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스몬 왕조는 다른 왕조와 마찬가지로 내부 권력다툼을 시작으로 몰락하기 시작합니다. 마카비 혁명을 일으킨 맛디아의 세 아들들이 아버지를 이어서 혁명을 이끌었습니다. 셋째 아들 유다 마카비, 다섯째 아들 요나단이 이끌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 시몬이 이끌며 셀레우코스 왕국의 실력자들이 무시할 수 없는 독립운동 세력이 되었습니다.
시몬이 하스몬 왕조를 선포하고 유대인의 독립왕조를 시작하였습니다. 그런데 시몬의 사위 프톨레매오가 시몬과 두 아들을 살해하고 반란을 꾀합니다. 하지만 시몬의 셋째 아들 힐카누스가 살아남아 가문의 명맥을 유지합니다. 힐카누스는 군대를 이끌며 나라 안정을 꾀합니다. 하지만 권력 다툼을 평정한 안티오쿠스 7세가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큰 위기를 만납니다.
힐카누스는 이 위기를 슬기롭게(?) 해결합니다. 우선 화친을 제안하고 다윗왕의 묘를 열어 삼천 달란트를 안티오쿠스 7세에게 바쳤고, 유대인 군대를 셀레우코스에 보내 안티오쿠스 7세 편에서 전쟁을 합니다. 그 대가로 유대의 종교적 자유와 평화를 보장받습니다. 힐카누스는 안티오쿠스 7세가 실권하자 독립선언을 하고 영토를 확장합니다. 힐카누스가 이두매 지역을 정복하고 많은 이방인들을 유대교로 개종하게 합니다.
이렇게 많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때 헤롯의 아버지 안티파테르도 개종합니다. 그리고 복잡한 유대 정치상황을 틈타 권력을 잡습니다. 동생 아리스토불루스에게 대제사장직을 빼앗긴 힐카누스편에서 싸우며 영향력을 키우던 안티파테르는 로마 폼페이 장군을 끌어들여 유대 세력을 평정합니다. 그리고 힐카누스를 대 제사장에 세우고 자신은 권력을 잡습니다.
BC. 47년 율리스 시저(Julius Caesar)는 안티파테르에게 로마 시민권과 유대지역 총독 자리를 줍니다. 헤롯 가문의 로마정권과 밀월이 시작됩니다. 그가 유대를 차지한 야심 많은 아들 헤롯을 갈릴리 지역 통치관으로 임명합니다. 영리한 헤롯은 권력의 메커니즘에 관해서는 매우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유대 하스몬 왕가의 여인을 아내로 맞아 하스몬 왕가에 대한 열등감을 정리하고 로마 실력자에게 충성을 다했습니다. 헤롯은 천재성이 번뜩이는 정치 감각과 근성으로 로마 권력을 붙잡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방인 출신 헤롯이 유대지역을 통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겼습니다. 혈통의 순수성을 소중하게 여겼던 것이 유대인 특징이었습니다. 특히 포로기 이후에는 혈통의 순수성에 더욱 집착을 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헤롯의 혈통은 큰 약점이었습니다. 헤롯은 하스몬 왕가 후손과 결혼하면서 자신의 약점을 보완하려고 노력합니다.
헤롯은 혈통 등의 문제로 유대 백성들과 유대 땅의 세력가들에 인정받는 것은 실패했지만 로마 황실과는 좋은 관계를 유지합니다. 헤롯은 격변하는 로마 정세의 능선을 타고 권력을 유지하거나 확장해 나갔습니다. 헤롯은 주군이 망해도 자신은 망하지 않았습니다. 헤롯왕은 처음엔 카시우스편에 섰고, 카시우스가 안토니에 패하자 안토니로 갈아탑니다. 안토니가 헤롯을 유대 왕으로 임명했습니다. 안토니와 옥타비아누스가 싸울 때, 헤롯은 안토니를 돕습니다. 그런데 옥타비아누스가 이깁니다.
이런 상황에도 헤롯은 포기하지 않고 옥타비아누스를 찾아가 설득합니다. 헤롯은 왕의 옷을 벗고 일반 평민 복을 입고 카이사(옥타비아누스, 가이사 아우구스도)앞에 나아가 자신의 입장을 어필합니다. 헤롯이 카이사에게 어필한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저는 저를 세워준 안토니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는 저의 은인이었고 저는 그를 위해 충성을 다했습니다. 저는 그와 함께 패했습니다. 저는 패자의 입장으로 폐하의 은덕만 보고 나왔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살아온 성실과 의리를 봐 주시고 저에게 기회를 주시면 남은 생명 황제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거칠게 간추렸습니다. 헤롯의 야심과 야성 그리고 진심이 가득 담긴 일종의 사나이 고백이었습니다.
로마의 실력자 카이사(옥타비아누스)는 헤롯의 이 말을 듣고 통 큰 로마 황제답게 헤롯을 수용합니다. "좋다! 그대를 살려 주겠다. 그리고 이전보다 더 확고한 왕의 자리를 보장해주겠다. 대신 그대는 안토니를 섬겼듯이 나에게 충성을 다해 주기를 바란다. 변함없는 충성으로 나를 따르도록 하라!" 물론 이것도 거칠게 간추린 내용입니다. 헤롯은 권력에 대한 천부적 감각과 집념으로 권력을 쟁취하여 유대 전체의 왕이 되었습니다.
헤롯은 10명의 아내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20여명의 자녀들을 두었습니다. 많은 부인에게서 얻은 자녀들은 서로 얽히는 결혼관계를 통하여 가정의 불화와 상처를 낳았습니다. 헤롯의 자녀들은 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했고 이 권력에 대한 의지가 형제들의 암투가 있었습니다. 그중에 세 아들, 아켈라오, 빌립, 안디바가 유대를 분할하여 분봉왕이 됩니다. 빌립은 비교적 안정적인 통치를 하지만 아켈라오와 안디바는 아버지 헤롯과 유사한 야심과 악정으로 원성이 자자했습니다.
신구약 중간기의 유대지역은 제국들의 싸움터였던 조선말기의 한반도와 같았습니다. 어렵게 독립을 쟁취한 하스몬 왕가의 몰락과 헤롯 가문의 등장은 유대인이 세계로 뻗어 나가는 동력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세계에 흩어진 유대인들은 회당을 세웠고 유일신 하나님을 전했습니다. 이런 것이 초대 교회의 세계 선교를 위한 인프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