에 의해 멸망당한 상태로서 많은 백성들이 포로로 끌려갔고 제사장이나 레위인도 거의 그 역할을 못하는 종교적 활동이 공동화 된 희망 없는 망국의 상태였다. 그러하기에 백성들은 아무 소망 없이 오랫동안 그들을 영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바알 우상과 각종 미신에 빠져 흑암과 혼돈 가운데 있었다.
그때에 유다 왕국도 중동의 패권국인 앗수르 왕국으로부터 늘 위협을 받는 상황 중에, 히스기야 왕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자신의 신앙 멘토인 이사야 선지자를 가까이 하면서 많은 조언과 지도를 받았다. 히스기야는 하나님께 인정받은 경건한 믿음의 왕이었다. 그는 왕으로 즉위하자 바로 성전 정화로 종교개혁을 실행하였다. 먼저는 우상의 더러운 것들을 걷어 내었고, 성전의 건물을 개보수하며 정결케하고, 성직자들인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다시 불러내어 본연의 제사 행사에 성직을 감당하게 하였다. 이것은 솔로몬 왕 이후 오랫동안 미루어 왔던 유명무실해진 성전의 성결과 제도에 대해 종교 개혁을 단행한 것이었다.
히스기야는 종교개혁을 통해 분열 왕국을 민족적으로나 영적으로 혁혁하게 개혁하는 공을 세웠다. 그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이원화되고 이질화된 분열 왕국을 새롭게 화합시키며 수백 년 동안 중단된 유월절 제사 제도를 부활시켰다. 그러나 이런 제사의 부활에 가장 큰 문제점은 유월절 제사를 집행하는 제사장들의 부족과 동시에 전국에서 모이는 행사를 알리는 데 시간이 부족하였다. 이 당시 제사장들은 국가에서 절기 행사를 행하지 않았기에 제사장 직분에 전임하도록 배려를 하지 않았었다.
"이는 성결하게 한 제사장들이 부족하고 백성도 예루살렘에 모이지 못하였 으므로 그 정한 때에 지킬 수 없었음이라"(대하 30:3)
이 유월절 절기 행사는 닛산월인 1월에 한 주간에 걸쳐 지켜야 했으나, 여러 면에서 준비가 필요하여 한 달을 연기하면서 준비케 하고 남과 북이스라엘 전국에서 이스라엘 민족이 예루살렘에 모이도록 하기 위해 보발꾼들을 전국 곳곳에 보내어 어명으로 전하였다. 그로 인해 남유다에는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가, 나머지 10지파는 북이스라엘에 속하였으므로 남과 북의 각 곳에서 유월절 행사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총집결하였다.
"보발꾼들이 왕과 방백들의 편지를 받아 가지고 왕의 명령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전하니 일렀으되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너희 남은 자 곧 앗수르 왕의 손에서 벗어난 자에게로 돌아오시리라"(대하 30:6)
이러한 전 국가적 종교 행사는 종교개혁의 범주를 뛰어넘어 나라와 민족을 하나로 화합시키기 위한 정책이었다. 사실상 남유다 왕국의 백성들은 북쪽 이스라엘과는 같은 민족이었지만 거의 200여 년을 두 왕국으로 분열된 채 지냈으며, 서로 전쟁도 마다하지 않았었다. 신앙적으로 북이스라엘은 초대 왕 여로보암 때부터 제사에서도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것을 섬기게 할 정도로 오랫동안 타락한 상태였기에 남유다 백성들은 북이스라엘과 그곳 주민들을 이민족으로 여기며 경멸하여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스기야 왕은 역대 유다 왕 중에 처음으로 북이스라엘 의 주민들까지 모두 포용하는 정책을 쓰면서 이들을 유월절이라는 종교 행사로 새로이 화합시키려 했다. 유월절 어린 양의 피로 정결케 하여 모두를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려는 포용과 화합의 민족애와 하나님의 긍휼함을 선포하는 국가의 경축일로 행한 것이었다. 이에 하나님께서도 크게 감동하시고 남과 북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변화시키고 치유의 역사가 나타나게 하시었다.
"여호와께서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을 고치셨더라"(대하 30:20)
전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남과 북의 백성들은 솔로몬 왕 이후 처음으로 분열 없이 7일 동안 유월절과 무교절을 성회로 드리게 되었다. 모두가 기뻐하며 수백 년 동안의 반목과 원수 됨이 사라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어린 양의 피로 새롭게 거듭난 민족 성회로 승화된 것이었다.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이 크게 즐거워하며 칠 일 동안 무교절을 지켰고 레위 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여호와를 칭송하며 큰 소리 나는 악기를 울려 여호와를 찬양하였으며 히스기야는 여호와를 섬기는 일에 능숙한 모든 레위 사람들을 위로하였더라. 이와 같이 절기 7일 동안에 무리가 먹으며 화목제를 드리고 그의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 감사하였더라"(대하30:21~22)
유월절과 무교절이 단순히 종교적 제사로만 그친 것이 아니라, 남과 북의 주민들은 한 민족의 공동체요 신앙의 공동체임을 서로 교통하며 확인하고 즐기는 화합의 통일 마당을 이룬 것이었다. 이스라엘 왕국이 남과 북으로 분열된 가운데서 행한 히스기야 왕의 거국적이며 범민족적인 포용적 히스기야 왕의 리더십은 남과 북을 하나로 묶는 계기가 되었다. 한국교회에도 이같은 리더쉽을 가진 교회 지도자가 필요하다. 스코트랜드의 존 녹스와 보헤미안(체코)의 얀 훅스, 독일의 루터, 프랑스의 존 칼빈, 스위스의 츠빙글리 같은 종교 지도자와 미국의 흑백 인종 차별을 개혁하기 위해 과감히 자신을 던진 젊은 마르틴 루터 킹(Martin Luther King,1929~1968) 목사를 생각해 본다.
새로운 시대가 새로운 민족의 지도자를 부르고 세우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통일 한국에 통합형 믿음의 지도자를 세워 주실 것이며, 교회적으로는 통일의 날에 지난 날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나서 동양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었던 그곳에서 다시 우리 민족의 통일 연합성회가 개최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그러나 보라 내가 이 성을 치료하며 고쳐낫게 하고 평안과 진실이 풍성함을 그들에게 나타낼 것이며 내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울 것이며, 내가 그들을 내게 범한 그 모든 죄악에서 정하게 하며 그들이 내게 범하여 행한 모든 죄악을 사할 것이라. 이 성읍이 세계 열방 앞에서 나의 기쁜 이름이 될 것이며 찬송과 영광이 될 것이요. 그들은 내가 이 백성에게 베푼 모든 복을 들을 것이요, 내가 이 성읍에 베푼 모든 복과 모든 평안으로 말미암아 두려워하며 떨리라"(렘33: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